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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잃어버린 20년' 겪어봐야 정신 차릴 건가

[일러스트=강일구]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
모리시마 미치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노벨상 후보로도 여러 번 거론됐다. 그는 1999년에 발간한 『일본은 왜 몰락하는가』란 책에서 “일본은 2050년께 몰락한다”고 단언했다. 그 원인으로 정치를 지목했다. 1868년 에도 막부의 종언은 물론 1990년대 초에 시작된 경제침체의 위기도 모두 경제적인 면보다는 정치의 몰락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장달중 교수 역시 2003년 『일본은 회생하는가?』란 책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 탓이 크다고 역설했다. 국가시스템을 개혁해야 했지만 이를 주도할 정치적 리더십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경제의 성공 여부가 정치에 달려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도 이 얘기를 꺼내는 건 며칠 전 한 경제단체장의 하소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 방안을 놓고 얘기하던 중 그는 갑자기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처방이라면 아무리 좋은 해법도 쓸모없다”고 말했다. 경제살리기에 꼭 필요한 법안 10개만 통과시켜 달라고 정당 대표를 만났지만 아무 성과도 못 얻었다면서.



 요즘 한국경제가 큰일이라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겪을 수 있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는 증후군이 일본과 거의 똑같다. 고령화가 단적인 예다. 일본의 무라타 히로유키 교수는 “타임머신을 타고 22년 전 일본으로 돌아가면 지금의 한국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하긴 그렇다. 총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율(고령화율)이 일본에선 1991년에 12%를 넘었다.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때다. 22년 뒤인 올해 우리도 12%를 넘는다. 고령화가 두려운 건 사회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당장 경제가 활력을 잃는다.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령층은 덜 소비하므로 민간소비 역시 침체된다. 그 결과는 저(低)성장이다. 실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내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거나 기껏해야 1~2%에 그쳤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 후반일 게다. 3%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해가 2011년부터 3년째다. 사상 초유의 저성장 국면이다.



 중산층 해체도 똑같다. 1980년대 말 일본은 전 국민이 중산층이라는 ‘1억 총(總)중류 사회’가 됐다고 자랑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80~90%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본은 곧 ‘격차(格差)사회’로 곤두박질쳤다. 2007년엔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일본 국민이 30%대로 급락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 소득 기준으로 80%에 육박했던 중산층 비율이 지금은 60%대다. 국민 의식 조사는 더 나쁘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50%가 채 안 된다. 중산층 붕괴가 두려운 이유는 자신감과 희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층 상승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국민이 무려 98%나 되는 이유다(현대경제연구원 2012년 조사). 희망이 사라진 자리는 분노가 채우면서 경제활력은 상실된다. 배고픔(hungry)보다 더 무서운 게 분노(angry)라고 하는 건 그래서다.



 일본과 우리는 국가운영 시스템도 비슷하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일본 시스템을 모방했다. ‘일본주식회사’를 본뜬 게 ‘한국주식회사’다. 정(政)-관(官)-재(財)계의 공조를 통해 국가 발전을 이끄는 ‘철(鐵)의 삼각형’을 구축했다. 한국형 ‘기러기 시스템’도 일본형 ‘안행(雁行)시스템’을 모방한 거다. 정부가 대기업을 이끌고, 그 뒤를 중소기업이 따라가는 시스템이다. 이런 국가시스템이 일본에선 1990년대 초 무너졌고 ‘잃어버린 20년’은 그 산물이다. 한국 역시 같은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이를 해결할 곳은 정치밖에 없다. 갈등과 대립을 조정해 합의를 도출하는 건 정치의 임무다. 그럼으로써 개혁 방향을 잡고,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실패했다. ‘정치의 몰락’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불안정했다. 1990년 이후 지금까지 일본 총리는 무려 16명이나 됐을 정도다.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남짓이었다는 얘기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민생은 뒷전인 채 정쟁(政爭)만 일삼고 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도 다양한 욕구 분출을 수렴하고 갈등을 끌어안는 정치력의 발휘다. 그런데 엊그제 시정연설 후 정국은 더 냉각되지 않았는가.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정치권이 갈등을 조정하긴커녕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르는 비용은 엄청나다.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만 갈등을 줄여도 국내총생산은 최대 20% 늘어난다. 금액으로 치면 무려 250조원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면 저(低)성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겪어야만 정치권이 정신 차릴는지.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는 얘기가 나올 것만 같다.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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