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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있으면 죽음뿐”…탈출 인파 몰려 공항 아수라장





CNN서울·홍콩 특파원 필리핀 2신
교통 단절로 생필품 전달 안 돼
상점·구호차량 약탈 '무법천지'
인구집중·부실주택이 재앙 키워























“국제사회 도움이 필요하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태풍 하이옌이 할퀴고 간 필리핀 중부 레이테 섬 타클로반에선 12일에도 생존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계속됐다. 사람들은 물과 식량을 찾아 여기저기 헤맸지만, 참사 닷새째 날까지 교통·통신 단절로 구호작업이 순조롭지 못했다. 극단에 몰린 일부 주민들은 생필품을 구하러 상점 등을 약탈하기도 했다.



타클로반에서 중앙일보·JTBC에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는 CNN 서울 특파원 폴라 행콕스와 홍콩 특파원 앤드루 스티븐스에 따르면, 사실상 무법천지로 변한 시내에서 사람들이 상가를 닥치는 대로 터는 모습이 목격됐다. 한 가게 주인은 “식량만이 아니라 냉장고·세탁기 같은 가전제품까지 쓸어갔다”며 “타클로반 인구 99%가 가톨릭 신자인데 믿기지 않는 일”이라고 탄식했다. 구호품을 실은 적십자사 소속 차량까지 일부 습격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는 상점을 지키기 위해 총기로 무장한 점주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치안 부재를 틈타 600여명이 수감된 타클로반 교도소에서 일부 죄수들이 탈옥하는 일도 벌어졌다. AP통신은 12일 지역 군 관계자를 인용해 달아나는 죄수들에게 경비대가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필사의 탈출 행렬도 이어졌다. 12일 타클로반 공항에 필리핀 군용기 2대가 착륙하자 3000여명이 삽시간에 몰려 아수라장이 됐다. 빗속에서 아기 엄마들은 머리 위로 자식들을 치켜 올리며 비행기에 태워달라고 호소했다. 한 30대 여성은 “군인에게 무릎 꿇고 빌었다. 당뇨병을 앓는 내가 공항에서 이대로 죽길 바라는 거냐”라며 울부짖었다.



전날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던 필리핀 당국은 군과 경찰력을 증강 배치했다. 마닐라 스탠더드 투데이에 따르면 11일 경찰 특별기동대 883명이 타클로반·오르모크 등지에서 치안 확보에 나섰다. 비사야스에는 군 병력 500명이 급파돼 도로 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깨끗한 물”이라고 CNN 특파원들은 입을 모았다. 강가에 방치된 시신들이 식수를 오염시키면서 420여만 이재민들을 더욱 절망케 하고 있다. CNN이 만난 ‘국경 없는 의사회’ 관계자는 “수질 오염으로 인한 전염병이 생존자들을 다시 사지로 내몰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리핀 국가재난감소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까지 확인된 사망자가 1744명, 부상자가 2487명이다. 그러나 레이테 섬에서만 사망자가 1만명으로 추정되는 등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크다. 사마르 섬에서도 400명이 사망하고 2000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동사마르와 세부에서도 각각 162구, 63구의 시신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피해가 이렇게 커진 데는 필리핀 방재 시스템에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타클로반만 해도 최근 40년간 인구가 3배(22만여명)으로 늘어나면서 태풍에 취약한 해안가에 집단 거주지가 밀집하게 됐다. 가옥 3채 중 1채가 목재 외벽을 둘렀을 정도로 시공도 부실했다. 이런 건물들이 최대 시속 379㎞의 하이옌 강풍에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날아갔다.



게다가 태풍 상륙 전 당국이 수 차례 대피령을 내렸음에도 주민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집을 비웠다가 도둑이 들까 두려워한 것이다. 이 같은 필리핀인들의 정부 불신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의 대응과 대조를 이룬다고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이 지적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당국의 비상 통제에 적극 협조했고 약탈·도난 등 혼란도 거의 목격되지 않았다.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허리케인을 연구하는 브라이언 맥놀디 교수는 “이번 재앙은 75∼80%가 자연보다는 인간의 책임, 즉 인재(人災)”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구호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미 국방부는 12일 필리핀에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파견한다고 밝혔다. 약 5000명의 병력과 구축함·순양함·잠수함·함재기 80대로 구성된 조지워싱턴호는 주둔 중인 홍콩을 떠나 이르면 14일 필리핀 현지에 도착한다. 미 국제개발처(USAID)도 구호·복구작업에 2000만 달러(약 214억원)를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인근 싱가포르에 정박 중인 함정 1척을 피해지역에 급파하는 한편 복구장비 공수 등을 위해 C-17 화물기 파견도 추진하고 있다. 유엔은 응급 의료품과 식수, 위생설비 지원 등에 2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세계식량계획(WFP)도 200만 달러의 재해대응기금을 집행키로 했다.

반면 최근 필리핀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중국은 1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지원금을 내놓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만약 중국이 (영해 갈등 중인) 필리핀을 돕는다면 중국인들 사이에서 불만이 촉발될 수 있다"는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자의 말을 소개했다.



강혜란·전영선 기자 theother@joongang.co.kr

[AP=뉴시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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