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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출제 잘못 해놓고 "정답 선택에는 불편함이 없다" 라니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동안 언론에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이번 2014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 문제지에는 오류가 하나 있다. 오류라기보다 오자·오타라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40번 문제의 ‘보기’ 문장이다. A형·B형 문제지에 모두 출제됐다. 조선시대 문인 정극인(1401~1481)의 가사 작품 ‘상춘곡’으로, A형에서는 현대어로, B형에서는 고어(古語)로 표기했다.



 제시문 중에 ‘녹양방초(綠陽芳草)는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A형), ‘녹양방초(綠陽芳草)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B형)는 문장이 있는데, ‘녹양방초’의 한자 중 ‘양(陽)’은 ‘양(楊)’으로 해야 옳다. ‘버들 양’을 넣을 자리에 ‘볕 양’자를 잘못 쓴 것이다. 덕분에 ‘푸른 버드나무와 향기로운 풀’이라는 원래의 뜻이 ‘푸른 햇볕과 향기로운 풀’이라고 이상하게 바뀌어버렸다.



 수험생들이 정답을 고르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오류였다는 점이 다행이긴 하다. 그러나 다른 과목도 아닌 국어 과목에서 이런 오자가 나왔으니 창피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오자라는 게 마물(魔物)과 같아서 눈 부릅뜨고 몇 번씩 점검해도 귀신처럼 몸을 숨기곤 한다. ‘도둑 한 놈에 지키는 사람 열이 못 당한다’는 속담 그대로다. 그렇더라도 대입수능 시험지라면 완벽을 기했어야 했다. 혹시 출제자들의 한자 실력이 빈약한 탓은 아닐까.



 수능시험 출제 경험이 있는 한 대학교수에 따르면 문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겁나는 것 첫째가 복수정답 또는 정답이 없을 가능성이다. 수백 명의 출제자는 지방의 콘도에 꼼짝없이 갇혀서 20일간은 출제와 점검을 하고 나머지 10일간은 인쇄작업이 마무리되길 기다린다. 휴대전화 등 일체의 전자기기를 지니지 못하고, 외부와의 소통을 우려해 콘도 베란다에도 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복수정답이라도 나올 경우 그런 한 달간의 노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온갖 사회적 비난을 뒤집어쓰게 된다. 다음으로 걱정되는 것은 문제지에 오자·탈자가 나오는 것이다. 셋째 걱정거리는 난이도 조정인데, 이것이야말로 ‘신의 영역’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번처럼 일부 과목이 A·B형으로 나뉘면 한층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국어 문제지 ‘보기’의 오자는 당국이 뒤늦게라도 바로잡아 학생들이 기출문제로 공부할 때 혼동하지 않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큰 파문을 빚은 세계지리 8번 문항마저 대충 뭉개고 가려는 교육과정평가원의 태도는 좀체 이해하기 어렵다. 진(眞)과 위(僞)를 제대로 가리는 교육적 견지를 내팽개치고 “고교 수준에서 정답을 선택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고 해명하다니, 고교생 아니라 초등학생 수준도 못 되는 자세 아닌가. 책임지겠다는 이마저 없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글=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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