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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현의 귀촌일기] 이쑤시개를 심은겨?

남덕현
귀농 수필가
“이쑤시개를 심은겨? 겨우내 괴기(고기)를 월매나 엄청스레 뜯을라구 이쑤시개 농사를 저 지경으루다 장허게 져놨댜? 책 판 돈이 경장(굉장)한 모냥이지?”



 “아싸리(아예) 여피다(옆에) 소두 맥이지 그랴? 심들게 괴기 사러 장에 나가지 말구!”



 “의리가 있지! 저 지경이 될 때까정 손 놓구 뭐 헌겨? 배차(배추)헌티 안 미안혀?”



 벌레가 다 갉아먹고 잎맥만 녹말 이쑤시개처럼 앙상히 남은 필자의 배추밭은 마을의 놀림감이다. 놀림을 당할 때마다 당장 밭을 갈아엎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거름이라도 되라고 버려두고 있다. 물론 궁색한 변명도 빼먹지 않는다.



 “내년 봄에 나비떼 구경 오세요. 장관일 겁니다!”



 잎을 갉아먹고 살찐 배추벌레들은 번데기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배추흰나비가 된다. 이쑤시개 농사와 나비농사를 장하게 지은 셈이다.



 밑도 끝도 없이 웃자고 하는 소리라 여기며 함께 웃지만, ‘의리가 있지!’ 한마디는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뼈아픈 질타다.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지을망정 땅을 갈고 씨를 뿌렸으면 농작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질타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게으름에 대한 지적만은 아니다. 농사에 대한 진지함이 없다는 말이고, 그 말은 곧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양식에 대해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라는 지적인 것이다. 얼마나 농사를 우습게 봤으면 배추밭을 저 지경으로 망쳐 놓았을까 하는 못마땅한 심사가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무도(武道)가 있듯이 농사에는 농도(農道)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내 농사니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지어보고 안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제 손으로 뿌려놓은 생명을 끝까지 돌보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의리, 즉 농사의 도리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다. 무농약이네, 유기농이네 떠들어댔지만 그것은 농사의 기술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농사의 도는 아니었다. 사실 시골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규모의 농사를 짓는 마당에 큰돈 벌자고 악착같이 약을 치겠는가? 제 살 같은 싹이, 잎이, 열매가 먹히고 썩는 것을 견디지 못해 약을 친다. 제 농작물을 아끼고 애달파하는 의리로 따지자면 필자는 그들에게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유기농이니, 무농약이니 잘난 척한 탓이 아니다. 농사의 도를 어겼기 때문이다. 다행히 때 이르게 큰 눈이 내려 흉한 배추밭 몰골을 덮어 주었다. 그렇다고 부끄러움까지 덮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남덕현 귀농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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