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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70년대 한국 외교 기반 닦은 최장수 외교 수장

1977년 1월 27일 박동진 외무장관(왼쪽)이 외무부 업무계획을 보고받기 위해 서울 세종로 중앙청(1995년 철거)으로 들어가는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역대 최장수 외교 수장 기록을 가진 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이 11일 오후 별세했다. 91세.



박동진 전 외무장관 별세

 고인은 대구 출신으로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미군정 시기부터 상무부 서무과장으로 관계에 몸을 담았다. 이승만 대통령 때인 1950년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하다 54년 주미대사 양유찬과 함께 주미대사관에 부임하며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외무부 의전국장, 주영대사관 참사관, 외무부 차관, 주월남 대사, 주유엔 대사 등을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던 75년 외무부 장관에 임명돼 80년까지 17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후배 외교관들은 그를 1970년대 유엔 승인을 둘러싼 남북외교의 소모전을 종식시킨 외교계의 거목으로 기억했다. 고인이 주 유엔대사로 근무 중이던 73년 당시 남북은 미·소 냉전의 최전선에서 정통성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서방은 한국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제출했고 공산권은 북한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던 중 고인이 “우리가 먼저 유엔 불상정을 하자”고 건의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 쓸데없는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고인의 예상대로 76년 유엔은 한반도와 관련된 유엔 결의안을 모두 철회했다. 고인과 함께 3년 간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정태익 전 주러시아 대사는 “유엔 불상정은 불필요한 남북대결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었다”며 “박정희 대통령도 외교 부문에 있어서는 특별히 박동진 장관을 신뢰했다”고 기억했다.



 인권을 강조하던 미국의 카터 행정부와 박정희 정부가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던 시절 고인은 ‘불편외교’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고인은 미 의회 의원에 대한 뇌물사건에서 비롯된 코리아게이트, ‘박동선(朴東宣) 사건’을 처리했고 79년 10·26, 신군부에 의한 12·12 쿠데타 등 국가 위기상황에서 대미관계를 잘 조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두환 정부에선 국회의원(11·12대)과 국토통일원 장관(85~86년)을 지냈고, 노태우 정부 땐 주미대사(88년~91년)로 중용돼 한·미 간의 통상마찰·방위비 분담 등 굵직한 사안을 처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당시 영사담당 총영사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이후 한국전력공사 이사장, 한국외교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헌법 초안을 작성한 유진오 박사의 사위인 고인은 유족으로 유충숙 여사와 1남 3녀가 있다. 장례는 외교부장(葬)으로 치러질 예정으로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4일 오전 8시. 02-3010-2292.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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