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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 빌리는 데 8000만원? … "용역비 10%는 뒷돈"

서울 성동구의 한 재개발 사업현장. 해당 조합은 철거 등 각종 용역비를 부풀리거나 허위 계약한 의혹이 제기돼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김상선 기자]


재건축·재개발 비리가 계속되고 있다. 올 들어선 대형 철거업체 대표와 서울시의회 의장까지 구속됐다. 본지가 수도권 15개 정비사업 구역의 조합 계약서와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용역비가 부풀려지고 이중 계약으로 의심할 만한 사례가 여럿 나타났다. 재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용역비의 10%가 뒷돈으로 오가고 있다”고 증언한다.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왜 문제가 생기는지를 추적했다.



재건축·재개발 용역 비리 <상> '철거왕' 적발 계기로 들여다본 15개 사업 비리 백태

서울 성동구의 A재개발 조합은 ‘철거왕’ 이금열 회장(구속 기소)의 회사인 다원그룹 계열사와 80여억원에 철거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도 조합은 전기(4억원)·수도관(8억7000만원)·가스관 철거(5억3000만원)와 이주관리 용역(12억6000만원)을 다른 다원계열 3개 업체에 따로 맡겼다. 별도로 한 계약액만 30억원이었다.



가스·전기 등 유령 계열사 쪼개기 계약



 본지 취재 결과 A조합이 따로 계약을 맺은 이주관리 용역은 80억원짜리 철거계약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수도·가스 철거 비용도 턱없이 부풀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강북의 상수도사업소 관계자는 “가장 큰 정비구역도 수도관 배관의 이설 비용이 1억원을 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 역시 “일부 전기 이설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많아야 몇천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조합 관계자는 “총회 의결을 거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다른 조합도 다 분리 발주한다”고 해명했다.



 15년 경력의 수도권 철거업체 사장 이모(48)씨는 “각종 배관 철거를 별도로 하는 것처럼 계약하는데 건물에 파묻혀 있는 배관을 어떻게 따로 떼 철거할 수 있나”라며 “다만 일부 배관 이설 등으로 약간의 비용이 추가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돈을 빼먹기 위한 수법”이라고 털어놨다. 2008년 이후 다원그룹이 이런 방식의 쪼개기·중복 용역 계약으로 재미를 본 뒤 나머지 업체들도 이를 그대로 따라 해 현재는 일반화된 수법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렇게 부풀려 책정된 사업비의 일부는 뒷돈으로 조합 측에 건너간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본지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 등 수도권 15개 재건축·재개발 구역의 각종 용역비를 분석한 결과 이처럼 중복·쪼개기·부풀리기가 이뤄진 것으로 의심되는 용역비가 672억3000만원(총 사업비 4조5000억원의 1.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역당 평균 45억원 정도가 과다 지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50개가 넘는 용역항목 중 일부만 들여다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액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현재 재건축·재개발이 진행되는 사업장이 1800여 개인 것을 감안할 때 전국적으로는 적어도 수조원의 돈이 특정 용역업체나 이와 결탁한 조합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매출의 상당 부분이 축소·누락되면서 탈세가 만연한 지하경제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주택정비사업 전문가인 권순형 J&K부동산투자연구소 소장은 “전국 어느 현장에서나 각종 업체 선정 대가로 용역비의 10% 정도의 뒷돈이 오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풀리기도 관행 … 전국 수조원 과다 지출



 본지 취재 결과 비용 부풀리기 계약에 동원되는 업체 중 일부는 서류상의 회사나 다름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도·전기·가스 철거업체로 자주 등장하는 H건설, J건설, K개발, O종합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H건설과 O종합건설은 성동구의 같은 주소지에 사무실이 있었고, 회사 대표자들의 집 주소도 같은 곳이었다. 두 회사 대표의 성별이 다르고 나이 차이가 6살인 것 등을 감안하면 부부로 추정된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도 “두 사람이 부부 사이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 업체는 계약서에 직접 공사를 한다고 기재했지만, 기자가 이들 업체의 사무실 주소지로 찾아가 본 결과 직원 2명만 일을 하고 있었다. 본지가 입수한 용역계약서엔 사업자등록번호, 연락처조차 표기가 안 돼 있을 정도로 허술했다. 일반 계약조건과 용역비 총액만 나와 있을 뿐 정확한 공사면적이나 수량 등이 없어 단가를 알 수 없도록 했다.



다른 항목들도 사업비 책정이 주먹구구식이었다. 서울 강동구 B재건축 조합은 2011년 총회 개최비용으로 10억원을 썼다. 현재 B조합은 일부 조합원들의 고발에 따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조합원들이 낸 고발장에는 “조합 측이 총회의 정수기 임차료로 8000만원을 책정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범죄예방대책 수립, 국공유지 무상양도 컨설팅(성과급) 비용 등도 최근 새롭게 등장한 용역 항목들이다.



실제로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항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울 영등포 C재개발 조합은 범죄예방대책비로 3억2000만원, 한남동 D조합은 60억원, 인근 한남동 E조합은 35억여원을 각각 책정했다. 은평구 H조합은 국공유지를 무상양도받는 컨설팅 대가로 6억3800만원을 업체에 지급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11월 폐업했고 다른 영업 실적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누락해 탈세 … 거대한 지하경제 형성



 검은 거래는 반드시 탈세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본지는 재개발 과정에서 용역업체의 탈루를 제보해 포상금 1억원을 받은 L씨를 만났다. L씨는 서울 은평구의 한 재개발구역에서 석면 제거 및 폐기물 처리를 위해 철거업체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총회 의결 없이 변경계약을 통해 50여억원을 부당지출한 사실을 세무당국에 제보했다. 철거업체는 추가 매출분 신고를 세무당국에 하지 않아 부가세와 법인세를 탈루한 것으로 드러났다. 철거 이외에 설계와 감리, OS(Outsourcing·총회 개최에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업체) 등 각종 행정대행 용역업체들의 매출 누락 행위도 함께 적발됐다. 용역업체들은 부풀리기 계약을 통해 받은 돈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세금도 납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비사업 전문가 김상윤 법무사는 “정상적인 회계처리로는 매출의 10%를 뒷돈으로 건넬 수 없고 세무신고를 축소·누락해야만 가능하다”며 “1회성 사업인 데다 과세·비과세 항목이 복잡하게 혼재돼 있는 사업 특성상 사건화하기 전에는 세무당국이 주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건축·재개발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손실은 일반 조합원과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입게 된다. 총 사업비가 부풀려져 조합원들이 내는 추가분담금이 늘고, 일반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탐사팀=고성표·윤호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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