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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맞다, 어떤 기억은 죽을 때까지 간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
언론학
연구실 벽면 커다란 패널 액자에는 해변가 백사장을 걷는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유명화가의 그림이 아니다. 영화 포스터다.



나는 리히텐슈타인이나 앤디 워홀 유의 팝 아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예술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저급한 행위 정도로 폄하하는 부류에 가깝다. 그러나 단 하나, 유학 시절 구입한 이 포스터만큼은 벽면에 붙여 두고 애지중지해 왔다.



 1973년 시드니 폴락 작품, 그러나 당시 어린 나는 보질 못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인 80년대 스무 해 어느 밤에 지금은 없어진 TV 주말 영화를 통해 만났고 그날 밤잠을 설쳤다.



고풍 어린 하버드 캠퍼스를 배경으로 케임브리지 시와 보스턴을 가르는 찰스강에 조정 경기가 펼쳐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뿐인가, 곧바로 등장하는 주인공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주제곡은 갓 스물을 넘긴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정치의식이 강한, 가난한 좌파 운동권 여대생 케이티(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부자에다 보수적인 캠퍼스 얼짱인 허블(로버트 레드퍼드)간의 엇갈린 사랑을 담은 영화다. 하버드 교정에서 만난 남녀는 곡절 끝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몰아닥친 매카시 선풍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결국 케이티는 작가로 빛을 보기 시작한 허블을 위해 떠난다. 악몽 같던 매카시즘이 가고 수년이 흐른 뒤 허블은 뉴욕에서 핵금지 서명을 받고 있는 운동가 케이티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만, 각자의 길로 돌아선다.



 그러나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념성이 지나치게 강한 데다 개봉 당시만 하더라도 하버드를 꿈꾸기에는 지독히도 가난했던 나라의 억압받던 청춘들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금세기 최고의 명화쯤으로 기억된다. 지구촌을 달구었던 ‘섹스 앤드 더 시티’에도 네 명의 여주인공이 수다를 떨다가 이 영화 얘기가 나오자 모두들 부르르 떨며 흥분하던 장면이 나온다.



특히 네 명 중 한 명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하자 나머지 세 명이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외계인밖에 없다”며 흥분해 퍼붓던 대목이 영화의 명성을 증거하고 있다. 그랬다. 그만큼 영화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과 더불어 지금의 기성세대에게 이념갈등, 빈부격차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유학 시절, 나는 어느 여름방학 가족들과 하버드를 찾았다. 산책길에 잠시 설립자 하버드 동상에 멈추었다. 영화 속 잘생긴 허블이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동상 발 언저리에 걸자 주위사람들이 박수 치며 환호하던 장면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만지면 하버드에 합격한다는 속설 때문에 동상 발끝이 손때에 반짝거린다.



불현듯 귓전을 두드리는 노래가 있다. ‘memories, like the colors of my mind/ misty water-color memories of the way we were…. 맘속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추억/ 지난날 우리의 수채화 같은 추억들…’로 시작하는 노래는 ‘만약 우리가 다시 시작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말해 줘,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야멸찬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지적 냄새가 풀풀 나던 훈남, 로버트 레드퍼드가 반백의 노인이 되어 한 편의 작가주의 영화(All is lost)를 들고 나타난 지금 더욱 그러하다. 관련 기사를 읽으며 볼까 말까 적잖이 갈등을 느낀다.



내 세대의 아이돌인 그의 변화가 궁금하지만 그가 늙은이로 등장하는 데 묵직한 슬픔을 느끼고 있다. 젊은 날의 그가 등장했던 액자 속의 영화는 ‘The way we were’다. ‘우리가 같이 했던 날들’ 쯤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국내에서는 ‘추억’으로 붙여졌다. 맞는 말이다. 함께 했던 사람들, 함께 했던 순간들, 지나고 나면 모두가 그립고 소중한 추억들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말했다. “some memories last forever!” 그렇다, 어떤 기억들은 죽을 때까지 간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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