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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 이사 과잉투자 우려에 “직원들 좋아한다” 무시

지난 14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공공기관장 조찬간담회에 서문규 석유공사 사장, 장석효 가스공사 사장(왼쪽에서 둘째와 셋째) 등 공기업 대표들이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부채 공룡’된 5대 에너지 공기업 이사회 회의록 들춰보니

“투자액 17억 달러는 큰돈이다. 얼마 전 호주에도 15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이러면 가스공사 부채비율이 우려할 수준으로 치솟을 가능성은 없나?”(비상임이사)



 “그래서 해외투자자금은 현지법인을 만들고 거기서 채무채권을 다루게 해 회계적으로 (부채를) 피한다.”(가스공사 측 임원)



 “그래도 돈은 어차피 가스공사에서 나가는 것 아니냐. 그게 그거다.”(비상임이사)



 “부채가 사실 늘어나는데, 이 사업이 (통과)되면 증자에도 도움이 되고… 좌우간 우리는 회사 부채를 어떤 경우에라도 300% 미만으로 유지하는 걸 목표로 작업을 하고 있다.”(주강수 가스공사 사장)



 지난 2010년 한국가스공사가 이라크 가스전 3차 입찰을 의결하기 위해 연 이사회에서 오간 대화 내용이다. 한 비상임이사가 과잉투자로 인한 부채 증가를 우려하자 회사 측은 이런 답변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이사들은 “(그렇다면) 잘된 것”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2년 뒤인 지난해 말. 가스공사의 부채비율은 주강수 사장의 장담과 달리 385.4%로 치솟아 LH공사(466%)에 이어 공기업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다. 6~7년 전 8조원 안팎이던 부채가 해마다 100% 가까이 늘어나 지난해 32조원에 달한 데는 이처럼 부실한 이사회 결정구조가 한몫을 했다.



 중앙SUNDAY는 16일 민주당 추미애(서울 광진을) 의원에게 제출된 석유·가스공사 등 5대 에너지 공기업의 2009~2011년 해외투자 관련 이사회 회의록을 입수했다. 에너지 공기업은 해외투자를 결정할 때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사회는 사장을 비롯한 사내 이사진이 50% 미만, 비상임 사외이사가 50% 이상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사내 이사들이 안건을 주도하고, 비상임이사들은 의견만 개진한 뒤 이를 추인하는 ‘거수기’ 역할을 한 게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수익 예측치 8.3% … 실제론 -8.1%

석유공사가 2009년 캐나다 석유기업 ‘하베스트’의 인수를 결정하기 위해 연 이사회에선 “어제 신문에 이 사업의 실패 가능성을 우려하는 현지 교민 기고문이 났다”며 사외이사가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사측은 “그 건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우리 직원들 반응을 봤다니 이 건을 인수한 데 대해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로 넘어갔다(2009년 10월 29일 석유공사 제359차 이사회).



 또 감사가 “(하베스트의) 내부 수익률이 상당히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인수 후 수익성 대책이 있느냐”고 지적했지만 이 역시 “감사님이 지적한 부분은 집행부에서 항상 염두에 두고 추진하겠다”는 말로 넘어갔다(2009년 10월 14일 석유공사 358차 이사회).



 이렇게 해서 이사회의 추인을 받은 석유공사는 2009년 말 하베스트를 3조7921억원에 인수했지만 하베스트는 4년 만에 석유공사에 9183억원의 손해를 입혀 다른 5개 광구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거의 다 까먹는 애물단지가 됐다.



 리스크가 많다는 에너지 사업의 특성도 비상임이사들의 질문을 봉쇄하는 공기업 경영진의 무기였다. 2009년 가스공사가 캐나다 가스전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 연 이사회에서 “사업성 평가 기관들의 (평가) 편차가 7배나 난다. 통계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어느 비상임이사가 지적했다. 그러자 사측은 “그게 자원산업이다. 편차가 100배까지 나기도 한다”고 맞받았다. 그럼에도 비상임이사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되묻자 “조인트 벤처라는 말 자체가 모험산업”이라고 일축했다(2009년 12월 18일 가스공사 327회 이사회).



 추미애 의원실이 5대 에너지 공기업으로부터 입수한 해외투자 지분 현황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하베스트 인수 당시 투자수익 예측치인 내부 수익률(IRR)을 8.3%로 잡았으나, 실제 투자 뒤 연평균 투자수익률은 -8.1%로 곤두박질쳤다. 또 3조7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영국 석유회사 ‘다나’의 IRR도 10%로 잡았으나 연평균 투자수익률은 5.8%에 불과했다. 그밖에 투자액이 1조원을 넘는 KNOC 카즈와 KNOC 이글포드도 IRR은 14.4%, 17.6%로 각각 잡았으나 투자수익률은 2.02%, -1.26%에 그쳤다. 가스공사 역시 투자액이 1조1000억원을 넘는 코가스 오스트레일리아, 7600억원 선의 코가스 프렐루드, 3000억원 선의 술라웨시 LNG 개발사업의 IRR은 각각 9.6~10.6%라고 했던 반면 투자수익률은 0.53~1.84%에 불과했다. 사측의 자체 예측치에 불과한 IRR은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이사회에서 비상임이사들의 질문을 봉쇄하는 보도(寶刀)처럼 쓰였다.



 “LNG 도입 투자액이 26억 달러면 큰돈이다. 이 돈으로 사업을 벌이는 것과 은행 이자를 받는 것 중 무엇이 경제적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비상임이사가 지적하자 사장은 “IRR이 9%로 나왔지 않으냐. 이자는 4~5%니까 이게 훨씬 좋다. 또 이 IRR은 최저로 잡은 거다”라며 넘어간다. 사측은 IRR이 어떤 근거에서 산출됐는지 밝히지 않았고, 비상임이사도 이를 추궁하지 않고 넘어갔다(2010년 6월 29일 가스공사 338차 이사회).



 비상임이사들이 간혹 불만의 목소리를 낸 경우도 있었지만 큰 효과를 내지 못한 게 대부분이었다.



추미애 “500억 이상 투자 국회 심의 추진”

석유공사가 2010년 8월 다나 인수를 결정하기 위해 연 이사회에선 이미 한 달여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인수설이 보도된 게 도마에 올랐다. 한 비상임이사가 “우리는 아무도 몰랐는데 신문에 난 걸 보면 내부 상근직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이사회 의장도 “이사들도 보안을 유지할 충분한 책임성이 있는 분들인데 (사측은) 적어도 말이라도 해서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다. 외신에 다 나가지고 (뒤늦게 보고) 하는 일은 좀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공사 사장이 주당 최고 2파운드까지 추가 투자할 수 있도록 한 위임조항을 뒤늦게 발견한 비상임이사가 “사장 개인에게 너무 엄청난 권한을 주는 것 아니냐. (중략) 경영에 딴죽 걸자는 건 아니지만, 우리(이사진)가 뭘 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선 좀 남한테 문제 생기지 않을 정도는 지켜가면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회사 측은 “사장에게 위임한다는 건 표현상이고 경영진에게 위임한다고 보시면 될 것”이라며 넘어갔다(2010년 8월 19일 371차 석유공사 이사회).



 공기업 비상임이사는 매달 200만원가량 직무수당을 받고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회의에서 50만원 선의 참석 수당을 별도로 받는다. 비상임이사는 납세자인 국민 입장에서 공기업 경영진의 잘못된 결정을 견제하는 게 원래 역할이다. 그러나 공기업 비상임 이사진 가운데 관련 분야 전문가는 1~2명뿐이고 전직 고위관료나 군 장성 등 친정부 성향 비전문가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자연히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고 경영 감시보다는 여권 인사들의 자리 챙기기 용도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임이사는 공기업에 187명, 준정부기관에 674명이 있으며 기타 공공기관(1348명)까지 합치면 2494명에 달한다.



 추미애 의원은 “많게는 4조원까지 늘어난 공기업의 대규모 해외투자 건이 공기업 사장과 소수 이사진 사이에서 결정되니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해외투자 손실로 인한 국민 혈세의 낭비를 막기 위해 공기업이 해외에 500억원 이상 투자할 경우엔 국회 소관 상임위의 사전심의를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 중앙선데이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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