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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재밌는 걸 보면 머릿속 복잡한 게 싹 씻겨가지”

조용철 기자
20일 서울 잠원동의 구봉서(87·사진)씨 자택을 찾아갔을 때, 그는 가죽소파에 눕듯이 기대앉아 있었다. 얼핏 낮잠에 들었나 싶었지만 TV를 보고 있었다고 했다. “여태까지 외화 봤어요. (TV 채널에서) 전부 뉴스만 하는 게 진력이 나서 차라리 외화를 보는 게 나아. 액션 영화 아니면 안 봐요. 늙은이가 그런 거 보지, 연애 영화 보겠어….”

은관문화훈장 받은 코미디언 구봉서

주름 하나 없는 양복 바지에 점잖게 카디건을 걸친 그는, 인터뷰에 앞서 단정한 은빛 머리를 다시 한번 빗어 넘겼다. 그가 보청기를 귀에 꽂는 사이 부인 정계순(75)씨가 “이 사람 귀가 어두우니 크게 또박또박 말해 달라”고 청했다. 정씨가 내 온 생강차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가 시작됐다.

1926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88세. 미수(米壽)를 맞은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는 손녀뻘인 손님을 꼬박꼬박 존대하면서도 “다리 뻗고 편히 앉아” “차 식기 전에 마시고 빵 좀 잡숴”라며 세심하게 챙겼다.

그는 최근 한 달여를 무척이나 바쁘게 보냈다. 10월 초 서울 중구 문화원에서는 회고전 ‘구봉서 코미디 인생 60년’이 열렸고, 이에 맞춰 국립극장에선 후배 코미디언들이 준비한 헌정 공연이 펼쳐졌다. 지난 18일엔 ‘2013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 참석해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중문화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사실상 최고의 영예다. 외부 활동이 많아지자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했다.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바빴어요. 이제 죽을 때가 됐으니까 기록에 남기려고 그러는 거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낯빛은 건강해 보이고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들려 달라고 하자 “일어나서 이 닦고 세수하고 밥 먹고, 그러고 앉아 있는 거지. 다리가 아프니까 산책은 잘 안 나가. 억지로 나가면 짧은 거리를 산책하고 그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규칙적으로 단순한 생활을 한다는 얘기일 터다.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는 환한 웃음 사이로 가끔 쓸쓸하고 아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어릴 때 꿈은 헌책방 주인
어린 시절 헌책방 주인을 꿈꿨다는 말대로 책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한다. “딴 거 보면 지루해서 지금은 소설밖에 안 봐요. 내가 젊었을 적엔 문학이다 뭐다 해서 다 봤지만, 지금은 나한테 필요 없어. 우선 재밌는 거. 나이 먹으면 다 그렇게 된다고.”

“액션영화 보고, 소설책 읽으면서 재미나게 지내서 건강하신가 보다”라고 했더니 이렇게 답한다. “재밌는 거 본다는 게 얼마나 사람 머리에 좋은지 몰라. 머릿속에서 복잡한 게 싹 씻겨 내려가는 거야. 참 좋아요.”

그 시절 우유를 대 먹고, 유치원에 다닐 만큼 부유한 집에서 자란 그는 오르간을 연주하고 아코디언을 배웠다. 해방 되던 해 대동상고를 마치고 “딱 사흘만 한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하고 들어간 악극단 생활이 70년 가까운 코미디 인생으로 이어졌다. 연주자로 시작한 길은 희극배우로, 영화배우로 점차 넓어졌다. 요즘의 우리에겐 ‘코미디의 전설’인 것만 같지만, 그는 사실 악극단·TV·영화·라디오 모두에서 인기를 누린 종합엔터테이너였다. 직접 대본을 쓰고 남철·남성남·남보원·이기동 등을 발굴한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수많은 활동 중 굳이 하나를 꼽아 달라고 청하자 “쓰는 거. 난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원고 쓰는 게 나한테 딱 맞아”라고 말하지만 ‘코미디의 전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국 희극으로 수렴됐다. 대본 쓰던 이야기를 하다가도 얘기는 화려했던 전성기로 스며들었다. “어떤 작가는 아예 원고를 안 가져왔어. 왜냐? 저 사람은 원고 없이도 지껄일 수 있다고 하니까. 나랑 곽규석이랑 할 때 그랬어요.” 원고로 시작한 얘기가 콤비였던 ‘후라이보이’와의 한때로 흘러가는 것이다.

“웃는 게 습관이 됐다”는 그가 가장 환하게 웃을 때도 ‘웃으면 복이 와요’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그는 1968년 1회부터 프로그램이 폐지된 1985년까지 15년8개월간 한 회도 빠짐없이 출연했다.

“후배들한테는 다 잘한다고 해야지”
40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수많은 감독을 만났을 그가 유일하게 신상옥 감독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결국은 희극 때문이었다.

“희극을 알아준 사람이 딱 하나 있어. 신상옥 감독이에요. 그분은 코미디 연출을 안 해. 내가 ‘코미디 연출 한 번 해보쇼. 나도 신이 나서 같이 하게’라고 했는데도, 자기는 못한대. 웃기는 면에 있어서는 감독보다 연기자가 더 앞섰으니까, 그거 뒤쫓아 가기 싫다는 거야. 우리가 겁이 날 정도로 앞섰다는 거야. 신상옥 감독이 아주 현명한 대답을 한 거라고.”

일찌감치 세상을 뜬 서영춘, 단짝이었던 ‘후라이보이’ 곽규석, ‘비실이’ 배삼룡과 차례로 슬픈 이별을 한 지금, 그는 송해와 함께 유이(唯二)하게 남아 후배들을 격려하는 1세대 코미디언이다. 간혹 까마득한 후배들의 프로그램을 본다는 그는 “젊은 층·노년층 다 좋아하는 걸 했으면 좋겠어”라며 슬쩍 아쉬움을 드러냈다. 좀 더 잘해줬으면 한다면서도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 돼. 후배들한테는 잘한다고 해야지”라며 말을 아낀다.

혹시라도 다시 한번 직접 무대에 나서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을까.

“나를 보면 웃을 거 같지? 안 웃어요. 옛날엔 재밌었을지 모르지만 세상이 너무 바뀌고 세파에 시달려서 별로 웃기지 않아. 깔깔깔 대고 웃는 게 없어. 또 웃기려면 순발력이 있어야 하거든. 그런데 나이 드니까 순발력이 없어져요. 누가 딱 얘기하면 받아쳐야 하는데, 그게 안 나와. 옛날엔 잘됐는데…할 수 없지.”

“백수의 왕인 사자도 늙으면 별 수 없는데…나도 마찬가지지.” 쓸쓸한 얘기마저 허허 웃으며 건네는 그의 모습은 짙은 페이소스 있는 희극배우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구봉서는 총을 맞은 뒤 이런 명대사를 읊었다. “나 죽으면 누가 너희들 웃기니.” 어쩌면 그가 이날 들려준 모든 이야기의 행간엔 이 한마디가 흐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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