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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전시하의 정치파동(4)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원용덕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은 밀양에 주둔하고있는 1개 대대의 육군병력을 즉각 부산에 보내 줄 것을 대구에 있는 육본에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의 비상계엄선포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육본 측이 원용덕 장군의 이 요청을 들어줄리 없었다.
군대를 동원해야 할만큼 부산의 치안이 나쁘지 않다고 원 장군의 요청을 거절한 육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부대에 훈령을 보내 병력이동을 못하게 했다.(주=본 연재 253회 참조).
육본참모들에 의해 만들어진 <육군장병에게 고함>이라는 문제의 훈령217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군의 본연의 존재이유와 군인의 본분은 엄연히 확립되어 있는 바이므로 지금 새삼스러이 이를 운위할 필요조차 없는 바이나 현하 복잡 미묘한 국내외 정세가 바야흐로 비상 중대화 되어가고 있음에 감하여 군의 본질과 군인의 본분에 대하여 투철한 인식을 견지하고 군으로서 그 거취에 있어 소호의 유감이 없도록 육군 전 장병의 냉정한 사리판단과 신중한 주의를 환기코자 하는 바이다.
<여하한 사태에도 본분 지켜라>
군은 국가민족의 수호를 유일한 사명으로 하고있으므로 기관이나 개인에 예속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변천 무상한 정사에 좌우될 수도 없는 국가와 더불어 영구 불멸히 존재하여야할 신성한 국가의 공기이므로 군인의 본분 역시 이러한 군 본연의 사명에 귀일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군인된 자 수하를 막론하고 국가방위와 민족수호라는 그 본분을 떠나서는 일거수 일투족이라도 절대로 허용되지 아니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군이 현하 혼돈한 국내정세에 대하여 그 권외에서 초연하여 본연의 임무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고 특히 거반 발생한 서창선 대위 살해사건에 대하여서도 실로 분통을 금치 못하였으나 역시 법치국가의 군대로서 군의 본질과 사건의 성질에 비추어 냉정히 사태의 추이를 직시하면서 공평무사한 사직의 손으로서 법률에 의하여 그 시비곡절이 구명될 것을 소기하고 있는 것도 군의 현재 이념에서 볼 때 당연한 처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밖으로는 호시탐탐 친공의 기회를 노리는 적을 대하고 안으로는 복잡 다단한 제반정세에 처하여 있는 군에 있어서 군인 개인으로서나 또는 부대로서나 만약 지엄한 군 통사 계통을 문란하게 하는 언동을 하거나 현하와 같은 정치변동기에 승하여 군의 본질과 본분을 망각하고 의식 무의식을 막론하고 정사에 관여하여 경거망동하는 자가 있다면 건군 역사상 불식할 수 없는 일대 오점을 남기게 됨은 물론 누란의 위기에 있는 국가의 운명을 일조에 멸망의 심연에 빠지게 하여 한을 천추에 남기게 될 것이니 국가의 운명을 쌍견에 지고 조국수호의 성전에 감사 헌신하는 육군장병은 몽매간에도 군의 본연의 사명과 군인의 본분을 염념 명심하여 그 맡은바 임무를 완수하여 주기를 바란다.
충용한 육군장병제군 거듭 제군의 각성과 자중을 촉구하오니 제군의 일거수일투족은 국가의 운명을 직접 좌우하거늘 제군은 여하한 사태 하에서라도 신성한 군 통사 계통을 준수하고 시종일관 군인의 본분을 사수하여 오로지 조국과 민족수호에 매진함으로써만이 조국의 앞길에 영광이 있다는 것과 군은 국가의 공기임을 다시금 명심하고 각자 그 소임에 일심 불란 헌신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육군참모총장 육군중장 이종찬> <주=본 훈령 원문은 훈령초안자의 한 분인 김종면 서울신문 상임감사(당시 육본정보국장)가 제공한 것임>
<난국타개 위한 조처에 동조도>
육본의 이 같은 태도는 당시 한국군의 작전권을 쥐고있는 주한 미8군에도 큰 영향을 주어 이승만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퍽 가까운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도 병력동원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되었으며 이 때문에 정부측 입장은 더욱 곤란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 관계자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박사의 계속집권이 국난을 극복하고 국가이익에 부합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하고있다.
▲박승출씨(당시 원외자유당 국회의원·현 육영사업·64) <나와 배은희 황성수씨 등 이 박사를 가까이 모시던 사람들은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그리고 헌법 형태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보다는 당면함 국난을 어떻게 극복해야할 것인지가 큰 문제라고 생각했읍니다.
부산까지 밀려온 당시의 위급한 사정으로 볼 때 이 박사를 중심으로 정권을 유지하여 이 국난을 해결하는 것이 보다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길이고 이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여러 가지 지엽적인 방법이나 수단이나 정치행동에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6·25동란으로 일어난 난국의 타개를 위해서는 이 박사 중심으로 정권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읍니다. 전시이기 때문에 일반국민도 이박사가 계속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바랐던 거예요.
그리고 이박사도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일종의 사명감에 불탄게 사실이었고요.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도 어지러운 현 난국을 조속히 타개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읍니다. 그 과정에서 야당의원이 탄 버스를 끌고 가고 국회의원을 연행해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이런 짓들은 이 박사나 여당인 원외자유당의 의사는 아닌 것으로 압니다. 이는 이 박사 지지자들의 과잉 충성이 빚은 잘못이었다고 보아야겠지요.>
<원용덕 사령관, 의원연행 지시>
▲유병국씨(당시 부산지구헌병대장=중령·예비역육군대령·현 사업·49) <계엄이 선포되자 원용덕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이 나를 사무실로 부릅디다.
원 장군은 『내가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이다. 자네는 지금부터 내 지시감독을 받으라』고 하면서 주머니에서 이 대통령의 친필로 『육군참모중장 원용덕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에 명함』이라고 쓴 임명장을 내놓읍디다.
나는 직속상관인 이종찬 장군이 계엄사령관인데 그러면 계엄사령관이 두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호되게 기합을 줍디다.
그 자리서 원 장군은 일부 국회의원 명단을 내놓더니 군경합동으로 연행해 오라고해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했더니 『귀관은 알 필요 없어.』라고 호통을 치더군요.
부산에는 당시 2백명의 헌병이 있었는데 계엄사령관의 명령이라서 합동반에 헌병을 내보냈읍니다.
버스에 탄 국회의원들이 헌병대에 연행돼 왔을 때 우리 헌병들은 상부의 지시 때문에 내보내지는 못해도 불편이 없게 모든 편의를 다 제공했지요>
한편 육본에서 병력동원을 거부하자 격노한 이대통령은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을 부산으로 소환했다. 이때의 당사자 이야기.
▲이종찬씨(당시 육군참모총장=중장·현「코리어·엔지니어링」사장·56) <5월27일 참모회의를 하고있는데 신태영 국방장관이 전화로 이대통령 명령이라면서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합디다. 조금 있으니 다시 이대통령이 직접 전화로 『이 장군 할 얘기가 있으니 부산으로 오라』고 격한 어조로 말씀하더군요. 그날 저녁 문산에 휴전회담 대표로 나가있는 유재흥 참모차장을 불러 총장 서리를 부탁했는데 나는 사실 이때부터 총장직을 그만둘 각오를 했어요.
어쩌다 「밴플리트」장군과 동행이 되어 이대통령 관저에 갔더니 대뜸 『너는 왜 나라에 반역하고 나에게 반역하느냐』고 하십디다. 그러면서 「밴플리트」장군 보고 『일부 불순분자들이 정치적 장난을 하려고 하는데 그들 손에 정치를 맡기면 나라를 그르치니 이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 이 같은 어려운 때에 이 장군이 그들과 손을 잡고 나를 배반하니 그냥 둘 수 없다』고 합디다.
나는 나의 행동이 군을 조국의 방패로 튼튼히 키우지 위해서는 정치에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왔다고 말씀드리고 써 가지고 온 사표를 내놓았어요.
그런데 이대통령은 『아직은 자네만 믿네』하며 사표는 안 받아요. 그날 오후 다시 대통령 관저에 들어갔을 때는 이대통령의 태도는 많이 누그러졌읍디다. 대통령은 나보고 『내가 잘못했던, 자네가 잘못했던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지』하십디다.
『각하 모든 것을 원상복귀 시키고 계엄사항을 원칙대로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군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됩니다』고 했더니 해결할 자신이 있느냐고 묻습디다.
계엄민사부장인 이호 준장을 부산에 주재시키면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더니 옆에 있던 원용덕 장군이 그렇게 하면 일할 수 없다고 합디다. 원 장군은 『각하께서 저를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이라고 임명하지 않았읍니까』하면서 임명장을 내보입디다. 그러면서 자기가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이니 계엄사항은 자기가 해야한다고 주장해요.
<밴플리트 장군, 병력동원 반대>
옆에서 듣고만 있던 「밴플리트」장군이 자기는 한국의 정치 일에는 관여할 수 없지만 작전권이 자기에게 있는 이상 부산에 군대투입은 안 된다고 하더군요. 저녁때 관저를 나올 때 원용덕 장군이 병력동원도 안되면 어떻게 하라느냐고 하길래 「밴플리트」장군에게 물어보라고 해버렸어요. 「밴플리트」장군은 공산군과 싸우는 이때 병력은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합디다.>
육본수뇌의 이 같은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대통령은 혼란기에 인사이동을 단행하는 것이 이롭지 못하다고 보고 그대로 두었다가 발췌개헌안이 통과된 후에야 참모총장을 비롯, 계엄선포 반대에 앞장선 정보국장·헌병사령관·계엄민사부장·작전국장·법무감 등 6명을 모두 해임시켜 버렸다.
◇주요일지(1952년2월9·10·11·12일)
※2월9일 ▲고시위원장에 김법인씨 임명 ▲「맥아더」원수를 미국 공화당 대통령으로 추대 움직임
※2월10일 ▲휴전회담 계속 답보 ▲북일 배상교섭 시작
※2월11일 ▲「트루먼」, 국회특별교서 제출 ▲한국지상전투는 소강상태
※2월12일 ▲지부의 문등리 계곡서 격전 ▲지리산 지구서 공비 40명 사살 ▲「리지웨이」사령관, 소련의 일선 불법 나포 항의 ▲일본 정부 법무성, 일 공산원 총수 35만이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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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