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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통합형 대타협으로 ‘축복의 섬’ 이룬 나라”

안병영 72세. 연세대 정외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뒤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로 일했으며 교육부 장관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안병영 저 문학과 지성사
“‘축복의 섬’ 오스트리아”. 1971년 교황 바오로 6세가 바티칸에 온 프란츠 요나스 대통령을 맞이하며 오스트리아를 칭송한 말이다. 파업도 정치 갈등도 없이, 타협과 양보로 번영을 구가하는 이 나라가 행운의 땅으로 보였던 거다. 하나 오스트리아는 1934년 보수·진보로 갈려 서로 죽이고 죽는 처참한 내전을 치렀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 돼 온 국토가 잿더미로 되고 나라가 찢기는 아픔을 겪었다. 이런 비극 속에서 오스트리아는 국민적 대타협으로 불사조처럼 되살아났다. 한국이 이념 갈등으로 휘청대는 요즘, 이 나라의 지혜를 배우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참에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라는 역작이 나왔다. 오스트리아에 정통한 저자 안병영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난 27일 만났다.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펴낸 안병영 전 부총리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그간 한국에선 이상적인 국가 모델로 미국을 얘기하다 나중엔 스웨덴·핀란드·네덜란드와 같은 유럽 강소국을 꼽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미국이나 우리와는 상황이 다른 스웨덴보다 차라리 오스트리아에서 배울 게 많다. 이 나라는 미국의 보수주의 노선이나 스웨덴의 사민주의 체제와는 달리 중도통합형 모델이다. 보수·혁신으로 양분화된 한국의 경우 정치가 파행되기 일쑤여서 합리적인 중도통합형 모델이 대안이다.”

-미국ㆍ스웨덴의 모델엔 무슨 문제가 있나.
“미국은 전형적인 자유시장주의이지만 국정 운영은 보수적이다. 스웨덴은 장기간 사민주의가 주축이 돼 와 중도통합형 모델이라 말하긴 어렵다. 특히 한국에선 진보세력이 다른 세력을 규합하면서 정치를 하는 건 무리다. 게다가 스웨덴의 경제·사회체제는 과도하게 평등지향적이다. 한국에선 정치·경제 모두 지나치게 진보적이 되긴 어렵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에 경도돼도 곤란하다. 모든 쟁점에서 좌우가 적절히 균형을 잡아야 한다.”

‘두 겹의 합의 체제’ 작동
- 그간 오스트리아 모델은 왜 주목받지 못했나.
“한국은 그간 대국 위주로 세계를 봤다. 90년대 이후엔 스웨덴이 강소국으로 부각돼 관심을 끌었다. 반면 오스트리아는 서방의 변방에 있어 덜 드러났다. 과거엔 독일에 붙어사는 나라로 치부됐었다. 그러다 최근 10~20년새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 유럽의 선도국가가 됐다. 요즘 유럽에서도 오스트리아 모델에 관심이 커졌다고 한다. 우리가 한발 늦게 관심을 갖게 된 거다.”

-이 나라는 어떻게 중도통합에 성공했나.
“종전 후 지금까지 68년의 세월 가운데 41년간 대연정을 했다. 대연정이 예외가 아닌 정상이 된 거다. 이 덕에 대연정을 통해 국가적인 주요 이슈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사회적 파트너십도 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노사정 거버넌스는 요즘 다른 유럽 국가에선 퇴조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선 아직 기본 틀이 지켜지고 있다. 대연정과 사회적 파트너십을 합쳐 ‘두 겹의 합의 체제’라 부른다. 정치적으론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가 합의해 나라를 다스리고 노사정이 협력해 사회·경제적 문제를 풀어간다. 이 두 체제를 통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뤄냈고 이 덕에 실업률도 낮다.”

-대연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1공화국의 엄청난 실패가 큰 교훈이 됐다. 정치엘리트들이 통절한 반성을 했다. 과거의 뼈아픈 내전 경험 덕에 엘리트 사이에선 국가적 난제를 함께 풀어가는 게 습성화됐다. 역설적으로 상호 불신도 도움이 됐다. 한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면 나라가 한쪽으로 기운다는 걱정이 작용했다. 대연정이 무너지면 사회적 파트너십도 흔들릴 것이라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이 나라에선 대연정 와해 이후에도 파트너십이 유지된다.”
안병영 전 부총리는 평생 학문에 몰두해온 학자이면서 교육 행정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덕에 누구보다 이 나라에 대해 정통하다. 지금은 강원도 고성에서 농사를 지어 ‘농부가 된 부총리’로 유명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오스트리아 정치에서 배울 점은.
“극단주의에서 벗어난 과정을 눈여겨 봐야 한다. 2차대전 후 이념지향적인 두 정당이 통절한 자기반성을 통해 중도 쪽으로 옮겨갔다. 권위주의적 가톨릭시즘에 바탕을 두었던 국민당은 종교 색채를 덜어내고 다원주의적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사민당은 58년 공산당과 완전히 결별한다. 60년대 후반부턴 리버럴한 시민정당에 가깝게 바뀐다. 좌우 모두 극좌와 극우를 철저히 배제한 거다. 그러면서 두 당은 상호 불신을 덜어내게 됐다. 문제 해결 속도가 빨라지고 성공이 성공을 낳게 됐다. 불신에 기초해 시작된 대연정이 선순환에 들어간 거다.”

-오스트리아의 경제체제는.
“독일과 함께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의 국가로 불려 왔다. 국가가 자유경쟁을 보장하면서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영향을 다양한 방법으로 바로잡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사회적 약자 보호에 중점을 둬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고도 한다. 오스트리아는 80년대 이후 한걸음 더 나아가 ‘생태사회적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공정성에다 ‘환경’이라는 제3의 개념을 보탠 것이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발전’의 맥락에서 보완을 시도하는 거다. 오스트리아는 환경정책에 관한 한 유럽의 선도국가로 ‘비(非)원자력 오스트리아’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영세중립국 정책도 도움이 됐나.
“물론이다. 오스트리아의 새로운 역할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냉전의 한 쪽이 아니라 이를 초월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국가적 자존심을 찾았다. 이 덕에 독일 민족주의, 범게르만주의는 반드시 필요치 않다는 인식이 커졌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동유럽이 열리면서 그 중요성이 커졌다. 더불어 중립국가의 특수성으로 수도인 빈에 많은 유엔 기구를 유치했다. 지금은 현실주의적 외교를 통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한다.”

-극단이 판치는 한국에서도 오스트리아 모델이 가능할까.
“이념적·정책적 차이는 말로 대립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이념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뜻이다. 정책에 대한 국민의식을 조사하면 중간에 많이 몰려있다. 그런데도 쟁점이 생기면 양극으로 몰려 대결적 양상을 띤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정치의 ‘안철수 현상’도 이 때문 아닌가. 물론 오스트리아 정치 관행을 그대로 옮겨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도를 만들 순 있지만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문화적 전통이 뒷받침돼야 한다. 노사정위원회가 계속 파행을 겪는 것도 합의할 줄 모르는 한국의 정치문화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 역사는 우리에게 엄청난 영감과 창의적 상상력을 던져준다. 우리에게 절실한 건 올바른 정신과 방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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