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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보신주의가 숭례문 두 번 울렸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기둥은 갈라지고 단청은 떨어져 나간 숭례문의 부실 복구 실태를 취재(7일자 1·4·5면)하며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국보 1호의 초라한 귀환도 안타까웠지만, 그 귀환을 준비하느라 ‘나름’ 애를 썼던 공무원들을 현장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재청 직원은 “과학자들이 열심히 했지만 나로호 발사도 두 번이나 실패하지 않았느냐. 우리도 이런 결과가 나올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주어진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항변이다.



 이번 숭례문 사태는 이처럼 ‘주어진 범위 안에서만’ 노력하는 공무원들의 상상력 부족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 숭례문 복구에 사용할 자재를 선택하는 과정부터 그렇다. 숭례문의 뼈와 살이라 할 수 있는 석재·목재·기와·철물·단청안료 등 주요 자재 구입에 든 예산은 약 13억7000만원. 전체 복구 예산 242억원의 5.6%에 불과하다. 목재에 2억3400만원, 단청안료에 1억800만원이 쓰였다는 내역을 받아 들고 “혹시 동그라미를 하나 빠뜨린 게 아니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담당자들은 기자의 당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달청에서 공시한 공공발주 공사 품셈내역을 기준으로 책정한 재료비”라고 했다.



 숭례문은 문루 1, 2층을 합한 면적이 311㎡(약 94평)에 불과한 작은 목조건물이다. 하지만 이 건축물의 역사적·정신적 가치는 물리적 규모의 수백 배, 수천 배에 달한다. 그런데 이 문화재 복구에 쓰인 자재비에 주민센터나 파출소를 지을 때와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주민센터와 파출소도 잘 지어야 한다. 하지만 국보 1호라면 기준이 달랐어야 했다.



 단청에 쓰인 전통안료는 조달청의 품셈내역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택된 재료는 그 값이 최고급 천연석채 10분의 1 수준인 수간분채(水干粉彩)였다. 해당 안료의 상표를 확인한 서울 인사동 안료인들은 “화가나 미대 학생들이 많이 쓰는 것이다. 국보 1호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당초 5억~6억원 정도 책정됐던 안료비가 갑자기 축소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목재보다 비싼 안료를 택했을 때의 위험부담을 피하려는 보신주의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누군가 소신을 갖고 “국보 1호인 만큼 최상급 재료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면, 1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제대로 된 재료와 방법으로 내 집 짓듯 정성을 다했다면. 국보가 불에 타버린 비극은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값진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숭례문이 두 번 우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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