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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낡은 공장, 녹슨 기찻길을 버릴 수 없는 이유

쇠퇴한 산업유산의 재활용은 한 사회의 문화적 상상력을 대변한다. 낡은 제철소에서 친환경 테마공원으로 거듭난 독일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사진 돌베개]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김정후 지음, 돌베개

325쪽, 1만6000원



수도권의 공장이란 공장은 허겁지겁 무너뜨려서 아파트 짓기에 바쁜 한국에 문화가 있을까. 나치의 문화부장관이었던 괴벨스는 문화란 말을 들으면 총에 손이 간다고 했는데 한국인은 문화란 말을 들으면 자본이 생각나는 것 같다. 모든 오래된 것은 자본의 성장을 위해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방금 새로 깎아놓은 듯 화강석이 새하얗게 빛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보면서 우리에게 문화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문화는 평소 실력에서 나온다.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옆구리를 쿡 찌르시면서 “가속도를 미분하면 뭐가 나와!” 하셨는데 그때 나오는 대답이 평소 실력이고 진짜 실력이었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국격을 높인다고 새로 건물을 올리고 거창한 개관식을 하는데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 나앉아 있는 건축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문화의 평소 실력이 들어 있다. 특히 산업유산 같이 아직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면 우리 문화의 현재를 볼 수 있다.



 이 책은 유럽의 문화의 평소 실력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 원래부터 부러웠던 유럽이 더 부러워진다. 도시재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지은이가 유럽의 도시에서 발견한 것은 어떻게 낡은 공장건물이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유럽의 도시들을 다니며 버려진 산업시설들이 리모델링돼 새로운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하고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모습에 주목한다. 건축가는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낡고 힘이 빠진 기존의 건물에 적절한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높이 살만 하다.



대형 코코아 창고를 음악회장으로 만들고 있는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엘베 콘서트홀.
 이 책은 미술관·호텔·아파트로 바뀌어 시민들이 그 의미를 기억하고 일상 속에서 즐기는 산업유산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폐선 철로를 아름다운 산책로로 바꾼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에서부터 가스 탱크를 새로운 도시로 재탄생시킨 비엔나의 가소메터 시티, 탄광의 철광석 제련공장을 박물관과 공원으로 바꾼 에센의 촐페라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문화적 평소 실력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여기서 가장 놀라운 점은 대부분 삭막하고 살벌한 산업유산을 시민들이 들어가 살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건축적 센스다. 이를 위해 건축가들은 산업유산 건물과 시설의 특성에 대해 연구하고, 주변환경을 살폈으며 리모델링된 건축물을 통해 새롭게 생겨날 도시적 맥락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한마디로 여러 단계에 걸친 세심한 배려의 결과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과정들에 대해서도 증언하듯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버려진 산업시설이 미술관이나 카페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서술됐기 때문이다. 결코 간단치도 않고 쉽지도 않았을 도시재생의 과정을 마치 눈앞에 보는 듯 충실하게 옮겼다.



 예를 들어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을 서술하면서 저자는 뒤스부르크 산업의 역사에서부터, 그 도시를 대표하는 제철소가 겪은 흥망성쇠의 역사, 그 장소를 살려내려는 시와 시민의 노력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본인이 직접 가본 환경공원의 현황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의 도시발전에서 빠져버린 구멍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것은 산업을 문화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기억하고 평가하며 즐길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도시는 분명히 산업의 결과이나 우리의 도시에는 산업의 흔적은 없고 오로지 아파트밖에 없는 빈곤한 양상이다.



 서울 시내와 인근에는 이제 산업유산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도봉구 쌍문동에 샘표간장 공장이 있었는데 허물어서 아파트를 지었다. 구로역 부근에 있는 오비맥주 공장에서는 벌건 구리빛으로 빛나는 뚱뚱한 맥주숙성탱크가 산업의 아름다움을 뽐냈는데 그 자리에도 아파트가 생겼다. 대구예술발전소는 옛 전매청의 담배공장을 리모델링한 것이지만 옛 건물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지고 21세기의 건물로 덩그러니 태어났을 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의 건축문화에 난 구멍을 어떻게 메울까 고민하게 된다.



이영준 기계비평가·계원예대 교수



이영준 1961년 생. 이미지 비평가, 기계 비평가, 사진·이미지 비평글을 쓰며 계원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기계비평』(2006), 『기계산책자』(2012), 『페가서스 10000마일』(2012)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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