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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그렇다면 나도 '종북'일까

권석천
논설위원
‘종북’이란 이름의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여기도 종북, 저기도 종북. 이 유령을 잡을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종북(從北)이란 용어의 본적지는 보수진영이 아니라 진보진영이었다. 2001년 12월 당시 원용수 사회당 대표가 민주노동당의 통합 논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사용했다. “민중의 요구보다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종북 세력과는 함께 당을 할 수 없다.”(12월 21일 연합뉴스) 종북 논란은 2008년 민노당 내부에서 또다시 불거진다. 당내 진보신당파가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직자 제명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수파인 민족해방(NL) 계열을 ‘종북주의’로 규정한 뒤 탈당한 것이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을 계기로 대중 속에 자리 잡았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배호근)는 지난 5월 이정희 통진당 대표 등이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판결문에서 종북을 이렇게 설명한다.(※ ①②③은 편의상 붙인 것임.)

 “① 북한과 연관되었다고 인정된 사건들에 있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②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 나아가 ③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에 대해서까지 다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한 판사 출신 법조인의 설명이다.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적 구호에 가까운 셈이지요. 그래서 더더욱 신중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사용하면 여론재판과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이다. 검찰 공소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시·강조 말씀을 통해 ‘종북좌파 척결’을 오·남용했다고 제시하고 있다. “종북좌파들이 한 40여 명이 여의도로 진출했는데….”(2012년 4월 20일) “국책사업 등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면 종북좌파들의 현혹에 넘어갈 수 있으므로….”(같은 해 6월 15일)

 심리전단 직원들이 야당 후보와 정부 정책에 관한 댓글을 달고 트윗을 전송한 것도 ‘종북’ 프레임에 따른 활동이었다. 그 프레임을 잘못 확장하면 정부 입장에 동조하는 언행 말고는 모든 것이 종북으로 분류될 위험이 있다. 진짜 종북세력은 어떻게 하느냐고? ③번 유형에 해당하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실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처럼 법정에서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다.

 ①번이나 ②번까지 종북 카테고리 속에 집어넣는 건 사상의 자유, 토론의 자유를 억누르는 결과를 빚고 만다. 그들의 주장을 얼마든지 반박하고 질타할 수 있지만 분명한 근거 없이 종북이라고 규정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북한식 전체주의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가치다. 한 로스쿨 교수는 “종북이란 과장된 공포의 언어로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일이야말로 북한의 유일사상 체제를 뒤따라가는 것, 즉 종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정부·여당의 방침과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묵과하지 않을 것”이란 대통령 말씀에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해서 종북, 좌빨로 비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제껏 자신을 보수주의자라 자부해온 이들까지 ‘그렇다면 나도 종북일까’ 되뇌게 하는 게 오히려 체제에 대한 위협 아닐까.

 우리가 할 일은 생경하고 철없는 말들을 종북으로 뭉뚱그리는 게 아니다. 종북세력(③번 의미)이 ‘무해한 광신도’가 되게끔 헌법 정신을 뿌리내리는 것이다. 항균 능력을 키워 ‘건강하게’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건강이 진정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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