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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폭력시위 야만성 드러낸 의경의 죽음

우리 국민은 또다시 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 앞에 머리를 숙여야 했다. 변변한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못한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부모의 애끓는 모습 앞에서 비통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이도 많을 것이다.



1996년 1월 의경에 자원 입대한 김인원(37)씨는 같은 해 6월 폭력 시위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쓰러진 뒤 무려 17년5개월간 투병생활을 해오다 지난 15일 숨졌다. 여수대 해양생산학과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지 불과 5개월 만이다. 당시 전남경찰청 기동 9중대 3소대 소속이었던 김씨는 조선대에서 열린 ‘조선대 총학생회와 북한 김형직사범대학 자매결연식’ 현장에 출동했다.



당시 집회는 폭력시위로 변질됐고, 김씨는 왼쪽 다리에 화염병을 맞은 뒤 시위대의 쇠파이프에 뒤통수를 맞고 의식을 잃었다. 이후 두 차례 수술을 했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97년부터 광주보훈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그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사투를 벌여오다 끝내 가족들의 품을 떠났다.



아들을 위해 매일 같이 영양식을 호스와 관으로 넣어줬던 아버지 김정평(68)씨와 어머니 김복임(64)씨는 “연애 한 번 하지 못하고, 술을 마시고 취해 보지도 못하고 떠나버린 아들이 불쌍하다. 너무나 안타까운 청춘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42년간 322명의 전·의경이 순직했다.



고 김인원 의경의 죽음 앞에서 이제는 우리 사회와 국민이 답할 차례가 됐다. “시대가 다시 거칠어지고 있다. 내 아들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김 의경의 아버지 말을 폭력시위의 당사자들은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김 의경과 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그 책임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구태를 반복했다. 얄팍한 논리를 앞세운 말장난으로는 폭력시위를 막을 수 없다. 폭력시위에 대해 최고형을 내릴 수 있도록 입법활동과 제도 개선을 서두르는 것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정부와 사법부는 불법·폭력 시위에 한 치의 양보 없는 추상(秋霜)같은 법 집행을 해야 한다.



김 의경과 같은 억울한 죽음을 방지하고 국민 행복권을 보장하기 위한 섬세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도 한 평 남짓한 병상에서 쓸쓸히 숨진 김씨를 내 형제, 내 자식처럼 생각하며 우리 시대가 ‘정의의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정당한 공권력 집행에는 협조해야 할 것이다.



‘시대의 아픔’이니 ‘민주화 과정’이니 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야만적 폭력에 희생된 김 의경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켜선 안 된다. 국립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어간 김씨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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