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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엘리트들 우선 잘 들을 줄 알아야 ‘내가 사건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은 위험”

이공현 1949년 전남 구례 출생. 광주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71년 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법조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어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법원행정처 차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5년부터 6년간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재임했다. 당시 사형제와 간통죄에 합헌 결정을, ‘미네르바’ 사건엔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현재 법무법인 지평지성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검찰이 되살아나려면 수사의 중립성을 확고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공현(63·사진) 전 헌재 재판관을 만나 법원과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들어봤다. 그는 만 23세에 최연소 판사로 법복을 입은 이래 38여 년간 민사·형사·행정 분야에서 다양한 재판을 경험했다.

이공현 전 헌재 재판관

-40년 가까이 판사와 헌법재판관을 하다 변호사로 전환하면서 느낀 점은.
“변호사를 해보니 판사, 헌법재판관에 앞서 변호사를 했더라면 더 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이라는 게 요건과 사실만 갖추면 된다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일률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변호사를 했던 사람을 판사나 검사에 임명하자는 주장에 찬반양론이 있는데.
“변호사를 하다 판사를 한다는 것 자체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건은 천차만별이다. 판사 임용에 앞서 경험을 쌓는 게 사건의 실체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변호사 경험을 가진 인사가 검사나 판사를 맡는 게 필요하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15.7%에 불과한 것으로 나왔다.
“법원은 심판자로서 판결을 하고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로서 공소 유지를 한다. 그런데 헌법과 법률에 기초해 공소가 이뤄지고 있지 않아 그런 불신을 받는 것이다.”

-고시에 합격한 엘리트들은 임용 뒤에도 열심히 일한다. 그럼에도 신뢰도가 낮은데 이를 높이는 방법은.
“(국민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법조 엘리트들은 ‘내가 사건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여기서 벗어나 우선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뼈저리게 생각해야 한다.”

-판사를 지낸 지 8년 만에 교회에 나가게 됐다고 했다.
“처음 판사에 임용됐을 때는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강도살인 사건을 맡으면서 기가 꺾였다. 검사는 유죄를,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사람이 사람을 재판하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나 자신이 겸손해지기 위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미국·프랑스의 무죄율은 대략 9%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1% 선에 불과하다.
“헌법에 형법 절차가 규정돼 있다. 합리적 의심을 충족할 증거가 제시될 때만 유죄를 주게 돼 있다. 그렇지 못해 합리적 의심이 들면 무죄를 줘야 한다. 공권력을 동원해 얻은 (검찰의) 막대한 증거 능력과 피고인 개인이 가진 증거 능력을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

-판사와 검사가 엄격히 분리돼야 하나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는 외국과 달리 정부가 소수의 법조인을 선발하고 판검사 후보생들이 사법연수원에서 함께 생활한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판사가 피고인보다 검사를 더 신뢰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판사는 심판자로서 엄격함을 유지해야 한다. 인맥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국민은 국민참여재판을 요구하는데.
“시대적인 흐름이라 인식해야 한다. 국민의 납득과 신뢰가 중요하다. 국민참여재판을 하면 비용이 커지고 절차도 복잡해지나 이를 감수해서라도 재판이 공정했다는 믿음이 자리잡게 해야 한다. 일정 사안에는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고 사후평가를 통해 그 폭을 결정해 가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인맥과 정으로 움직이는 사회라 배심원제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안다. 그러나 배심원에 선발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고 참여하고 있다. 배심원을 객관적·합리적으로 선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성과도 긍정적이라고 본다.”

-대법원 대법관 12명이 1년에 3만 건을 재판한다.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닌가.
“사건은 적어도 세 번은 재판해야 한다는 게 국민적 인식이다. 1년에서 주말을 빼면 250여 일뿐이니 하루에 10건씩 판결을 내려야 한다. 게다가 대법원 연구관은 100명 선에 불과하다. 사건이 이렇게 과다하면 사법부에 불신이 생겨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법원을 이원적으로 운영하자는 논의도 있다. 대안을 모색할 때가 왔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어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과 대법원장 자리는 고도의 정치행위의 산물이다. 대법관 후보자 추천위원회가 좀 더 분명하고 공정하게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정치권력도 대법원을 움직이려는 욕망을 가져선 안 된다. 미국처럼 종신제 대법관 제도를 가진 나라도 있다.”

-헌법재판관도 대통령과 국회·대법원장이 추천하게 돼 있어 중립성 논란이 이어진다.
“현 제도가 적절하다고 본다. 헌법재판소는 다양성을 확보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1948년부터 88년까지 위헌 판결은 단 5건뿐이었다. 반면 88년 헌재 출범 이후 20여 년 만에 위헌결정이 400여 건이나 나왔다. 장식품이던 헌법이 진짜 법으로 살아난 거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참 어려운 문제다. 헌법과 법률에 주어진 틀 안에서 검찰의 권한이 행사돼야 한다. 권력자도 검찰을 통치에 이용하려 해선 안 된다. (피의사실 공표 부분은 더 엄격히 제한될 필요가 있는데) 당연하다.”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선진국도 그렇다. 입법부에 법조인이 많으면 전문성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민주주의에선 ‘다수결 원칙’을 중시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뒤 ‘과연 다수는 진리인가’라고 물었는데.
“민주주의는 주권재민과 다수결의 의사결정이 핵심이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가치를 가졌느냐도 중요하다. 다수결로 선출된 독일의 나치 권력은 전대미문의 폭정을 저질렀다. 그래서 민주주의나 다수결 외에 헌법 같은 근본 규범에 의해서도 권력이 통제돼야 한다는 반성이 생겨났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가 탄생했다.”

-타협이 끝내 안 돼 다수결로 결정해야 할 때가 온다면.
“타협을 얼마나 시도했느냐가 중요하다. 헌법재판소에 있어 보니 여야 모두 자신들이 다수당일 땐 다수결 원칙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더라. 그러나 소수당일 땐 ‘소수의 권리’를 강조하며 ‘다수에 의해 권리가 침해됐다’고 하더라. 이래선 안 된다.”

-헌법 개정 논의는 어떻게 보나.
“지금까지 우리는 헌법을 9차례나 고쳤다. 영국은 불문헌법 국가지만 선진국이다. 우리 헌법도 이제는 수출해도 될 만큼 잘 만들어져 있다. 헌법을 잘 지키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행정부처에서 예규를 만들 때 인원과 조직에 제한이 있는데.
“행정부가 작성한 지침, 예규가 국민에겐 헌법과 법률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실질적인 규제가 숨어 있다. 범정부적인 노력을 기울여 국가 시스템을 만들 때가 왔다. 법률과 시행령, 규칙이 충돌하다 보니 국회에서 시행령, 규칙으로 정할 내용을 법으로 정하려 하거나 사전 심사를 요구한다.”

-후배 법조인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법조인 중엔 세 부류가 있다. 그냥 공부 잘해 법조인이 된 모범생, 법조인이 됐음에도 법조 업무를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훌륭한 법조인이 되려면 법을 좋아해야 한다. 그저 법조인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를 가장 사랑하고 열정을 바치는 곳에 인생을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고시 동기생 모두 같은 꿈을 갖고 출발했지만 결과를 보니 그게 아니더라. 재능과 적성을 따라 사는 게 행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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