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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예산 97억 → 40억 축소 … 시의회와 갈등





문용린의 ‘곽노현 지우기’ … 서울시교육청 다시 정쟁 속으로

14일 오후 1시. 2011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서울의 한 초등학교. 복도 곳곳에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수공예품들이 놓여 있었다. 1층에 위치한 학부모실에선 학부모 10여 명이 곧 있을 행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 학교 입학을 위해 지난해 근처로 이사온 학부모 성모(37·여)씨는 “학부모회는 물론 밴드·목공예 등 학부모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20여 년간 이 학교에 재직 중인 이모 교사는 “우리 학교는 창의성을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직접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에게 ‘혁신학교’ 얘기를 꺼냈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행된 지 얼마나 됐다고 예산을 줄이려 하느냐” “강남 등 학군이 좋은 곳의 아이들만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이 교사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서명운동을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출범 3년. 서울형 혁신학교의 운명이 다시 ‘태풍 앞 촛불’ 신세가 되면서 교육현장이 시끄럽다. 문용린 교육감이 지난 11일 내년도 서울시교육청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97억원이었던 서울형 혁신학교 관련 예산을 40억원으로 줄여놓으면서다. 반대로 문 교육감의 대표 정책인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연구학교’ 등에는 32억원이 새롭게 편성됐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14일 SNS를 통해 “혁신학교 예산 60% 깎고 혁신지구 예산 전액 삭감이라? 양자가 학교문화를 통째 바꾸는 첫 성공사례인 줄 모르나. 그렇다면 진실에 눈감은 죄, 만일 알고도 이러면 진실을 거스르는 대죄”라며 비판했다. 서울시의회(민주당 77명, 새누리당 28명, 교육의원 8명, 무소속 1명)도 즉각 “문 교육감을 가만히 놔둘 줄 아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서울시교육청에 다시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당장 19일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행정감사를 앞두고 있어 시의회와의 갈등은 가시화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교육 관계자들 사이에선 갈등이 끊이지 않는 서울시교육청을 두고 “‘교육청’인지 ‘전쟁청’인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선 “재선 기반 다지기” 관측도

문용린 교육감은 취임 직후부터 서울시의회와 갈등을 빚어왔다. 학생인권조례·무상급식·혁신학교 등 곽노현 전 교육감의 정책을 손보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기 때문이다. 문 교육감의 교육정책을 두고 ‘반(反)곽노현 정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문 교육감은 올해 초 혁신학교 및 학생인권 조례를 담당하는 과를 개편하고,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곽 전 교육감의 측근 인사는 “당선 직후에 혁신학교를 담당하는 학교혁신과를 학교정책과로, 학생인권 조례를 담당하는 책임교육과를 학교생활교육과로 바꾸는 등 물갈이 인사를 했다. 처음부터 곽노현표 정책이라고 선을 그어놓고 없애려고 해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대영 전 부교육감, 이상면 전 서울대 교수 등 여러 보수 인사들이 내년 6월 교육감 선거의 후보로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선을 위해 지지기반 다지기를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문 교육감 취임 이후 사라진 과(科) 명칭을 두고 교육 관계자들은 “문 교육감 취임 이후 ‘혁신’ ‘민주’ ‘인권’ ‘책임’, 싸(4)가지가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시의회와의 갈등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지난 3월엔 학생인권 조례안의 후속조치로 시의회가 의결한 ‘학생인권옹호관 운영 조례안’에 대해 시교육청이 공포를 거부하고 대법원에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9월에도 시의회가 의결한 ‘혁신학교 조례안’에 대해 재의를 요청했다. 곽 전 교육감의 정책과 관련한 조례에 대해선 무조건 ‘시의회 의결→재의 요청’을 반복하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전경. 지난해 말 문용린 교육감 취임 이후 붙은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한 서울교육’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중앙포토]
곽노현 교육감 땐 서울시·교과부와 갈등

서울시교육청은 이전에도 갈등을 빚었었다. 곽노현 전 교육감 시절엔 서울시와 중앙정부와의 갈등이 특히 심했다. 곽 전 교육감은 진보 진영의 단일화 후보로 2010년 6월 당선됐다. 대표 정책은 ‘무상급식’과 ‘학생인권 조례’였다.



‘무상급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서울시와 갈등이 있었다. 곽 전 교육감은 취임 직후 무상급식을 위한 예산 확보에 주력했다.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도 이에 호응해 2010년 12월 ‘무상급식 조례안’을 의결했다. 그러자 예산을 분담해야 했던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발끈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교육 관계자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무상급식이라는 진보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면서 보수의 아이콘으로 부각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 30일, 무상급식 재원(1162억원)이 포함된 교육청 예산안이 시의회를 통과하자 오 시장은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주민투표였다.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까지 했다. 하지만 2011년 8월 주민투표 결과, 투표율 25.7%(개표 가능 투표율 33.3%)를 기록하면서 개표도 못한 채 사퇴했다.



이후엔 ‘중앙정부’와의 갈등이 시작됐다. 학생인권 조례가 이유였다. 학생인권 조례는 체벌과 소지품 검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조례로 현재까지도 보수 진영으로부터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비판받고 있는 정책이다. 2012년 1월 곽 전 교육감은 시의회가 의결한 학생인권 조례 주민발의안을 직권 공포한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재의 요청을 무시하고서다. 교과부는 이에 대해 대법원에 조례무효확인 소송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권한쟁의심판을 기각해 곽 전 교육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은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곽 전 교육감 비서관이었던 조민환 보좌관은 “당시 이주호 장관이 시·도교육감협의회 때 찾아와 ‘협의해서 잘해보자’고까지 했는데도 뒤돌아서선 강하게 발언했다. 그런 식으로 임기 내내 강경 모드였다”고 말했다. 갈등은 곽 전 교육감이 2012년 9월 27일 사후매수죄 혐의로 징역 1년형을 확정받고 교육감직을 박탈당하면서 일단락됐다.



“백년대계는커녕 오년소계도 안 돼”

서울시교육청은 왜 ‘바람 잘 날’이 없을까. 강대중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교육에 거는 기대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다만 이러한 갈등이 내부에서 조절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교육의 정치화를 지적하기도 한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감은 분명히 정치 중립적이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온갖 쟁점들이 정치화되면서 갈등이 극대화된다. 교육감 직선제가 시작되고 난 이후 이런 움직임이 더해졌다”고 말했다.



교육 수요자들은 이에 대해 불안감을 표한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이섬숙 서울대표는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데 오년지소계(五年之小計)도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2학년 아들을 둔 박모(34·여)씨는 “모두 학생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내세우지만 결국 다 정치적으로 얽혀 있다. 왜 어른들 정치싸움에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보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인권 정책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교육도 인권위원회 같은 독립적인 위원회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논의되고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 중앙선데이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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