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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부모의 실패자 취급에 잉여인간 된 것 같아 우울하다는 24세 취업준비생


Q 24세인 취업준비생입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 부모님 희망과 달리 예술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상처가 있었죠. 이후 강남으로 이사 왔습니다. 동생의 교육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너는 실패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놔두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네요. “너는 실패했다”는 말에 내가 마치 인생의 패배자, 잉여인간이 된 것 같아 우울해집니다. 부모님도 밉습니다. 오죽하면 부모님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을까요. 부모님을 보면 울컥 화가 나 나도 모르게 무뚝뚝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요.

A 다른 얘기부터 먼저 해볼까요. 얼마 전 한 어머니가 클리닉을 찾았습니다. 아들이 공부를 못해 공부하라고 하면 반항한다는 게 고민이었습니다. 자식 걱정에 공부 잔소리는 해야겠는데 아이와 사이가 벌어지기만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하소연입니다. 본인은 PC방 출입도 허락할 만큼 아이에게 맞춰 주려고 노력하는데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다른 집 애들과 달리 왜 내 아들만 이러는지 너무 속상하다는 겁니다. 게임중독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친구가 많은지 물었습니다. 답은 “너무 많다”였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부 못하는 게 정신의학적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사회성 발달이 더디다면 문제가 되지만 친구가 많다는 건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공부 못하는 건 하나의 특징이지 병적인 게 전혀 아니고, 아드님은 잘 자라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최근 발의된 중독 예방 관련 법안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4대 중독에 술·도박·마약과 함께 게임을 포함시켰기 때문입니다. 학생을 둔 부모는 아마 다들 게임중독법에 찬성할 것입니다. 게임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고, 게임을 다들 원수처럼 여기니까요. 그러나 반대하는 의견도 상당합니다. 하나는 산업적 가치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 면도 있는 게임을 마약과 같은 중독으로 묶는 건 심하다는 주장입니다.

 옳고 그르다, 이건 이성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중독은 감성의 문제입니다.

 완벽한 성취를 이룬 사람도 내면적으로는 허무와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의 고통은 이성적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감성은 현실과 환상을 정확히 구분 못합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는 겁니다. 주인공의 사랑과 슬픔, 공포를 내 일인 양 느낍니다. 술과 마약은 화학적으로 답답한 현실에서 떠나게 해줍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잊고 환상에 잠기게 해주는 거죠. 내 환상이 만드는 가공의 현실 속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소심한 김 과장이 술 마시면 담대해지는 건 이런 이유입니다.

 게임은 술·마약 같은 화학작용이 아니라 게임 속 스토리에 나를 몰입시켜 환상에 잠기게 합니다. 전 게임이 스트레스 해소에 일부 역할을 한다고 보는 쪽입니다. 물론 중독 수준에 이를 정도로 집착하면 삶을 망가뜨리기에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지만요.

 중·고등학교 한 반이 30명이라면 최소 3분의 2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되는 구조입니다. 부모 보기에 아이들이 천하태평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 마음은 까맣습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큽니다. 공부를 잘해야만 인정받는 구조이다 보니 공부 못하면 자존감이 흔들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쓸모없게 느껴집니다. 게임 세상에 들어가서라도 존재감을 느끼고 싶은 게 너무 당연합니다. 사실 친구와 함께 즐겁게 게임이라도 하면 다행입니다. 자존감이 너무 떨어져 아무도 만나지 않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만 붙잡고 있는 아이들이 더 걱정입니다.

 청소년들은 공부로만 등수 매기는 경쟁 시스템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전에 적정 스트레스가 최고의 성과를 낸다는 적정 스트레스 이론을 소개했었는데요. 지금은 이 이론은 잠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적정 수준을 넘어 스트레스가 과도한 상황이니까요.

 가정은 이렇게 경쟁에 지친 아이의 스트레스와 좌절을 보듬어 주는 힐링캠프 역할을 해야 할 텐데 요즘 보면 오히려 태릉선수촌 같습니다. 코치인 부모가 지고 들어온 자녀를 한 번 더 야단을 쳐 주눅 들게 하고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상황입니다.

 오늘 사연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부모가 자신을 잉여인간처럼 느끼게 해 우울하다고 했죠. 잉여란 쓰고 난 나머지라는 뜻이니, 잉여인간이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렇게 부모는 속상하고, 자녀는 상처받는 이유는 가치관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40~50대 부모는 매우 현실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소년 시기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그리고 본질에 대한 의문 등 철학적 가치관을 갖는 시기입니다.

 공감은 나와 다른 상대방의 가치관을 존중할 때 가능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공감해줄 때 자녀 마음에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싹틉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고 자녀를 실패로 평가하면 자녀는 스스로를 사랑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잉여인간이라고까지 느낍니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기에 그게 좌절되면 분노가 일어나는 게 당연합니다. 자신을 나쁘다고 탓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노를 부모에게 표현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상처가 학습을 통해 유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를 상처 준 부모를 미워하면서 그대로 닮아가는 거죠. 그러나 그 유전의 고리를 끊고 앞으로 자녀가 생기면 자아존중감을 키워 주는 부모가 돼 주세요. 자신에게도 치유가 됩니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존중감을 키우는 존재입니다. 나에게 좋은 반응을 보내는 사람을 만들어 가세요. 부모에게 받은 결핍이 오히려 풍성한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관계 속에서 내 마음에 따뜻한 에너지가 가득 차고, 공감 능력이 자라납니다. 아마 그러다 보면 부모에 대한 연민의 정도 생길 거예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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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