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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유혹 노하우, 세계를 흔든 사건 속에서 찾다

아리 셰페르(1795~1858)가 그린 ‘정원에 있는 파우스트와 마르그리트’(1846).
권총은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관에게 치안 유지에 필요한 도구다. 범죄자 수중에서는 흉기다. 로버트 그린이 지은 『유혹의 기술(The Art of Seduction)』(2001·이하 『유혹』)도 ‘양날의 검’이다. 숫기가 없어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한, 착하디착한 총각이 읽는다면 천생배필을 만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급 ‘꽃뱀’이나 ‘제비’에게는 금서가 돼야 할 책이다.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

그린에게 ‘21세기 마키아벨리’라는 명성을 안겨준 『권력의 법칙(The 48 Laws of Power)』(1998)도 정치꾼, 선량한 유권자 모두에게 사랑받았다(힙합계 사람들이 그의 ‘광팬’이라 그린은 ‘힙합계의 마키아벨리’라고도 불린다). 미국 교도소 대출 순위 1위를 자랑하는 책이다. 한 독자는 자신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상관을 무력화시키는 데 『권력의 법칙』이 도움이 됐다며 감사의 편지를 그린에게 보내기도 했다. 『유혹』 또한 여성들이 엉큼한 남성 유혹자(誘惑者·seducer)의 ‘흉계’를 포착하거나, 속셈을 역이용하는 데 쓸모가 있다.

『유혹의 기술』의 한글판(왼쪽)과 영문판.
유혹의 과정 24단계로 세분화
미국에서 유행하는 여러 ‘유혹 커뮤니티(Seduction Community)’ 회원들에게 『유혹』은 핵심 권장 도서다. ‘유혹 커뮤니티’는 성적인 목적으로 이성(異性)을 꾀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온라인 사이트다. 회원들에게 『유혹』은 유혹 비법 습득의 속성보다는 장기, 초급보다는 고급 과정용이다.

군주 정치와 공화 정치를 다뤄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로 등극한 마키아벨리(1469~1527)가 유혹에 대해 저술을 남겼다면 그 내용은 『유혹』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린은 유혹을 ‘궁극적 형태의 권력’이라 정의한다. 사랑은 비정치적 영역에 속하는 것들 중에 가장 정치적인 것이며, 유혹은 사랑의 출발점이요 핵심이기 때문이다.

『유혹』은 분량이 방대하다. 영문판이 484페이지, 한글판은 622페이지다. 위에서 ‘꽃뱀·제비’ 앞에 ‘고급’이라고 덧붙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유혹』의 내용 또한 고급이다. 세계사적 인물과 사건에서 유혹의 법칙을 뽑아냈다. 클레오파트라(기원전 69~30), 민간 전설에 나오는 돈 후안, 이탈리아의 문필가 겸 엽색가 카사노바(1725~1798)는 물론 어느 한 해에는 250명의 여성을 유혹했다는 낭만주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1788~1824) 남작 이야기도 나온다. 출판사 측에서는 분량도 줄이고 내용도 좀 쉽게 하면 책이 더 많이 팔린다며 그린을 설득하려고 든다. 그린은 절대 타협할 생각이 없는 고집불통이다.

그린에 따르면 유혹자의 유형은 10가지다. 그린이 ‘먹잇감(prey)’이라고도 부르는 ‘유혹의 희생자’는 18종류다. 유혹의 단계는 크게는 4단계, 세분하면 24단계다. 유혹자 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Seiren·Siren)’이다. 남자의 환상을 충족시킨다. 세이렌은 남자로서 여러 사회적 구실을 다해야 하는, 세파에 찌든 남자들에게 해방을 약속한다.

그렇다면 가장 흔한 타입의 유혹자는? 남자는 ‘난봉꾼(The Rake)’, 여자는 아양을 잘 떠는 ‘코케트(The Coquette)’가 제일 많다. ‘난봉꾼’은 타깃을 위해 하늘의 별이라도 따러 갈 사람이다. ‘코케트’는 남녀 모두에게 유용한 최고의 유혹 기법인 ‘밀고 당기기(back-and-forth movement)’를 특히 잘 구사한다. ‘코케트’에게 한 번 걸리면 남자들은 정신이 나가버린다. 희망과 좌절 사이에서 방황한다.

희생자들은 뭔가 결핍된 사람들이다. “나는 결혼 생활이 행복해요(I am happily married)”라고 말하는 사람은 유혹할 수 없는 것이다.

유혹의 과정은 왜 필요할까. “로맨스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운명은 꿈의 남자나 여자를 만나게 도와준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그런 생각은 쓰레기다.” 로맨스에도 단계가 있고 원칙이 있다는 게 그린의 생각이다.

『유혹』은 『권력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정치나 비즈니스에 응용할 수 있다. 정치인은 유권자를, 기업은 소비자를 ‘유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두 번째 권말 부록은 ‘무엇이든 대중에게 파는 법’에 대한 것이다. 사실 『유혹』의 적용 범위는 드넓다. 유혹은 협상에도 필요하다. ‘긴장감 속에 가둬 놔라’는 그린의 조언은 글쓰기에도 해당되는 내용이다.

할리우드서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체험
그린은 로스앤젤레스에서 1959년 태어났다. 유대인 가정이었다. 어머니는 다른 ‘주이시 맘(Jewish mom)’처럼 자녀 교육에 극성스러웠다(아들 책이 나오면 서점으로 달려가 좋은 자리에 책을 배치해 달라고 요구하는 분이다). 캘리포니아대(버클리)와 위스콘신대(메디슨)에서 고전학을 전공했다. 20대에는 뉴욕에서 ‘에스콰이어’ 등 잡지 편집자로 일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에는 할리우드에서 스토리 작가로 일했다. 편집자로 일할 때에는 “당신처럼 글 못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글을 쓰는 직종에 종사했으나 자신에게 딱 맞는 글의 유형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 80여 개 일자리를 전전했다. 일반화의 오류인지 모르지만, 그린은 약 70~80%의 사람들이 적성에 안 맞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린은 대가가 되는 데 1만 시간의 몰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글 쓰는 사람의 경우에는 1만 시간 중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글의 장르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찾아 성공한 다음에도 고생은 끝나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고심은 끝나지 않는다. 그린은 한번 집필에 들어가면 매일 10시간씩 집필에 집중한다(최근 작 『마스터리의 법칙(Mastery)』(2012)에는 2만 시간을 투입했다).

방황하던 그린은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한 ‘귀인’을 만났다. 네덜란드 출신의 출판기획자였다. 그린은 그에게 권력에 대한 책을 제안했다. 그린은 할리우드에서 일할 때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현실과 부딪혔다. 자신이 나이브하다고 뼈저리게 느낀 그린은 권력의 문제를 놓고 고심했다. 고심의 결과가 『권력의 법칙』이다. 이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계속 집필해 부자가 됐다.

영어 ‘seduction(유혹)’의 어원은 ‘악에 빠지게 하다, 길을 잃게 하다’는 뜻의 라틴어(seducere·to lead astray)다. 뭔가 지극히 사악하다. 하지만 『유혹』이 사실은 ‘착하다’ ‘시대착오적이다’라는 평가도 있다. 만남도 헤어짐도 너무나 쉽고 또 빛의 속도로 이뤄지는 세상이다. 어쩌면 『유혹』은 ‘정신적인 사랑’을 희구하기에 만난 지 석 달 만에 손잡고, 다섯 달 만에 키스하는 구식 로맨티스트들을 위한 책이다. 점차 사라져가는 유혹의 기술이 박물관에 진열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마지막 로맨티스트들을 위한 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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