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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중세 벽화 속 불벼락 맞는 자의 죄목은 … 이자놀이!

미술 애호가라면 이탈리아 파도바에 있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일부러 찾아가볼 만한 곳이다. 14세기 초 이름난 부자였던 스크로베니 가문의 전용 예배당으로 지어진 이곳은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 조토 디본도네가 전성기에 그린 보석 같은 프레스코 벽화로 가득 차 있다.

대부업 광고 논란

이 벽화 중에서 예배당 후면의 ‘최후의 심판’ 부분이 특히 재미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무시무시한 지옥 장면이 펼쳐지고, 가운데 아래에는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이 예배당을 봉헌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사실 스크로베니는 지옥에서 불타고 있을 부친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이 예배당을 지었다. 부친은 단테의 고전 『신곡』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했는데, ‘지옥’편에 등장했으니 어떤 쪽으로 유명했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신곡』 제17곡에서 흰 바탕에 푸른 돼지가 그려진 문장의 돈주머니를 목에 건 채 불벼락을 받고 있는 자가 바로 그다.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엔리코의 부친은 대부업으로 재산을 축적했다. 즉 스크로베니 예배당에는 대부업에 대한 중세적 죄의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조토 디본도네가 그린 스크로베니 예배당 프레스코 중 ‘최후의 심판’ 부분.
일찍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대금업을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대금업, 영어로 usury는 흔히 ‘고리대금업’으로 번역되지만 고대와 중세에는 높든 낮든 이자를 받는 행위를 모두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은 새끼를 낳지만 돈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고 했다. 또 “돈은 교환에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지 이자를 받아 더 늘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구약성서』 또한 “너희 가운데 누가 어렵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주게 된다면, 그에게 채권자 행세를 하거나 이자를 받지 말라”(출애굽기 22:25)라고 했다. 이런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샤를마뉴 대제는 8세기 말 이자 받는 대금업을 아예 금지했다.

그러나 중세 후기로 들어와 상업과 국제무역이 발달하면서 돈을 꿔서 사업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빌린 돈으로 ‘새끼를 낳는’, 즉 이윤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니 이자를 받는 것이 죄악인가 하는 의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교회는 이자를 받아도 되는 몇 가지 예외를 두었는데, 그중에는 ‘채권자가 그 돈으로 더 이익이 나는 투자를 할 수 있는데도 돈을 빌려줘서 그 이익을 희생했을 때’가 있었다. 이건 사실 돈을 빌려주는 경우 대부분에 해당될 수 있지 않은가? 결국은 이자를 현실적으로 용인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16세기 말 나온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볼 수 있듯이 이자와 대부업에 대한 반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18세기 고전파 경제학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자는 더 이상 부도덕한 불로소득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고전파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채권자가 돈을 빌려줌으로써 그 돈을 다른 데 써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데 대해 채무자가 지불하는 대가가 이자라고 말했다.

또 19세기 말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는 이자를 시차설(time preference theory)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불확실성 등 여러 요인 때문에 현재의 재화를 그와 똑같은 미래의 재화보다 선호한다. 돈을 빌려주는 것은 선호하는 현재소비를 포기하고 미래소비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니 그 대가가 이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도 이슬람 국가들은 중세 유럽에서와 같은 이유로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한다. 또한 한국을 포함해 이자를 부도덕하게 보지 않는 국가들에서도 좁은 의미의 대부업, 즉 합법적인 사채업의 이자율을 국가가 어디까지 제한해야 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높은 금리의 대부업체 대출을 광고로 부추기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참여연대 등 7개 시민단체가 대부업 광고 규제를 추진하는 ‘금융소비자 네트워크’를 발족했다. 높은 이자의 무게를 주지시키는 대신 ‘쉽고 빠르게’만을 강조하는 대부업 광고가 케이블 광고와 영화관에서 청소년 등에게 무차별 노출되는 것에 반발하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에도 중세와는 또 다르게 대부업은 도덕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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