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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쯤 로마 제국이 통치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예수라는 ‘신의 아들’이 나타나 천국의 도래(到來)를 설파하고 다녔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예수의 새로운 가르침은 고통 받던 민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기존 유대교 율법에 집착하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의 말씀은 이단에 불과했다. 불만을 품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찾아가 “가이사(Caesar·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옳습니까 그릅니까”라고 물었다. 만약 세금을 내라고 하면 로마의 식민 통치를 인정하는 셈이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에 저항하라는 얘기가 된다. 예수를 정치적 곤경에 빠트리려는 바리새인들의 음모였다. 이에 대해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답했다. 바리새인들은 별 대꾸를 못하고 떠났다고 성경은 적고 있다.

 지난 2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원로신부의 강론이 뜨거운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적어도 크리스천이라면 2000년 전 예수의 이 가르침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예수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복음이 현실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판결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메시아로서 예수의 사명은 세속의 권력을 휘둘러 발현된 게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면서 완수됐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지 “원수를 타도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 로마 제국에 대해 혁명 투쟁을 벌이던 열심당(the Zealots)은 처음에 예수가 민족해방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예수의 사상이 현실 정치를 뛰어넘는 초월적 성격임을 알게 되자 열심당은 예수에게 크게 실망한다. 성서학자들은 열심당이었던 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으로 본다. 예수 사후 열심당은 마사다 요새에서 로마군에 포위되자 전원 자살을 택하면서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반면 동시대의 지배계급과 저항그룹 모두에게서 배척받고 비참히 살해당한 예수는 2000년이 지난 지금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예수의 메시지가 당대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뛰어넘는 범인류적인 것이었기에 가능했던 거다. 이런 게 종교의 본질이다.

 박 신부는 강론에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데 의문을 제기하고, 연평도 포격 사건을 벌인 북한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해서 비난을 자초했다. 결코 동의하기 힘든 주장이다. 하지만 박 신부의 보다 근원적인 잘못은 정치 연설을 종교적 외피로 포장한 데 있다. 이건 설령 박 신부가 박근혜 정부를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 잘못이다. 종교인도 정치적 주장을 할 순 있지만 그럴 경우엔 최소한 사제복은 벗고 해야 한다. 주님의 종을 자처하는 성직자들이 예수의 복음을 기호 1번이냐 2번이냐의 수준으로 전락시켜서야 되겠나.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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