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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시는 꾸미지 않은 것

중국 고전 『역대시화』를 번역한 김규선 교수. “조선과 청나라 문인의 서간문 등 양국 교류 자료와 한자로 쓰여졌지만 우리만의 독창성을 품은 고전을 찾아내 소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떤 측면에서 우리는 옛 글에 대해 청맹과니가 됐다. 근대 이전 지식과 사상을 기록했던 한자문화는 낯설게 느껴진다. 서구의 공세에 우리 고유의 지식은 침몰한 보물선 신세가 됐다.

중국 시화 번역한 김규선 교수
전통 서당교육 마지막 세대



 김규선(49) 선문대 교수는 단절된 옛 문장을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에 집중해왔다.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암행어사 보고서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제자인 황상의 시집이 그의 연구로 세상에 알려졌다.



 김 교수가 중국 고전 시론 총서인 『역대시화』(소명출판)를 총 6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번역했다. 중국 청나라 말기 하문환이 양나라의 『시품』부터 명나라의 『이백재시화』까지 중국의 시화 27종을 엮은 책이다. 시화(詩話)는 고대 동아시아 시 비평의 독특한 양식이다. 자유로운 수필체로 시인과 시에 관한 자잘한 일화를 써 내려가는 글이다.



 이번 번역에는 5년이 넘게 걸렸다. 상징과 생략이 많고 함축성이 강한 ‘시화’를 요즘 말로 옮기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게다가 주해서도 거의 없어 ‘맨땅에 헤딩하기’ 같았다.



 “한문이라도 철학·역사와 관련된 것은 문법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요. 하지만 문학은 운율이나 미사여구, 수식 등이 얽혀 있어 기본적인 문리력만으로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 작업에 매달린 이유는 뭘까.



 “시화 관련 석사논문을 쓸 때, 각종 품평 용어에 담긴 미묘한 느낌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나중에 연구해야겠다고 했죠. 품평 용어는 시뿐만 아니라 그림·글씨에도 똑같이 사용되기에, 동양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니까요.”



 최근 문외한이 읽기에 부담이 큰 편이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송나라 문인 구양수(1007~72)는 “시인들이 좋은 구절 찾기에만 매달려 의미가 안 통하는 것도 병폐다”라고 꼬집는다. 비슷한 시대 활약했던 진사도(1053~1102)는 당나라 시인 두보(712~770)에 대해 “시를 잘 지으려고 하면 잘 지어지지 않는다. 두보는 기묘함과 일상, 참신함과 진부함이 모두 좋지 않은 것이 없다”고 극찬한다.



 김 교수는 자신을 ‘1차 작업자’로 규정했다. 고문서를 현대어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원전을 충실하게 옮기는 역할에 만족한다는 설명이다. 일반인을 위한 2차 작업은 다른 사람의 몫으로 남겨뒀다.



 그의 이력도 독특하다. 스스로 ‘서당 교육의 마지막 세대’라고 했다. 훈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며 10~20대를 보냈고, 검정고시로 초·중·고 과정을 마쳤다. 서른 살 되던 1994년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입학했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배우고 싶어 대학에 갔고, 중국어를 배우면서 한문만으로 소통할 수 없는 미세한 부분을 알게 됐어요. 현대 중국어가 고리 역할을 한 것이죠.”



 그에게 고전은 무한한 보고다. 서구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는 방법이 고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자는 3000여 년의 역사가 있죠. 수많은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2000년 전 공자의 생각이나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다를까요. 그럼에도 고전은 벽 속에 갇혀 있죠. 그런 벽을 넘으면 무한한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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