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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마흔여섯, 아직도 나는 꿈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제복 입은 남자가 어정쩡하게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베레모를 쓰고 붓과 팔레트도 들었다. 팔레트 위엔 가지런히 물감을 짜 놓았다. 이렇게 ‘화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원근법도 무시하고 가운데 자기만 커다랗게 그려 놓았다. 제복의 무게에도 꿈은 눌리지 않았는지. 세관원 출신 주말화가 앙리 루소(1844∼1910)는 꿈을 향해 떠오르는 자기 모습을 소박한 솜씨로 있는 힘껏 그렸다. 멀리 비행선이 나는 이곳은 센 강변의 무역선 앞, 그의 일터다. ‘생계를 위해 세관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 진짜 모습은 화가’라는 듯하다.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전문적 미술 교육은 받지 못했다. 혼자서 주말마다 그림을 그렸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에 나가 거장들의 그림을 꾸준히 모사했다. 1885년부터 전시에 출품하며 화가들과 어울리다가 1893년엔 아예 세관을 퇴직하고 전업 화가로 나섰다. 49세 때의 일이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아이들에게 그림과 음악을 가르치는 사숙을 개설해 생계에 보탰다.

앙리 루소, 나 자신, 초상: 풍경, 1890, 143×110.5㎝, 캔버스에 유채, 프라하 국립미술관 소장.
 가정적으로도 행복했다 할 순 없었다. 25세 때 10년 연하인 크레망스와 결혼해 일곱 아이를 낳았으나 그중 다섯 명이 죽었다. 크레망스도 1888년 34세로 사망했다. 10여 년간 홀아비로 지내다가 55세 때 조세핀과 재혼했는데, 그녀 또한 4년 뒤 사망한다. 그에 앞서 1890년에 그린 이 자화상에서 루소는 손에 든 팔레트에 두 여인의 이름을 적었다. 먼저 간 크레망스를 추모하고, 재혼한 조세핀의 건강을 빌었다.

 그림 ‘나 자신, 초상: 풍경’은 하나하나 사연을 담아 정성껏 그린 것 같긴 한데 어딘가 어색하다. 프랑스 회화가 성취한 세련된 기법과 시각적 환영을 내는 요소들을 무시한, 순진한 그림이다. 그를 알아본 것은 피카소. 피카소는 1908년 자기 화실에서 그를 위한 연회를 열었다. 루소는 그로부터 2년 뒤 비브리오패혈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절친했던 시인 아폴리네르는 이런 묘비명을 남겼다. “우리들이 마련한 짐을 천국의 문을 통해 면세로 부쳐 주게. 자네에게 붓과 캔버스를 보내주려는 걸세.”

 올 한 해들 어떠셨는지. 하루하루 허덕이다 여기까지 왔다. 하노라고 한 것 같아도 돌보지 못한 일이 많고, 그 와중에서 맘 상하게 한 이도 많은 것 같다. 돌아보면 회한이 앞서고, 이루지 못한 일들은 다시 내년으로 미뤄질 참이다. 꿈을 잊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그림, 마흔여섯의 루소가 그렸던 자화상이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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