
단장이라고 춤 접지 않는다 … 앞으로 3년 현역으로 뛸 것
-32년 만의 금의환향이다.
“오래 전부터 제안이 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지금이 좋은 때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실 걱정은 남편(툰치 소크만. 터키 출신의 동료무용수)이었다. 남편 없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한국에 들어가 살 수 있겠어’라고 운을 뗐더니 ‘너보다 내가 훨씬 잘 살 거야. 너만 생각해’고 대답했다. 용기를 냈다.”
-확신은 어디서 왔나.
“육감이다. 나이가 있고, 경험을 쌓았고, 네트워크가 생겼다. 한국발레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도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시스템이 많이 다르다’는 일부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외국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결국은 사람이다. 걱정보다 설렘이 더 크다.”
-현역 무용수로는 은퇴인가.
“공식 은퇴 무대는 2016년 6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가질 예정이다. 그때가 슈투트가르트 입단 30년이다. 현재 출연 중인 ‘나비부인’의 서울 공연이 내년 7월 예정돼 있고, 2015년에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오네긴’ 서울 공연에 출연한다. 일부 조정은 있겠지만 3년 뒤 은퇴할 때까지 무대에 설 예정이다. 물론 모든 일의 1순위는 국립발레단이다.”
-단장과 무용수를 겸할 수 있나.
“해외에선 몇몇 사례가 있다. 우선 나의 롤 모델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마르시아 하이데가 예술감독과 현역 활동을 병행했다. 남자 무용수로는 파트릭 뒤퐁(파리 오페라발레단)과 블라디미르 말라코프(베를린 발레단)가 그랬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의 첫 번째 역할은 국립발레단장이다. 하지만 내가 현역으로 뛰는 게 우리 단원을 자극시키고 긴장하게 하는 부분도 있으리라 본다.”
-발레단 운영 복안이 있다면.
“내년 프로그램은 이미 다 짜여 있다. 구상은 있지만 지금 그걸 밝히는 건 적절치 않다. 무엇보다 단원들과 얘기하고 몸을 부대끼며 연습하다 보면 무언가 새로운 게 또 나온다. 함께 호흡하는 게 우선이다.”
-안무를 할 생각은 없나.
“안 한다. 난 그런 재주 없다. 능력 없으면서 뭔가 하는 것만큼 서로를 괴롭히는 게 없다. 난 일찌감치 그쪽 길 접었다. 뛰어난 안무가를 보는 눈이 있으면 충분하다.”
최민우 기자
◆강수진=1967년생. 현역 최고령 발레리나. 82년 15세 나이로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에 입학하며 한국을 떠났다. 85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그랑프리, 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99년 브누아 드라당스 수상 등 그의 행보 하나하나는 한국 발레 세계 진출의 역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