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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살아선 조국, 죽어선 전우를 지키다

장세정
정치부문 기자
28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25일 타계한 채명신(1926∼2013) 초대 주월남(베트남) 한국군사령관 겸 맹호부대장(예비역 중장)의 영결식이 열렸다. 태극 무공훈장 등을 받은 고인의 육군장(葬)이 치러진 현충관 실내는 500여 명의 조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병사묘역 안장된 장군 채명신

 이 자리에는 현역 장성·장교들보다 백발이 성성한 70대 이상 예비역 병사들이 더 많았다. 특히 전투복을 입은 베트남전쟁 참전 노병들도 100여 명이 넘어 보였다.



 맹호부대 1기갑 연대 11중대 1소대 부분대장으로 1965년 10월부터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칠순의 김남수 예비역 병장. 그는 쌀쌀한 날씨에 초대장 없이 영결식장을 찾았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장군이라고 결코 폼 잡는 일 없이 항상 소탈했다. 내가 말라리아에 걸려 병상에 누웠을 때 직접 방문해 위로를 해줬다. 계급을 떠나 항상 부하들을 가족처럼 대해준 고인의 인품을 존경해왔다”고 했다.



초대 주월(베트남) 한국군사령관을 역임한 고 채명신 예비역 중장의 안장식이 28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됐다. 채 장군의 유해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성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사병묘역에 안장됐다. 안장식에 참석했던 한 노병이 채 장군의 임시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현재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임시 묘비는 추후에 병사들과 같은 크기(높이 76㎝, 폭 30㎝, 두께 13㎝)의 화강암 비석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안성식 기자]
 고인의 남다른 부하 사랑은 6·25전쟁 때 경북 풍기 남쪽 270 고지전 경험이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당시 부하였던 김관기 소대장이 적군의 포탄이 쏟아지는 와중에 천으로 만든 군모만 쓴 채 전투를 지휘하는 고인에게 자신의 철모를 씌워줬다. 당시 김 소대장은 “적의 포탄이 터져 돌덩어리가 날아왔지만 이 철모 때문에 살았습니다. 재수 좋은 철모이니 중대장님이 쓰십시오”라고 말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때를 회상하며 고인은 생전에 “나는 죽어도 이런 전우들과 함께하리라 마음먹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고인의 부관을 지낸 박희모(6·25 참전 유공자회 회장) 예비역 중장은 추도사에서 “1968년 1월 베트콩의 구정공세 때 사령관의 공관까지 공격받았지만 고인은 가족을 돌보기보다는 분연히 전투복을 갈아입고 전장으로 달려갔다”고 회고했다. 이어 “고인은 장군묘역을 마다하고 사랑하는 부하들이 있는 병사묘역에 묻히길 원했다”며 유언을 소개했다. 이 대목에서 상당수 노병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건군 사상 최초로 장군묘역에 묻히는 특전을 내던진 고인의 행동이 심금을 울린 것이다.



 3성 장군 출신인 고인이 봉분을 쌓고 큰 비석을 세울 수 있는 26.4㎡(8평)짜리 장군묘역이 아니라 병사들과 같은 크기의 비석에 3.3㎡(1평) 땅에 평장을 한다는 소식은 이날 하루 종일 화제가 됐다. Rainy-day라는 ID를 쓰는 한 네티즌은 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살아선 조국을 지키고, 죽어선 전우를 지키겠다는 위대한 군인 채명신 장군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장례위원장인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은 조사(弔辭)에서 “수많은 사선(死線)에서 죽음에 초연했던 월남전의 영웅. 고인의 업적은 육군의 역사와 전우들의 가슴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남전 파병 장병 위문 공연 시절부터 고인과 친했다는 가수 패티김이 조가(弔歌)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불렀다.



 오후 2시30분. 고인은 유언대로 서울현충원 제2 병사묘역에 안장됐다. 베트남 참전전사 병사 971명이 잠들어 있는 곳이자 고인이 생전에 자주 찾았던 곳이다. 육군 병장 김영철, 육군 상병 장상철, 육군 병장 홍권표 등 72년에 전사한 병사들의 키낮은 비석들이 똑같은 눈높이로 고인을 맞았다. ‘참군인’은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전우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글=장세정 정치부문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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