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노트북을 열며] 임기 첫해의 난장 징크스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이쯤 되면 ‘대선 승자의 징크스’ ‘승자의 저주’라는 조어를 붙일 만도 하겠다. 대선에서 이긴 뒤 맞는 집권 첫해는 상식적으론 가장 강력한 리더십을 유지하는 시기다. 새 정부에 대한 여론의 기대감이 뒤를 받쳐주고 공직 사회도 새 집권 세력의 철학과 가치에 맞출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올해를 포함해 지난 세 차례의 ‘임기 첫해’를 돌아보면 한바탕 ‘난장(亂場)’이 벌어지는 게 통과의례처럼 관행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03년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의 측근 비리가 불거지며 야당의 압박이 고조되자 취임 8개월째인 그해 10월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했다. 그래도 한나라당에선 “측근 비리를 숨기고 있었다면 탄핵감”(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광우병 파동에 휘말렸다. 청와대로 향하는 촛불집회 행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던 건 불문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첫해를 국정원 댓글 의혹으로 불거진 야당과의 첨예한 대치로 소모했다.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첫해부터 대통령을 겨냥해 탄핵이나 하야와 같은 주장이 공공연히 등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YS는 금융실명제 도입과 하나회 척결 등 임기 첫해에 개혁의 성과를 거의 일궈냈다. IMF 금융 위기 속에 출범한 DJ 정부는 임기 첫해 기업 구조조정의 삭풍 속에 이른바 ‘총풍 사건(판문점 총격요청사건)’으로 여야가 전면 대치하는 와중에도 햇볕정책을 밀고 나가 첫 금강산 관광이 이뤄졌다. 집권 첫해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보면 YS는 71%(1분기)→59%(4분기)로 떨어지긴 했어도 60%에 육박했고, DJ도 71%→63%로 모두 60% 안팎은 유지됐다(한국갤럽).



 어느 쪽이 집권하건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임기 첫해를 공방 속에 허비하는 것은 나라 전체로 볼 때 불행한 일이다. 민주주의 후진국도 아닌 한국에서 이 같은 임기 1년차 징크스가 고착화되는 이유는 뭘까. 집권세력의 준비부족과 시행착오가 출발점일 게다. 박근혜정부의 경우 임기 초 인사 검증의 난맥상이 해당된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대선 경쟁이 ‘십자군 전쟁’이나 ‘반지의 전쟁’으로 변질되는 탓이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나라가 30년 전으로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메시아가 출현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지지층에 ‘우리가 유능하다’가 아니라 ‘우리가 정의다’로 소구하는 한 승자는 집권 1년차에 패자 지지층의 상실감에서 비롯된 정통성·정체성 시비에 시달리게 된다. 영웅 프로도와 거악 사우론이 절대반지를 놓고 벌이는 선악의 대결은 ‘반지의 제왕’에나 나오는 판타지일 뿐 현실은 두부를 자르듯이 쉽게 나눠지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가 판타지를 강요하는 한 누가 집권하건 첫해의 난장은 피할 수 없다.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