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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질서 재건축 중 … 분양 줄서지 말고 설계 동참을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 그리고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전략이 충돌하면서 아시아 국가 간 갈등과 마찰이 심화되고 있다. 경제·문화적 상호 의존도는 높아지는 데 비해 정치·군사적 갈등은 오히려 커지는 역설, 아시아 패러독스다. 아시아 시대의 안보 지형은 어떻게 펼쳐질 것이며 지속가능한 아시아의 안보 질서는 어떻게 구축될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중앙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공동으로 하영선(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시아연구원(EAI) 이사장을 만났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묻고 하 이사장이 답하는 형식이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
▶전재성 교수(이하 전)=방공식별구역(ADIZ)을 둘러싼 갈등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나.

▶하영선 이사장(이하 하)=미·중 대립이 날카로운 것 같지만 양국이 추진하고 있는 외교전략의 대원칙에 근거해 현재의 국면을 더 장기적 차원에서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중국은 미·중 신형 대국관계를 통한 주변 안정화와 경제발전 원칙, 그리고 핵심이익 챙기기라는 2개의 원칙을 동시에 추구한다. 방공식별구역은 핵심이익 원칙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핵심이익을 챙기기 위해 단기적으로 충돌 양상을 보이더라도 미·중 신형 대국관계를 해치는 선까지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2049년까지 중국은 경제발전에 우선하면서 미국과의 협력이란 큰 기조는 유지할 것이다. 미국 역시 아시아 중시 전략을 통해 아시아에 개입하지만 미·중 신형 대국관계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6월)에서 잘 드러났듯 미국은 중국을 동맹은 아니지만 신흥대국 파트너로 적극 염두에 두고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의 밑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그런데 아직까지 담론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디에 줄 서야 하느냐는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중 관계를 더 복잡하게 상정하고 게임을 해야 한다.

▶전=올해 새 지도자들이 등장한 이후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의 밑그림, 즉 아키텍처(architecture)가 거의 드러났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전략, 중국은 미·중 신형 대국관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은 보통국가 및 우경화 노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극동 중시 전략,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내놨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을 밝혔다. 아시아는 다극시대로 가나.

▶하=아시아는 넓지만 논의를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누구의 설계에 의해 누가 건축하느냐가 핵심이다. 미국의 재균형 전략이 중국의 신형 대국관계와 어떻게 맞물려 기본 설계도가 짜이고 있나. 11월 5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미국의 당면한 도전과 군사력의 역할을 언급한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의 연설문을 주목해야 한다.

▶전=헤이글의 핵심 메시지는 뭔가.

▶하=미국은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에 맞춰 신질서를 건축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21세기 도전의 성격이 냉전시대처럼 단순하지 않고 도전의 무대와 주인공이 복합성을 띤다고 봤다. 첫째, 경제·인구에서 힘의 구심점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 넓게는 아시아로 힘의 구심점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군사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오래 살아남을 건축물을 짓기 위해 복잡한 설계도를 고민했다.

▶전=설계도와 건축이란 개념이 흥미롭다.

▶하=일각에서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얘기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동아시아 신질서 구축의 핵심 주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전의 성격이 바뀌었기에 미국은 혼자 주도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동맹 또는 중국 같은 신흥대국 파트너, 그리고 지역 네트워크를 함께 엮어 새로운 도전에 적응해나가겠다는 것이 헤이글의 생각이다.

▶전=중국의 포석은.

▶하=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9월 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한 연설에 잘 압축돼 있다. 미국과 싸우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공생하자는 것이다. 미국이 아태 지역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해 건설적으로 활동하면 미국은 전통적 핵심이익을 충분히 지켜나갈 수 있고, 중국은 수천 년에 걸쳐 지내온 공간에서 핵심이익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만큼 아태 지역은 충분히 넓다는 것이다. 왕 부장은 신형 대국관계가 전개되는 첫 장소로 북핵 등 아태 지역을 중요한 실험장으로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일본의 움직임도 심상찮은데.

▶하=미·중이 바둑판에 한 수씩 포석을 둔 뒤 일본이 한 수 끼어들었다.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 담길 핵심 이념과 목표는 국제 협조주의에 기반한 적극적 평화다. 헤이글 장관은 동맹이 중요하지만 신흥대국 중국의 파트너 가능성도 모색하면서 가겠다는 것인 반면 아베 총리는 “메이지(明治)에서 배우자”며 강한 일본을 강조했다.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미국과 달리 일본은 닫힌 느낌이다. 일본은 미·중의 포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미국 쪽에 수를 뒀다.

▶전=미·일과 중국 관계는 어떻게 될까.

▶하=3국 관계가 앞으로 최대 문제다. 미국이 바라보는 중국, 일본이 바라보는 중국의 미묘한 긴장 가능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굉장히 큰 숙제다. 만약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중·일이 충돌할 경우 복잡한 선택이 미국을 기다리고 있다. 동아시아를 중국 대 한·미·일 구도로 끌고가면 결과적으로 미·일 모두에 굉장히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중국을 한·미·일의 대립각에 놓을 경우의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비용을 스스로 빨리 파악해야 한다.

▶전=우리(청와대 국가안보실 지칭)는 설계와 건축 과정에서 역할을 하고 있나.

▶하=제국주의 시대에는 열강이 주도해 우리가 설계에 참여하려고 해도 참여할 수 없었다. 지금도 우리는 좋은 아파트에 줄 잘 서서 들어갈 고민만 한다. (아파트) 설계에 동참하라고 하니 우리 외교안보 정책 입안자들이 당황한다.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1세기, 중국은 20세기, 일본은 19세기 설계도를 그린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일 네트워크를 유지·강화하면서 동시에 중국을 품어가는 전략이 우리 설계도의 중심 입장이 돼야 한다. 아시아 시대에는 미·중·일·러가 제자리에 들어가고 한반도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도 자기 나름의 방을 갖는 형태의 2층 복합건물의 설계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설계도면의 모색이 시급하다. 남북한 신질서를 건축하면서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과 잘 맞춰야 한다. 시멘트 바르는 상황에서 뒤늦게 설계도를 바꿔달라고 하면 늦는다.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다.

  정리=장세정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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