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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음란물과 해병대 사이

권석천
논설위원
가상의 검열관이 있다면 이 글에 ‘19금(禁)’ 딱지를 붙이지 말기 바란다. 성(性)이 아니라 성에 대한 인식을 다루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위선적인 엄숙주의가 성 문제를 왜곡시킨다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지난 8월 헌법재판소에서 성기구에 대한 첫 결정이 나왔다. 청구인은 성인용품 판매점 주인. 그는 “음란물 판매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성기구 사용자들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재의 결론은 합헌이었다.



 “성기구라고 하여 무차별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음란한 물건으로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금지되고….”



 우리가 주목할 대상은 헌재 내부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두 갈래의 대법원 판례다. 남성의 특정 부위를 모방한 여성용 기구는 무죄였다.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게 하는 물건으로 볼 수 없다.”(2000년 10월) 반면 ‘여성의 신체 일부를 표현한’(헌재 결정문 문구) 남성용 기구는 유죄였다.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성욕을 자극·흥분시킬 수 있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2003년 5월)



한 판사 출신 변호사의 설명이다.



 “미국 대법원에 ‘외설인지 여부는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기준이 모호한 문제를 남성 대법관들 눈으로 보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예외가 있는데 석 달 전 광주지법에서 남성용 기구에 무죄를…아! 여성 판사군요.”



 이러한 이중 판례는 법복 입은 남성들의 ‘어쩔 수 없는 편견’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아닐까. 공교롭게도 판례로 피해를 보는 건 외로운 독거(獨居) 남성들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남성 중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는 하나 더 있다.



 단국대 학군단(ROTC)의 한 여성 후보생이 지난여름 한국청년유권자연맹(운영위원장 이연주)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저는 왜 해병대에 입대할 수 없습니까?” 당찬 인상의 그와 상담했던 김미진 정책실장의 말이다.



 “아버지와 오빠가 해병대 출신이라고 해요. 어릴 때부터 해병대가 꿈이었고 학군단 선배들도 해병대 장교로 갔는데, 자신은 지원 못한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 실망이 크다고….”



 신체등급 1급에 체력측정도 ‘올(all) 특급’이었다. 연맹의 질의에 해병대는 “해병대 규정상 획득하지 않고 있음”이란 답변서를 보내왔다. 연맹은 규정을 고쳐달라고 다시 청원서를 보냈다. “군 통수권자가 여성 대통령인 시대에 군은 어느 조직보다 앞장서 양성평등 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지난주 추가 답변이 도착했다. “여성 ROTC 선발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장교 정원 규모가 작아 육·해·공군의 적용 결과를 분석한 후 선발 여부를 검토할 계획임.”



 여성 ROTC가 들어가면 해병대가 더 많은 귀신을 잡고, 국민들 마음에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지 않을까. 인식과 소프트웨어가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겨우 그걸 갖고 문제 삼느냐고? 단 하나의 문이라도 열려 있지 않을 때, 한 사람이라도 시스템에 가로막혀 눈물 흘릴 때 우린 평등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여성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증거는 곳곳에 있다. 최근 이혼소송을 낸 방송사 여성 앵커는 논란 끝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누드사진 유출 시비에 휘말린 여가수는 피해자임에도 황색언론의 먹잇감이 됐다. 직장에서도 여성은 보이지 않는 인식의 벽에 갇히곤 한다. 한국은 여전히 남성의 눈이, 남성적 감수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여성은 두 사회를 이렇게 비교한다.



 “중국에서 남자가 여자 발을 밟았다간 멱살 잡힌 채로 끌려가요. 한국은 발을 밟혀도 아무 소리도 못하고 참아야 하는데….”



 그러니 남자들이여, 여성시대라고, 여풍(女風)이 거세다고 엄살떨지 말라. 아직은 ‘우리들 세상’이다. 여성들이 마지막 유리천장을 부수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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