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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세제 개편" 발언에 촉각 곤두세우는 강남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지난 8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재산세·종부세 같은 보유세제 개편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발언하자 강남 일각에선 "종부세를 인상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치동 은마·미도아파트 전경.


14일 오후 8시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옆 압구정교회 2층 대예배실에 주민 300여명이 가득 들어찼다. 원래 재건축과 관련한 주민 설명회였지만 정제택 입주자대표회장은 종부세 얘기부터 꺼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종부세 트라우마
정부 "안 올린다" 확인에도 불안감
주민들, "이참에 폐지" vs "역풍 우려"



 그는 “정부가 종부세를 올려볼까 하는 것 같은데 해당 지역은 강남·서초·송파 뿐”이라며 “1년에 몇 천만원씩 낼 때에 비해 지금은 미미하지만 연금으로 생활하는 고령 주민들은 여전히 부담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참석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한 주민은 “노무현 정권 때 종부세로 1000만원 넘게 부과되는 바람에 할수없이 연금보험을 해약해서 냈다”며 “당시엔 직장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은퇴해서 종부세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박미영(50·청담동)씨도 “종부세가 확대될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84㎡)에 살던 박씨 가족 역시 종부세 폭탄을 피해갈 수 없었다. 1995년 1억 2000만원 주고 산 집 값이 부동산 버블을 타고 공시지가 10억원에 달할만큼 오르긴 했지만 박씨에겐 그저 주거공간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장부상으론 부동산가격이 올랐을 지 몰라도 실제로 차익을 본 것도 없었다. 그런데 투기꾼 취급하며 수 백만원의 세금을 별도로 토해내라니 기가 막혔다. 그는 “종부세를 다시 확대하면 재산을 모두 정리해 투자이민이라도 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2007년 정부가 강남 3구에서만 걷은 종부세는 박 씨가 낸 것을 합쳐 모두 9576억원이었다. 강남엔 이들처럼 아직도 종부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연금으로 생활하는 주민들에게 종부세를 내는 12월은 여전히 불편한 계절이다.



종부세와 재건축 등에 관한 논의가 이뤄진 14일 압구정 현대아파트 주민 설명회 모습.
 그래서일까. 최근 떠도는 종부세 괴담에 또 강남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다.



 발단은 지난 8월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재산세·종부세 같은 보유세제 개편방안을 검토해 보겠다”는 발언에서 시작됐다. 일부 언론이 현 부총리가 종부세 인상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정부는 현 부총리의 발언 바로 다음날 “종부세 인상을 검토한 바 없다”는 해명자료를 냈고, 종부세 논란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종부세를 지방세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또 다시 종부세 인상 우려가 불거졌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종부세 인상 방안은 검토한 바도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회선(서초갑) 의원도 “직전 정부에서 낮춘 세금을 박근혜 정부가 이를 다시 올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종부세 확대는 없다”고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강남 지역 주요 아파트 입주자회장 등이 주축이 돼 ‘종부세법 폐지를 위한 강남 3구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 연합회’ 명의로 지난달 말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앞으로 종부세 폐지 요구를 담은 서신을 보냈다. 한마디로 못 믿겠다는 거다.



 연합회는 서신에서 “종부세는 일반적인 세법과는 달리 추후 개정이나 폐지를 어렵도록 대못을 박은 법으로 새누리당 지지 세력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가장 강력한 징벌”이라며 “강남 3구 주민 대부분이 60세 이상으로 정년퇴직하여 별 소득이 없이 연금이나 퇴직금에 의지하고 있는데 단지 강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상당수가 말 못 하는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또 “현 부총리가 새누리당 정부의 부총리가 맞느냐”는 격앙된 표현을 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주영길 서울시의원(강남구)은 “강남구, 특히 압구정·청담·삼성·대치동 등은 종부세 폭탄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그는 “당시 이 지역 아파트는 대략 66㎡(20평)만 넘으면 공시가격 6억원이 넘었기 때문에 사실상 주민 대부분이 종부세 부과 대상자였다”며 “세금도 세금이었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가 종부세 내는 사람을 마치 부도덕한 것인양 여론몰이를 한 게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당시 종부세는 징벌적 세금 같은 인상을 줬다”는 것이다. 그는 “집값 문제를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다루다보니 강남 주민은 졸지에 ‘부도덕하게 부를 축적한 계급’이 되면서 일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며 “경제적 타격에다 정신적 타격까지 이중으로 충격을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강남3구 주민은 이후 종부세 부과 세력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종부세 부과 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에서 강남 3구에 출마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후보들은 송파병을 제외하고 모두 60%이상 득표하며 압승했다. 지난해 19대 총선에서도 강남의 7개 선거구를 모두 석권했다.



  사실 현재 강남 주민들의 종부세 부담은 과거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이명박(MB) 정부에서 종부세 기준을 공시지가 6억원에서 9억원(1가구 1주택 기준)으로 완화한 데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공시지가가 뚝 떨어져 종부세 부과대상자와 금액 모두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2007년 1조원에 육박했던 강남 3구의 종부세 납부액은 2011년엔 3020억원으로 68%(6500억원)나 줄었다.



 하지만 한 압구정동 주민은 “비록 MB정부에서 많이 인하했지만 세금이 살아있는 한 언제 어떻게 올릴지 모른다“며 ”당장 세수(稅收)를 늘려야하는 박근혜 정부는 물론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이 바뀌면 여론을 등에 업고 언제 어떻게 확대할지 모르니 이참에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남 주민 생각이 다 일치하는 건 아니다. 한 대치동 주민은 “종부세를 폐지하면 폐지 운동을 크게 벌이다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며 “현행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성운·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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