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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줄 서는 강남

16일 오전. 지하철역과 맞닿아 있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1층 문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식품관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고 있다. 롤케이크를 사기 위해 아침부터 달리는 거다.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총알처럼 달려 들어갑니다. 뭐가 그리 급한 걸까요. 알고 보니 이들의 목적지는 지난 8월부터 매일 똑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일본 롤케이크 전문점입니다. 롤케이크 하나 사겠다고 아침부터 내달리는 심리, 과연 뭘까요.

어디로 뛰어가나



기다리고 뛰고 다시 기다려 쟁취하다

강남 백화점에 줄 서는, 그 복종의 심리학




4일 오전 10시30분.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20대 여성이 총알처럼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중년 남녀를 비롯해 오전 10시 이전부터 백화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 수십 명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해 거의 전력질주하듯 뛴다. 무슨 대단한 이벤트라도 하는 걸까. 아니다. 이들의 목표 지점은 식품관 한가운데 있는 6.6㎡(2평) 남짓한 일본 롤케이크집 몽슈슈. 순식간에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선다.



 심모(27·방배동)씨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일찍 가야 살 수 있다고 해서 문 열기 전에 왔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몰랐다”며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막 뛰길래 무조건 따라가면 될 것 같아 그냥 쫓아왔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입점 이후 반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에서 거의 매일 아침마다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백화점 문 열기를) 기다리고 (몽슈슈 매장까지) 뛰고 (롤케이크 사려고) 또 기다리고-. 강남 신세계백화점 몽슈슈 매장 앞의 긴 줄은 그날 치 상품이 품절되는 오후 2시까지 줄지 않는다. 현대백화점도 비슷하다. 다만 오후엔 예약제로 판매한다. 오후 3시 전에 예약표를 받지 않으면 그날은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후쿠시마 원전 유출 사고 이후 방사능 걱정에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마저 일제(日製)는 꺼린다는 요즘, 일본에서 홋카이도산(産) 생크림을 그대로 들여와 만드는 롤케이크 하나 사겠다고 다들 이런 수고를 마다않는 것이다.



 몽슈슈는 2003년 재일교포가 오사카에서 첫선을 보인 브랜드다. 대표 상품인 도지마롤 등 생크림 빵으로 지난해 일본 전역의 27개 매장에서 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엔 현대백화점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두 곳에 있다.



 문학수첩 김은경 대표는 “급하게 살 게 있어 아침 일찍 백화점에 갔는데 사람들이 전부 뛰더라”며 “다들 나처럼 시간이 없어 서두르나 했는데 알고 보니 전부 롤케이크 매장을 향해 뛰는 거였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 일본 갔을 때 줄 서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 한국에선 늘 이렇게 줄이 기니 아직 못 먹어봤다”고 했다.



 ‘그 어떤 수고로움을 감당하고서라도 꼭 사먹고야 말겠다’는 열정은 사실 몽슈슈에서 처음 드러난 건 아니다.



 올 6월 오픈 이후 더운 여름을 지나 날이 제법 차가워진 가을까지도 가로수길의 비좁은 아이스크림 전문점 소프트리 앞엔 늘 하루 종일 긴 줄이 늘어 서 있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위에 벌집을 올린 48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한여름 땡볕 아래서 30~40분씩 줄 서길 마다하지 않은 거다. 이런 인기를 타고 이 아이스크림 전문점은 청담동과 한남동, 홍대 앞 등에 잇따라 문을 열며 매장 수를 11개로 늘렸다. 대만에서 온 버블티 브랜드 공차는 또 어떤가. 버블티 주재료인 타피오카에서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한 독일 언론 보도에도 아랑곳없이 공차 매장 앞엔 시간대를 불문하고 항상 긴 줄이 선다.



 돌이켜보면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1년 전엔 전용 망치로 깨먹는 독일 과자 슈니발렌이 그랬고, 또 그전엔 벨기에 와플 먹겠다고 줄을 섰다. 지방 명물 빵집의 빵이나 유명 시장 먹거리 등을 파는 특별행사가 백화점에서 열릴 때마다 늘어서는 긴 줄은 이제 얘깃거리도 안 된다.



 콧대 높다는 강남 사람들을 줄 세우는 건 대체 어떤 상품일까. 아니, 그 긴 줄을 감당하면서까지 사 먹는 심리는 대체 뭘까.





줄, 만족감 더해주는 마법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몽슈슈 롤케이크나 소프트리 아이스크림에 얽힌 성공담과 실패담이 줄을 잇는다.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실패하면 또 실패한 대로 다들 인증샷 하나씩 올린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박권일도, 현대차 정몽구 회장 사위인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도 모두 이 인증샷 대열에 합류한 인사들이다. 정 사장은 지난달 소프트리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는 “한국에서 가장 이해가 안 가고 부러운 사업”이라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오랜 기다림 끝. 정작 맛을 본 후 실망했다는 의견도 일부 있지만 감격에 찬 승전보를 올리는 사람이 더 많다.



 트렌드 분석회사인 인터패션플레닝 박상진 대표는 “줄을 선다는 건 이미 불편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줄을 오래 설수록 상품 가치가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에서 만난 강승지(25·서초동)씨는 “전에 백화점을 돌아다니다 줄이 길게 서 있길래 뭔가 하고 찾아봤다”며 “꼭 먹어보고 싶어 일부러 백화점 개장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왔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도 “주변에서 꼭 줄 서야만 살 수 있는 롤케이크가 있다고 얘기하길래 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직접 확인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소비심리에 관한 책 『심리학이 소비자에 대해 가르쳐준 것들』을 쓴 범상규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마케팅컨설팅회사인 쇼퍼 사이언스(Shopper Sciences) 조사 결과를 예로 들며 ‘권위에의 복종’으로 줄 서기 현상을 설명한다. 범 교수는 “사람들은 긴 줄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나만 줄 서지 않아 좋은 물건을 못 살 때 드는 후회, 그리고 줄 서서 뭔가를 산 후 하는 후회를 비교하면 전자가 훨씬 크기 때문에 줄을 서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나 나중에 후회할까봐 ‘줄’이라는 ‘권위’에 스스로 ‘복종’한다는 얘기다. 줄은 이처럼 그 자체로 불편을 감수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상품에 대한 만족을 더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줄, 동조하거나 차별화하거나



 테마파크의 인기 놀이시설처럼 제한된 시간에 꼭 해야 하는 것도, 혹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 구할 수 없는 한정판 상품을 파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줄을 서는 걸까.



 동조현상과 차별화라는 상반된 두 가지 개념으로 다 설명이 가능하다.



 현대 소비사회를 진단한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의 저자인 상명대 박정자 명예교수는 소비를 ‘남들이 사는 것을 사려고 기를 쓰고 찾아다니는 피곤한 노동’으로 정의한다. 자기 혼자의 판단으로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의 판단이 옳고 그른지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들이 좋다는 걸 따라서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동시에 “상품은 사용가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하게 해주는 차이 표시 도구로서의 기능이 중요해졌다”며 “예컨대 몽슈슈 롤케이크는 내 욕망을 투영한 것일 뿐 그 자체가 진짜 목표는 아니다”고 말했다. 롤케이크로 상징되는 어떤 문화적 가치를 향유하기 위해 줄을 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박 대표도 “사람들은 다수 의견과 다를 때 불안해한다”며 “줄 서는 행위는 자신이 속하기를 원하는 집단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대체 어떤 욕망일까.



 돈 주고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소위 요즘 제일 ‘잘나간다’는 뭔가를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건 그 자체로 ‘내가 바로 그 트렌드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준다. 바로 그 만족감을 위해 몸을 고생시키는 거다. 최신 기술을 남보다 먼저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얼리 어답터(early adoptor)에 이어 얼리 테이스터(early taster)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만 봐도 이런 현대인의 심리를 잘 알 수 있다.



 정희원 신세계 백화점 홍보팀 대리는 “몽슈슈처럼 매장이 딱 두 군데밖에 없을 정도로 아직 대중화하지 않은 제품을 남보다 먼저 소비한다는 생각에 만족감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다수의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을 꺼리는 구매심리, 즉 스노브(snob·속물) 효과로도 볼 수 있다.



 범 교수는 “덜 알려진 외국 브랜드일수록 ‘다른 사람은 아직 모르는데 난 벌써 이걸 즐긴다니 굉장히 트렌디하다’고 착각하게 된다”며 “진짜 상위 1%가 아니더라도 이런 걸 향유하는 동안엔 스스로를 상위 1%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줄, 희소성이 관건 … 궁합도 맞아야



 물 건너 왔다고 다 줄을 서는 건 아니다. 또 줄 서게 만들었던 대단한 품목들 가운데 생명력이 긴 게 의외로 드물다.



 전용 나무망치로 깨뜨려 조각난 파편을 먹는 독일 과자 슈니발렌은 먹기 불편하고 값도 비싸지만 한때 ‘강남 과자’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먹는 방법 자체가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돼 호기심을 자극한 거다. 그러나 이후 지하철 역 안에까지 비슷한 제품을 파는 매장이 우후죽순 생기며 인기가 한풀 꺾였다.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엔 현재 몽슈슈와 슈니발렌 매장이 나란히 있는데, 몽슈슈 앞과 달리 슈니발렌은 한산하다.



또 미국·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은 크로넛은 지난 9월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롯데 백화점 본점에 들어왔지만 성공 못해 철수했다.



 지난해부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 가운데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식품관인 고메이 494에 입점한 샌드위치 전문점 마마스 정도만 여전히 그 지위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신태림 갤러리아백화점 홍보팀 대리는 “마마스의 리코타치즈 샐러드는 지난 1년 동안 10만 개 넘게 팔렸다”며 “계산해보니 지금까지 팔린 제품을 층층이 쌓으면 에베레스트 높이만큼 올라갈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인기의 비결을 “흔하지 않은 독특함”에서 찾았다.



 한종욱 대한창업연합 점포개발팀장도 “업계에선 카피(copy)제품이 팔리기 시작하면 (인기가) 끝이라는 말이 있다”며 “사람들이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희소성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타깃 소비층과의 궁합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스타벅스보다 더 비싼 프리미엄 커피 전문점 폴 바셋을 예로 들었다. 압구정동 등에선 스타벅스 등보다 훨씬 자리가 일찍 차지만 신촌이나 이대 앞만 해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다. 강남만 해도 고급스러운 걸 선호하는 30~40대 소비층이 많지만 신촌은 다르다는 분석이다. 일부에선 반짝 인기가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운명이라는 주장도 한다.



 최혜경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디저트 사려고 줄 서는 건 일종의 크레이즈(열광적인 유행)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지금 뭔가 새로운 것에 확 꽂혀서 열광하고 싶은 심리가 퍼져 있다”며 “그러나 정말 원하는 제품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관심과 인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줄, 왜 의(衣)가 아니라 식(食)일까



 백화점이든, 길거리 단독 매장이든 줄 서는 가게 대부분은 먹거리와 관련 있는 곳이다.



 원래 사람들이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건 패션·잡화 분야였다. 한눈에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방·옷 등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할 수 없게 되면서 사람들이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게 디저트류의 먹거리다.



 박 대표는 “어딜 가나 같은 브랜드 가방을 든 사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며 “지난 수년 동안 비슷한 것들의 과잉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옷차림을 통해 다른 사람과 나를 차별화하려는 걸 포기하고 이제 식(食)으로 눈길을 돌렸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의 엥겔지수가 2008년을 기점으로 오르는 것도 과거의 통념처럼 생활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핵심 가치를 먹거리에서 찾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또 옷이나 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도 인기의 요인이다.



 정 대리는 “음식은 패션 제품에 비해 돈을 덜 들이면서 차별화한 사람이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제품”이라며 “백화점 입장에서도 어딜 가나 똑같은 브랜드가 있는 의류·신발보다 식품 쪽이 차별화가 더 쉽다”고 말했다.



글=안혜리 기자, 심영주·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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