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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아기, 질병 원천봉쇄 … DNA가 팔자 고친다

인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유전자, 지놈’. 현대판 사주팔자다. [사진 Flickor]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14> 21세기 사주팔자-인간 유전체

영화 ‘툼 레이더’ ‘솔트’의 여주인공, 세기의 액션파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2013년 5월 돌연 유방 절제 수술을 했다. 여성에게 이 수술은 단지 가슴이 아닌, 혼을 도려내는 것 같은 정신적 상실감과 고통을 준다. 인기 절정의 그녀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유방암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유방암과 함께 발병하기 쉬운 난소암으로 사망했고 최근 이모마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이런 가족력뿐 아니라 졸리의 유전자 검사 결과 유방암 억제 유전자(BRCA1)에 이상이 발견된 것이다.



암 세포가 실제로 유방에서 발견되진 않았지만 암 발생 가능성이 87%나 돼 취한 결정이었다. 어린 자녀와 건강하게 살고 싶어 이런 ‘대비’ 수술을 했다는 그녀의 말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즉, 암세포가 발견되어야, 다시 말하면 병이 생겨야 수술을 하거나 약을 먹는 게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병에 미리 대비하는 새로운 ‘지놈 의학’ 시대가 오고 있으며 그 중심엔 우리 몸의 유전자 정보, 즉 인간 지놈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유전자 정보는 우리 인생의 청사진이다.



21세기는 지놈(genome: 유전체), 즉 유전자의 시대이다. 1인 유전자를 모두 해독하는 인간지놈 프로젝트는 1990년부터 모두 13년, 30억 달러가 투입됐다. 하지만 지금은 1000달러를 내면 하루 만에 한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얻을 수 있다. 3억원씩 하는 고급 스포츠카 페라리를 100원에 살 수 있게 됐다고 할 만큼 비용이 줄었다. 1000달러로 자신의 유전자를 읽을 수 있다면 이 정보로 60세에 위암에 걸릴지 100세가 돼서도 자전거로 뒷동산을 오를지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인체의 모든 세포에는 모두 같은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이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각각 받는 23쌍의 염색체에 칭칭 감겨 있다. 그 끈에는 모두 30억 개의 DNA 염기 구슬이 늘어서 있다. 이 끈, 즉 유전자의 모임인 지놈 속에는 모두 2만 개 정도의 ‘일하는 유전자들’이 있다. 이 유전자 설계도에 따라 인체는 ‘일’을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DNA 구슬에 아주 미세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개인차, 즉 구슬의 차이에 따라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는 것, 예를 들면 ‘술을 잘 마시는가’부터 치명적인 유전병까지 두루 결정된다.



유전자 바꿔도 2세엔 효과 전달 안 돼

소아백혈병은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늘어나는 치명적인 암으로 유전병의 일종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그런 유전병은 4000종이 넘는다. 소아백혈병처럼 하나의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것, 파킨슨병처럼 여러 개의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것 등 다양하다. 결국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세트, 즉 지놈에 따라 내가 걸릴 유전병의 종류가 결정되는 것이다. 유전병뿐만 아니다. 암을 비롯한 당뇨, 심지어 우울증까지도 유전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형태의 유전자가 있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얼마냐’라는 도표도 나왔다. 결국 내가 무슨 유전병이 있는지, 위암에 걸릴 확률이 얼마인지, 내가 비만이 될지가 DNA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고 이미 태어날 때부터 내 몸 안에 ‘프린트’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DNA가 21세기 사주팔자라는 이야기이다(위쪽 큰 사진).



이미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의 순서는 결정돼 있고 더불어 나의 모든 건강과 체질까지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면 허탈해진다. 다 결정돼 있다는데 뭘 해보나? 방법은 없는가? 하지만 동양철학에서 사주팔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고 본인의 노력에 의하여 바꿀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하물며 21세기 첨단과학이 DNA에 새겨진 질병을 치료하고 극복할 수 없을까?



2013년 7월, 유명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에는 희귀 유전병인 ‘이염성 백질이영양증’을 ‘유전자 치료법’으로 치료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이 병은 태어나서부터 걷지 못하고 사지가 마비돼 결국 사망하는 유전병으로, 하나의 유전자(ARSA)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다. 이 환자에게 정상 유전자를 주입해 병을 일으키는 곳인 뇌 척수에서 정상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유전자치료를 했다. 아직 임상 초기단계이지만 유전자치료법으로 유전병이 더 이상 숙명이 아님을 보여준 케이스다. 하지만 이 방법은 환자 본인에게만 효과가 있다. 즉 문제되는 환자의 뇌 척수 세포에만 정상 유전자가 작동하도록 한 것이지 온몸의 유전자를 바꾼 것은 아니다. 따라서 태어나는 2세에겐 환자의 유전병 유전자가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 따라서 완전하게 2세의 유전자를 바꾸려면 부모의 생식세포, 즉 유전병을 가진 난자나 정자를 만드는 유전자를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이 방법이 근본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인데 그게 만만치 않다. 기술적으로는 다음 세대에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또 다음 세대에 태어날 아이의 유전자를 미리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윤리적 문제가 대두할 수 있다. 그래서 이미 몇몇 나라에선 법으로 금지한다.



건강과 관련된 미래의 정보 알려줘

유전자에 문제가 있을 경우 두 번째 방법은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앤젤리나 졸리의 경우는 비교적 ‘극단적’이지만 현실 생활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비만형 유전자를 가졌다는 정보를 미리 알게 된다면 ‘한 입 더, 한 잔 더’의 유혹이 올 때마다 나의 S라인, 식스팩을 위해서 ‘의지를 작동해’ 과감히 멈추는 것이다. 이처럼 DNA에 새겨진 나의 건강, ‘체질 팔자’를 예측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대비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 미래의 건강관리법이다.



지놈 의학이 주는 또 하나의 혜택은 ‘개인맞춤형 약’이다. 유전자의 미세한 차이로 약에 효과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또는 부작용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개인 유전자의 특성에 맞춰 맞춤형 약을 처방할 수 있다. 이처럼 유전 정보는 우리에게 앞날의 운명, 특히 신체, 건강과 관련된 체질을 예측해주고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정보가 인간을 반드시 행복하게 할지 의문이다. 너무 정확한 예언, 아주 잘 맞추는 ‘사주팔자와 궁합’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이 새삼 떠오른다.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얻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동원해 ‘잘 살 것 같은 짝’을 고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우리 조상은 상대방을 보지도 않고 사주 데이터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결혼도 했다. 1970~80년 대학가에선 종종 단체미팅을 했다. 남자는 여성들이 내놓은 소지품을 골라 짝을 만났다.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손수건의 무늬, 스카프의 재질, 심지어는 루즈의 색으로 상대가 어떤 타입일지를 점쳤다. 때론 이러한 순진한 만남을 거쳐 결혼도 했다.



지금 결혼을 앞둔 커플은 종종 건강검진을 같이 받는다. 치명적인 질병은 없는지에 대한 확인도장인 셈이다. 평생을 같이할 사람의 건강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너무 계산적인 것 같아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사주에 의한 결혼궁합을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상대방을 확인하는 방법이 건강진단인 것은 분명하다. 최근 더 ‘과학적’인 그러나 마음은 편치 않아지는 방법이 발표됐다.



2013년 미국 법원은 한 생명공학 회사(23andMe)가 제출한 특허를 승인했다. 이 특허는 ‘원하는’ 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원하는 아이의 키, 피부 색, 체질, 음악·미술에 관한 취미 같은 ‘베이비 쇼핑리스트’를 정한 다음 내 유전 정보와 결혼 상대자들의 짝을 맞춘다. 예를 들면 여성이라면 남자 후보 10명의 유전 정보를 받아 가장 적합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골라주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불가능할 게 없다. 어떤 유전자 형태를 가졌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특성이 결정된다면 이를 조합해 원하는 후세가 나올 확률을 계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입맛에 맞는 아이를 쇼핑하듯 고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유대인이 열등한 민족이라고 인간 청소를 자행한 히틀러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하듯 지놈 정보는 양날의 검이다. 즉 개인 유전 정보는 21세기 인류를 질병에서 해방시킬 수 있지만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수도 있는 ‘선악과(善惡果)’이기도 하다.



앤젤리나 졸리의 어려운 결정을 적극 지지해 주고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준 가장 큰 버팀목은 다름 아닌 배우자 브래드 피트와 여섯 아이였다. 배우자로서, 엄마로서 그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그리고 건강해진 그녀와 함께 손을 잡고 다닐 수 있는 것이 가족이 원하는 모든 것임을 안 것이 그녀로 하여금 공포에 맞서 수술실로 향하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졸리의 몸에 새겨진 유방암이라는 사주팔자를 과학의 힘과 가족의 사랑으로 극복한 것이다. 인간지놈은 인체의 설계도일 뿐 인간의 숙명은 아니다. 결국 인간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게 하는 것은 첨단과학보다도 사랑이라는 것이 미래의 인류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필자는 소박하게 믿고 싶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www.biocnc.com





온라인 중앙일보 · 김은기 인하대 교수, 생명공학 전공 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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