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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맛 살리려 크고 작은 공사 1000번 와인과 장아찌도 접목

‘더 젤’ 이제춘 대표




루이뷔통 ‘시티 가이드북’ 선정 서울 대표 와인바 ‘더 젤’ 이제춘 대표

“더 젤(The Jell)?” 이름이 생소했다. 더구나 요즘 가장 뜨고 있다는 서울 이태원동 경리단 길에 있다는데 왜 몰랐을까. 28일 출간되는 ‘루이뷔통 시티 가이드북’에서 서울을 대표하는 와인바로 소개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첫 반응은 이랬다. ‘루이뷔통 시티 가이드북’은 매년 세계적 도시를 골라 현지인도 잘 몰랐던 장소들을 찾아내 싣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처음 선보인 서울판에 실린 소개 글을 보면 선정 이유가 단지 ‘핫플레이스’여서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문을 연 건 21년 전. 한국에 와인 문화가 정착하기 훨씬 전이었다. 17년간 독일에서 유학한 이제춘(59) 대표가 경리단길에 국내 주재 외국인들을 상대로 낸 와인숍이 와인바로 업그레이드된 곳이다. 이런 사연이 2010년 타임지(11월 15일자)에 실리기도 했다.



11일 만난 이 ‘국내 와인계의 터줏대감’은 “인터뷰에 앞서 먼저 둘러보라”고 했다. 옥상까지 5층인 건물은 흡사 고성 같았다. 벽돌로 차곡차곡 지은 외형에 층마다 보이는 나무 때는 벽난로에서도 포스가 느껴졌지만 지하 계단을 따라 들어간 꺄브가 특히 그랬다. 사방 벽이 와인이다. 그 한가운데 먼지 덮인 6L짜리 무통 로칠드가 시간의 흔적을 알려 줬다. 중세로 시간을 거슬러간 느낌이랄까. 지하에는 ‘와인 감옥소’라 명명한 방도 있었다. 와인 창고를 철창 감옥처럼 만들고 자물쇠까지 채운 모습에서 그 이름의 유래를 알 듯했다. “누가 훔쳐갈까 봐 이렇게 해 놨느냐”고 농반진반으로 묻자 이 대표는 “와인은 역사를 느끼고 멋으로 먹는 술”이라고 대꾸했다.



건물 1층과 지하가 좀 썰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사계절 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느라 창을 한쪽만 내고 원래 벽 외에 벽 하나를 더 세웠기 때문이란다. 그는 “1000여 종이 넘는 와인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면서 “빈티지 와인을 가진다는 건 관리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중 최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답이 걸작이었다. “2010년 미스코리아 진이 예쁘냐, 2011년 진이 예쁘냐 고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요? 해마다 최고 미녀가 탄생하듯 와인도 마찬가지죠. 와인이란 어느 순간에 어떤 기분으로 마시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와인 종주국 프랑스에서 기사 작위(샤블리·부르고뉴)를 연거푸 받은 그가 와인과 인연을 맺은 건 우연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먹고 살려면 공대를 나와라”고 조언한 아버지 뜻에 따라 진학했고 귀국한 뒤에도 컨설팅 관련 일을 했다. 그러다 독일 친구의 권유로 와인 사업에 손을 댔다. “선진국이 되려면 반드시 와인이라는 계단을 거친다”는 확신도 따랐다.



고향의 맛이 그리운 한국 주재 외국인들을 겨냥해 와인은 물론 치즈·파스타 등도 함께 팔았다. 사업은 이내 번성했다. 외국인들이 지방에서 올라올 정도였다. 2002년 본격적으로 와인바를 열면서는 멤버십 제도를 도입했다. 연회비 900달러를 내면 테이스팅과 프라이빗 행사에 초대되는 시스템이었다. 국내외 명사들 사이에서 “그저 와인 얘기만 질리도록 하고 가는 곳”이라는 입소문이 났다. 잘나가던 그때를 그는 “외환위기도 모르고 지나갈 정도였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위기가 찾아온 건 2008년. 세계적 불황도 불황이었지만 건물 리모델링 공사에 20억원 넘는 돈을 쓴 게 화근이었다. 스스로를 ‘크레이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는 크고 작은 공사만 1000번 가까이 했다고 했다. 지하를 새로 파고, 1층을 제외한 전 층을 뜯어고쳤다. 조명 하나, 변기 하나도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바꿨다. 공간의 깊은 느낌을 살리기 위해 100년 전 벽돌을 인천과 중국에서 공수하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21년 전 처음 문을 열 때나 지금이나 생각은 변함 없어요. 세계 최고의 와인바를 만들자는.”



하지만 회원이 고령화되고 매출이 줄자 작전을 바꿨다. 지난해 10월부터 일반 고객들에게 빗장을 풀었다. 그러면서 파인 다이닝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남들과 다르게’를 고집했다.



“올 8월에 대관령 인근에서 칡소라는 걸 키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중섭 그림에 나오는 바로 그 소요. 한우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있는데, 누가 그런 표현을 쓰대요. ‘한우가 각목을 자르는 느낌이라면 칡소는 비단을 자르는 것 같다’고. 산지를 찾아 공급을 약속받고 ‘칡소 스테이크’를 대표 메뉴로 개발했죠.”



VIP들에겐 ‘특식’을 내놓기도 한다. 자하젓이 들어간 파스타나 치즈를 대신하는 고추장아찌가 대표적이다. 이게 와인과 어울릴까 싶었는데 그의 말투는 단호했다. “와인이나 장아찌나 젓갈이나 다 발효의 극치로 이뤄진 음식들이죠. 그러니 조합이 왜 아니겠어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음식들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 와인 맛을 제대로 아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요.”



그는 내친김에 김치 얘기도 꺼냈다. 와인이 20~30년씩 걸려 제 맛을 내는 데 비해 김치는 단 보름이면 발효가 완성되니 세계 최고의 음식이 아니겠느냐는 것. 언젠가 김치를 적용시킨 파인 다이닝을 선보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그의 얘기를 들으며 상투적이지만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온라인 중앙일보 · 중앙선데이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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