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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은 검찰총장 숙명 … 대통령에게 '아니오'라고 할 용기·고집 있어야"

이명재 1943년 경북 영주 출생.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69년 사법시험(11회)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1기로 수료했다. 이어 서울지방검찰청 영등포지청 검사로 부임하며 검찰에 입문했다. 대검찰청 중수부장과 부산고검·서울고검장을 지낸 뒤 2001년 퇴직해 변호사를 개업했다. 이듬해 2002년 1월 김대중정부에 의해 검찰총장에 발탁돼 그해 11월까지 제31대 검찰총장을 지냈다. 경제 관련 범죄 수사에 두각을 나타내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영동개발비리사건과 5공 비리, 환란·세풍(稅風)사건 등을 처리했다. 검찰총장 퇴임 뒤 지금까지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를 지내고 있다.


국정원 댓글 수사를 둘러싼 내홍으로 검찰이 휘청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수도승 총장’으로 불려온 이명재(70·사진) 전 검찰총장을 만났다. 지난 주말 그가 고문변호사로 일하는 한 로펌의 사무실에서다. 그가 언론에 입을 연 건 2002년 11월 검찰총장직을 물러난 이래 처음이다. 대검중수과장과 서울지검 특수부장, 대검중수부장을 거쳐 제31대 검찰총장을 역임한 그는 역대 정권의 핵심 사건들을 도맡아 처리했다. 전두환정부 시절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건, 노태우정부 시절 5공 비리수사, 김대중정부 시절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씨 비리의혹사건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권력과 직결된 민감한 사건들이었지만 청와대의 압력에 밀리지 않고 중립적인 수사 결과를 내놔 호평을 받았다. 요즘 검찰이 보이는 난맥상에 대해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는 “검찰이 언론이나 국민정서를 탓하기 앞서 정말 국민만 보면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사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정치적 사건에 관한 한 검찰은 관련된 정치세력들에 대해 ‘색맹’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

창간 6주년 기획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19> 이명재 전 검찰총장



-총장직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간 지 11년1개월 만에 처음 인터뷰에 응했다.

“나는 원래 말 재주가 없고, 언론에 나는 것도 별로인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 딱 걸렸네.(웃음)”



-서울고검장 시절 신승남 검찰총장이 내정되자 사표를 냈다.

“인생도 관직도 언젠가는 다 그만두는 것 아닌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퇴장하는 게 옳다고 봤다. 나와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데 뜻밖에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검찰의 환골탈태를 위해 외부인사를 기용하자’란 논의가 있었다는 언론 보도를 봤다. 임명 당시 여야 모두 환영 논평을 낸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총장이 된 뒤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시점에서 그만뒀다.

“아침 산책을 하다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로부터 ‘조사받던 피의자가 숨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일주일간 감찰을 한 결과 사망 원인이 구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일 하루를 내내 고민한 뒤 법무부 장관에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내가 책임지겠다’며 사표를 내고 다음날 퇴임식을 했다.”



-총장 재임 당시 집무실에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았다는데.

“‘이명재 총장의 책장엔 책 한 권 꽂혀 있지 않고 책상 위에는 법전 한 권과 출퇴근 때 들고다니는 007 가방만 놓여 있다. 총장실의 전통적인 소품인 대통령과의 악수 사진도 없다’란 신문 보도가 나왔다. 이 때문에 ‘수도승 총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당시 언론들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평검사 시절부터 집무실 치장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자리에 연연하지 말자고 결심한 것은 맞으나 그것을 보여주려고 그런 건 아니다. 공직이란 걸 천직으로 여기고 일하면서도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변호사를 하면서 보는 검찰은 어떤 모습인가.

“검찰의 내분이나 과잉수사에 대한 비판에 공감하는 바도 있지만 어려운 수사 여건에서 고생하는 검찰에 대한 애정엔 변함이 없다. 다만 검사들이 피조사인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잘 들어주면 수사도 더 잘될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 경험을 한 사람을 판사나 검사에 임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제는 폭넓은 경험을 가진 인사가 판검사가 되는 게 맞다고 본다. 오염을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다.”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수사를 둘러싸고 수사 검사의 항명과 징계로 검찰이 혼란스럽다.

“검찰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무척 갑갑하다. 검사들이 수사하다 상사와 갈등을 빚는 일은 옛날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대부분 토론을 통해 상사들이 수사팀 의견을 수용하고, 한목소리를 내며 사태를 수습했다. 이번엔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이번 사건의 수습은 어떻게 해야 하나.

“수사 검사가 바뀌었지만 결국은 변경된 공소장에 따라 공소를 유지하고 있지 않나.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 일어나 국민의 불신만 키운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는데.

“검찰의 최우선 과제는 정치적 사건에서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검사 개개인이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안팎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미국에는 ‘정의는 반드시 행해져야 할 뿐 아니라 보여져야 한다’는 법언이 있다. 수사의 공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게 ‘공정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오른쪽)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조용철 기자]
-검찰은 언론의 앞서가는 보도나 ‘국민정서법’이 문제라고 주장하는데.

“억울한 경우도 있겠지만 검찰로선 자신들의 수사방식과 절차에 문제가 없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우선 의혹사건은 수사 개시 결정부터 합리적·객관적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표적수사나 의혹해명성 수사란 오해를 사지 않고 성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또 수사는 실무자 전원의 중론을 모아 합리적 결론이 도출되도록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 결론이 나오면 수사팀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명재 검찰총장 시절과 안대희 중수부장 시절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가장 높았다”는 얘기가 있다.

“당시 대통령 아들의 비리의혹을 수사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자금을 파헤친 덕분인 것 같다. 검찰이 신뢰를 얻으려면 권력과 거리를 두는 게 핵심이다. 정치사건에 관한 한 정파의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이 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검사 시절 외압을 받은 경험은 없나.

“내 지휘부에 무슨 외압이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소신껏 수사를 했다. 내가 지휘부에 있을 때도 부하들에게 소신껏 하라고 했다.”



-올바른 검사의 길은 무엇인가.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진정한 무사는 겨울날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는 무리지어 날아감으로써 오래 날 수 있고 위엄도 생겨 어떤 난폭한 조류도 덤비지 못한다’고 했다. 검사는 명예를 먹고 산다. ‘곁불 쬐지 말라’는 건 검사들이 명예를 소중히 여길 것을 촉구한 말이고 기러기 언급은 단결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거대한 불의에 맞서기 위해선 검찰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결국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손태규 단국대 교수의 일간지 기고문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총장이면서 국민의 총장이어야 한다. 정치적 압력을 피할 수 없으면서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영국의 검찰총장이었던 마이클 헤이버스는 검찰총장에 대해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놓인 사람’이라고 일컬었다. 수난은 검찰총장의 숙명인 것이다. 카터 대통령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그리핀 벨은 카터와 친분이 두터웠지만 ‘대통령이라도 옳은 일이 아니면 돕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임기 내내 이 약속을 지켰다. 은퇴할 때 ‘벨보다 더 잘한 검찰총장은 없었다’는 칭찬을 받았다.”



-검찰총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 총장이 잘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아니오’라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고집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검찰총장이 되겠다는 각오를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과 검찰총장이 충돌한 사례가 있나.

“김의진 제2대 검찰총장의 경우다. 그는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만들려는 이승만 대통령(당시)에 맞서다 옥고까지 치렀다. 1950년 4월 경무대에 줄을 댄 정치브로커 김태수가 이 대통령의 허락 아래 무고한 인사들을 공산당으로 조작한 ‘대한 정치 공작대’ 사건이 발생한다. 이 대통령은 김 총장에게 ‘이 사건에 일절 관여하지 말라’는 특명을 내렸지만 김 총장은 공작대원 108명을 검거했다.”



-이 대통령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이 사건으로 두 달 뒤 김 총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좌천됐다. 김 총장은 사표를 던질 수도 있었지만 ‘대통령이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두면 후배 검사들이 소신 수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직무를 수행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 측은 52년 부산에서 이 대통령 저격미수사건이 터지자 이 사건에 김 총장이 연루됐다면서 고검장직에서 파면하고 구속했다. 김 총장은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풀려났지만 얼마 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와 같이 일해본 적이 있나.

“내가 총장으로 재직할 때 그를 중수부 과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대통령 아들 수사 주임 검사를 시켰다. 그는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아무 잡음도 내지 않았다. 훌륭한 검사였다. 그를 보고 ‘고집불통’이라고들 하는데 이유 없는 고집을 부리는 걸 보지 못했다. 그런 고집이 총장직에 큰 자산이 될 것으로 본다. 독실한 불교 신자라고 한다.”



-이유 있는 고집쟁이란 얘긴가.

“어떤 압력에도 휘둘리지 않을 사람이다. 정치권과 국민에게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을 사람이다. 리더에겐 선견력(先見力)이 중요한데 그는 이런 능력이 있다. 위기에 처한 검찰을 잘 추스를 것으로 기대한다.”



-새 검찰총장의 과제는.

“국정원 댓글 수사 논란으로 검찰이 휘청대고 있다. 새 총장은 무엇보다도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공소유지에 완벽을 기해 유죄선고를 끌어내야 한다. 또 흩어진 검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조직의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새 검찰총장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역대 정권들이 검찰을 독립 아닌 장악의 대상으로 봐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검찰이 불신받는 근본 원인은 검찰 자신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검찰이 진정 독립을 원한다면 스스로 엄격해져야 하고 국민 입장에서 형평과 정의에 입각해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를 입게 된다. 검찰의 제단에 몸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검찰총장에겐 불면의 밤이 올 것’이라고 했다.

“총장이 되면 대한민국의 모든 고민을 한 몸에 안고 살게 된다. 백리 밖의 불길로 보이던 나라 안의 각종 갈등이 금방 검찰에 발등의 불로 다가온다. 그러니 고뇌와 불면의 밤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본인도 총장 시절 불면의 밤을 보낸 듯하다.

“총장에 앞서 중수부장 시절부터 그랬다. 부장이 되면 집에 특수전화기가 설치된다. 새벽 4시면 전화가 울린다.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 벨소리가 제일 무서웠다.”



-선배 검사 중 존경하는 인사가 있는가.

“초임 검사 때부터 모셔왔고 늘 존경하는 분이 계신다. 그분은 항상 ‘정도(正道·바른 길)로 수사하라’고 강조했다. 후배들이 일이 많을 때는 함께 밤을 새우며 거들었다. 야단칠 때는 무섭게 했다. 그러고는 잊어버리셨다. 퇴근 길에는 소주를 사주며 달래주셨다. 그분을 닮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검사 생활을 했다.”



-후배 검사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자리가 아니라 일로 평가받는 검사가 되라는 것이다. 검사가 되면 남들이 알아주는 특수부나 공안부에서 이름을 날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사건 하나 하나를 잘 처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당사자들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검찰권의 정당성은 법이 아니라 고도의 청렴성과 도덕성에 근거한다는 걸 명심하기 바란다. 검사는 일종의 사회공학자다. 사회현상에 늘 관심을 가져야 문제를 풀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언하고 싶은 것은.

“국민과 신뢰를 토대로 강한 연대감을 구축하고 원칙을 고수하며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정책의 방법은 유연해도 방향은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지금까진 이렇게 해왔다고 본다. 이와 함께 검찰의 독립성을 존중해 ‘사상 가장 위대한 검찰총장’을 탄생시키기 바란다.”



-혈색이 좋은데 건강의 비결은.

“매일 50분가량 걸은 뒤 동네 목욕탕에서 20분간 반신욕을 한다. 건강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살도 빠진다. 그리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설거지를 한다.”



-‘운명이 없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법대 졸업 뒤 5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시험에 자꾸 떨어지니 한때 포기하고 은행에 다니기도 했다. 그때는 은행에서 월급을 많이 줬다. 그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저히 은행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휴직하고 재도전한 끝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대구 팔공산 자락 암자 ‘환성사’에서 공부할 때 사주를 보러 갔는데 ‘27세가 돼야 합격할 것’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27세가 되던 해에 딱 합격했다. 사람에겐 운명이라는 게 없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싶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차피 참고 걸어가는 먼 길이다.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많은 길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가변성을 가진다. 그래서 ‘지금’ 그리고 ‘여기’를 소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검찰에 몸담던 시절 인생의 절정기에 있던 인사들을 수사하며 그들의 영욕을 지켜보았다. 잘나가던 사람이 한 발자국 더 나가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도했다. 분수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이란 교훈을 그때 얻었다. 도전도 야망도 분수에 맞게 가져야 한다.”



대담·글=이광재 객원 칼럼니스트·전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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