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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전용 카페·뷔페·극장 … 종로 2·3가는 ‘실버 홍대앞’





요즘 ‘놀줄 아는’ 어르신들 종로에 모인다는데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 31층의 스카이31 하이마트 뷔페.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삼면을 둘러싼 창가 쪽 100여 좌석이 꽉 찼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70·80대 노인이 대부분이다. “여기선 60대도 청년”이라며 성정호(63) 주방장이 웃었다. 손님들은 대개 옷차림이 깔끔했다. 퇴역 장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종한(84)씨는 백발에 보잉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였다. “여기 오면 우리 또래만 있어서 편해. 음식도 괜찮고.” 그는 군 동기 모임, 고교 동창생 모임 등으로 한 달에 두세 번은 이 뷔페를 찾는다고 했다.



#같은 날 저녁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파고다타운. 2010년 문을 연 노인 전용 라이브 카페다. 삼삼오오 앉은 손님들은 대개 70·80대. 들뜬 표정이 역력했다. 무대 위 가수가 신나는 팝송을 부르자 10여 명의 노인들이 무대 앞으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곳을 찾는 노인들의 진짜 목적은 ‘부킹(즉석 만남)’이다. 짝없이 온 노인들을 합석시켜 소개하는 게 지배인 이승우(43)씨의 주된 업무다. 이씨는 “할아버지들은 열에 열, 할머니들은 열에 다섯 정도가 대화 상대를 찾으러 오는 사람”이라며 “어르신들이 짝을 지어 술 마시고 춤추는 모습을 보면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정말 딱 맞다”고 말했다.



탑골공원과 길 건너편 상권 양극화

종로2·3가의 실버 경제권이 급성장하고 있다. 흔히 ‘탑골공원’ 하면 연상되던 돈 없고 외로운 노인들의 상권이 아니다. 중산층 노인의 모임 장소로 뷔페와 커피숍이 부상하는가 하면, 노인을 위한 전용 영화관·라이브카페·옷 가게 등이 늘고 있다. 앞으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상권은 더 확장될 거란 분석이 많다.



종로 실버 경제권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탑골공원의 서민층 노인이 주로 찾는 ‘공원파’ 상권, 그리고 친구나 동료를 만나러 종로를 찾아오는 중산층 노인의 ‘모임파’ 상권이다. 불황으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상권의 양극화도 극명하다. 공원파 상권은 점점 더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고, 모임파 상권은 더 고급화되는 추세다.



탑골공원 담벼락에서 한 상인이 중고 옷을 팔고 있다. 점퍼가 6000~8000원, 바지는 2000~4000원.




대표적인 공원파 상권은 탑골공원 담벼락을 따라 100여 개의 식당·이발소가 모여 있는 거리다. 이들 저가 음식점에선 황태 해장국 한 그릇이 2000원, 짜장면 한 그릇이 2500원에 팔린다. 3500원이면 머리를 자르고, 길거리 노점에선 중고 바지 한 벌을 2000원에 살 수 있다.



20년간 이곳에서 콩나물·황태 해장국을 팔았다는 김순임(66)씨는 “2500원에 팔던 해장국을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000원으로 내리고선 여태껏 가격을 못 올렸다”고 말했다. 콩나물과 북어, 가스비가 올라 지금은 해장국 한 그릇을 팔아도 300원이 남을까 말까 하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500원만 올려도 여기 오는 대신 무료 급식소로 갈 게 뻔한데 값을 어떻게 올리느냐”며 “그나마 유동 인구가 늘어나 ‘숫자 떼기(박리다매)’로 먹고 산다”고 말했다.



종로5가에 위치한 서울뷔페도 대표적인 공원파 상권. 이름은 뷔페지만 한 끼 식사 가격은 점심과 저녁이 모두 3000원. 콩나물 무침 같은 나물류부터 불고기·야채죽까지 10여 가지 음식을 제공한다. “이 가격도 부담스러워하는 노인이 한둘이 아니다”며 김덕수(73) 사장은 한숨을 쉬었다. 25년 동안 이 뷔페를 운영해 온 그는 “없는 분들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모양이다. 3000원도 못 내겠다는 통에 하루 10여 명은 공짜로 점심을 준다”고 말했다.



인기 있는 뷔페는 일주일 전 예약 필수

모임파 상권은 가격보다 분위기가 중요하다. 스카이31 하이마트 뷔페는 이달 들어 점심 뷔페 가격을 1만5900원으로 1000원 올렸다. 시중 뷔페 가격치고는 저렴한 편이지만 대개 은퇴한 노인들이 찾는다는 걸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가격. 하지만 손님은 전혀 줄지 않았다. 노인들이 모임을 많이 하는 금·토요일 점심엔 300석 홀 전체가 일주일 전에 예약이 마감될 정도다. 이 식당 박중식(68) 지배인은 “식자재 물가가 올라 음식 질을 유지하려다 보니 가격을 조금 인상했다. 손님들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편이라 큰 불평이 없었다”고 말했다.



라이브 카페 파고다타운도 마찬가지. 가장 저렴한 안주류가 6000원으로 인근 식당에 비해 단가가 센 편이지만 주말엔 두 개 층 600석 규모의 홀이 꽉 찬다. ▶비교적 점잖고 세련된 노인이 많아 ‘물이 좋다’는 평을 듣는데다 ▶소위 ‘박카스 아줌마’로 불리는 꽃뱀들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동성끼리 온 노인들에게 즉석 이성 만남을 주선해주는 서비스가 지배인 이씨가 꼽는 이 집의 경쟁력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친구들과 와서 음악을 듣고 간다는 손정원(67·여)씨는 “내 또래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같은 음악을 들어도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둘이 와서 3만원이면 술이며 안주를 맘껏 즐길 수 있으니 저렴한 편 아니냐”고 말했다.



최근 들어 종로2·3가 주변에는 공원파 상권보다 다양한 문화적 체험과 분위기를 앞세운 모임파 상권이 확장되는 추세다. 인사동 한정식 집이나 커피숍 등에도 모임을 갖기 위해 종로를 찾는 노인 고객이 점차 늘고 있다.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옷이나 신발·모자·장갑 같은 패션 상품이 잘 팔린다는 것도 최근의 추세다. 모임에서, 패션에서 미용까지 한곳에서 해결하는 노인전용 ‘올인원’ 상권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인사동에서 생활한복집을 운영하는 서정희(56) 사장은 “노인 인구가 늘어나선지 노인들의 활동성이 늘어나선지 모르겠지만 가게를 둘러보는 손님이 지난해보다 30~40%는 늘었다”고 말했다.



젊은 날 추억과 사통팔달 교통이 매력

전문가들은 앞으로 종로2·3가를 중심으로 한 실버 경제권이 강남역·홍대 인근의 중심 상권 못지않게 번성할 거라고 내다본다. ▶고령화 시대라 절대적인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데다 ▶종로가 지하철 교통의 중심지이고 ▶노인들이 20·30대였던 시절에 가장 번화한 거리로 기억되는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는 데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에 수도권 전 지역에 사는 노인들이 종로 일대로 몰려들고 있다”며 “또래끼리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점차 종로의 노인 상권이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탑골공원 뒷골목에 추억의 팝송을 틀어주는 카페와 라이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노인 전용 술집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종로3가역 인근 가게들은 최근 2년 사이 권리금이 1억원 이상이나 올랐다.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한 상인은 “예전엔 ‘젊은 사람이 안 온다’며 버림받던 상권이었는데 지금은 권리금이 비싸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상권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향후 10~20년 안에 노인 세대로 편입될 지금의 40·50대가 기존 노인 세대보다 경제력이 크다는 점에서 종로 상권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거란 분석이 나온다. 김숙응 숙명여대 원격대학원 실버산업전공 교수는 “현재 50~58세인 베이비붐 세대가 10년 뒤엔 실버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인구의 15%(약 710만 명)에 가까운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 세대에 편입되면 노인 고객이 소비재 시장을 좌우하는 세력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 교수는 “특히 이 세대는 ‘자식에게 다 주지 않고 나를 위해 쓰겠다’는 신념이 확고하고, 기존의 노인 세대보다 경제적 여유가 많아 이들을 노린 상품과 서비스가 다양하게 출시될 것”이라며 “종로를 중심으로 강남역과 홍대를 능가하는 상권이 형성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온라인 중앙일보 · 중앙선데이 임미진 기자, 어고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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