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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울어도 내 인생, 웃어도 내 인생

내 일본인 친구 레이나는 스님 딸이다. 일본 스님들은 결혼을 하기 때문에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이 자라서 다시 스님이 되어 절을 물려받게 된다. 그런데 레이나에게는 남자 형제가 없다. 그러니까 딸이 데릴사위를 얻어 가업(家業)인 절을 물려받아야 한다. 레이나에겐 언니가 하나 있긴 한데, 개인적인 문제가 있어서 모든 기대를 레이나가 다 짊어져야 했다.

레이나는 늘 괴로워했다. 가족들의 눈빛이 힘들었고, 대를 이을 남자를 데려와 스님으로 만들어야 할 자신의 역할을 괴로워했다. 졸업 무렵,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스님들과 맞선을 보았다. 매번 멋진 옷을 사 입고 만남의 장소로 갔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어느 날 보다 못한 내가 ‘기왕 만나는 거 즐겁게 웃으면서 만나라’고 말했더니 레이나는 볼멘소리로 “도저히 웃음이 안 나온다”며 “차라리 자신이 머리를 깎는 게 낫겠다”고 했다. 그 모습이 가여워 나는 등을 토닥여 줬다. “그래, 그게 좋겠다. 머리는 내가 깎아줄게.”

결국 레이나는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도피했다. “1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절을 잇겠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생의 욕구가 충만한 딸에게서 창창한 미래를 빼앗는 것 같은 느낌에 부모님 또한 안쓰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간 레이나가 1년 뒤 돌아와서는 폭탄 선언을 했다. 독일로 가서 공부를 마무리하겠다는, 그리고 미국 남자 친구와 결혼하겠다는 엄청난 폭탄을 부모님 가슴에 던졌다.

레이나는 결국 혼인신고를 하고 내게 연락했다. “행복해요.” 그 연락을 받은 지 일주일 만이던가. TV고 인터넷이고 난리가 났다. 원인은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였다. 레이나의 가족과 친지가 모여 사는 동네였다. 그 소식을 접하고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종일 컴퓨터와 TV 앞을 전전했다. 며칠 뒤, NHK 생사 확인 채팅방에 레이나의 생존이 확인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어느 학교에 고립돼 있는데 지금 구출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너무 벅차 눈물이 났다. 친구란 게 이런 것인가.

사흘 후 레이나에게서 소식이 왔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다며 공항이라고 했다. 남편과 함께 외출했다가 쓰나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부모님을 모시러 가던 길에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이미 대피한 상황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자기 혼자 쓰나미를 향해 달려갔다가 그리 됐다는 것이다. 소식을 접하고 그 상황이 마음 아팠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데, 그럼 됐지’ 싶었다. 부모님은 지금도 미야기현의 바닷가 마을에 계시고, 레이나는 다시 독일로 건너가 공부 중이다.

숱한 날들을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그녀는 결코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인생에서 만족을 찾느냐, 못 찾느냐는 지난 세월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몽테뉴의 말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울어도 내 인생, 웃어도 내 인생이다.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나의 선택도, 그 선택에 따른 결과도 달라질 터. 아픈 기억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자신의 모습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뒤 물어봐야 한다고 불교는 말한다. 마음아, 내 진정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이냐?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 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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