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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상처에 매달리나 … 우리는 무한행복 연출자인데

대해 스님은 깨달음을 설명하는 데 영화의 힘을 활용한다. “삶은 한 편의 영화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속성을 이해할수록 삶에 대한 연출의 힘이 강해진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의 시대다. 잘 빚은 영화 한 편은 평생에 남는 감동을 준다. 우리 삶도 그런 영화처럼 흘러갈 수 있을까. 행복과 불행을 내다보며 지혜로운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조계종 국제선원에서 만난 대해(大海·54) 스님은 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⑪ 영화감독 대해 스님(조계종 국제선원장)



 대해 스님은 독특하다. 언뜻 조합이 잘 되지 않는 영화와 수행을 짝지어왔다. 지금껏 인생연출법을 일러주는 단편영화 76편을 만들었다.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당신의 영화는 하나의 장르다”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에게 인생과 영화, 둘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물었다.



 - 스님은 출가자다. 왜 영화인가.



 “이 세상을 아름답고 푸르게 만들기 위해서다.”



 - 영화 한 편 만든다고 세상이 푸르게 되나.



 “필름으로 찍는 영화만 영화가 아니다. 각자의 삶이 한 편씩의 영화다. 나의 삶이 푸르러지면 세상이 푸르러진다. 나는 삶이라는 영화의 연출법을 영화로 만든다.”



 - 실제 연출 포인트가 있다면.



 “대부분 실화가 바탕이다. 신도들의 고민을 상담하며 있었던 일을 스크린에 옮긴다. 가령 ‘본질의 시나리오’는 유산 상속을 둘러싼 형제간 갈등을 다뤘다. ‘무엇이 진짜 나인가’는 소년원을 드나들던 깡패대장의 이야기다. ‘이해가 되어야 살이 빠진다’는 비만을 소재로 했다. 과식의 원인을 어릴 적 못 먹었던 기억 등 내 마음에서 찾아내는 스토리다. 영국평론가 데이브 와트슨은 ‘자기 가족이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살을 뺐다’고 했다. 독일 뮌헨의 병원에서 비만환자 500명을 치료 중인 의사도 ‘환자들에게 보여주겠다’며 영화 테이프를 구해 갔다. 이처럼 영화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고쳐나가려 한다.”



 - 각자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찰나찰나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래서 한 편의 영화다. 다들 자신의 삶을 연출하며 살고 있다. 때로는 감독, 때로는 배우, 때로는 관객이 되면서 말이다.”



 - 누구의 삶은 비극이 되고, 누구의 삶은 해피 엔딩이 된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기나.



 “멋진 영화를 만들려면 연출력이 뛰어나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삶을 살려면 연출력이 좋아야 한다. 그 연출의 힘에 따라 삶은 비극도 되고, 희극도 된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 말하면서도 연출법은 불행한 쪽으로 쓸 때가 많다.”



 스님은 인생연출법의 핵심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한마디로 요약했다.



 “종이를 한 장씩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글을 써서 보고픈 사람에게 편지를 보낸다. 또 어떤 이는 큰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운다. 결국 종이는 물에 젖고, 배에 탄 사람은 바다에 빠지게 된다. 왜 그런 일이 생기나. 종이의 속성을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기 때문이다.”



 - 종이의 속성이란 뭔가.



 “생명의 속성이다. 나라는 존재, 주위의 사람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모두 거대한 하나의 생명이다. 그 생명의 속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스님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더 쉽게 풀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나무와 돌, 사람과 감정 등 모든 현상계가 색(色)이며, 그런 색의 속성은 공(空)이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순간순간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 삶이 공(空)이라면 허무하다.



 “텅 비어 허전한 공이 아니다. 비어 있기에 무한창조과 무한소멸이 가능하다. 자유롭게 창조하고, 자유롭게 소멸할 수 있을 때 지혜로운 삶을 연출할 수 있다.”



 대해 스님은 인간의 상처를 예로 들었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찾아와서 ‘이 상처는 무덤까지 안고 갈 것 같다’고 하더라. 안타까웠다. 그 여성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럼에도 원치 않는 고통을 평생 안고 가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연출하고 있더라. 상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처는 색(色)이다. 색의 속성은 공(空)이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 사라지지 않는 상처도 있지 않나.



 “쓰레기를 태우면 다 소각된다. 그게 상처의 속성이다. 그런데 어떤 쓰레기 조각은 타지 않고 이리저리 굴러 다닌다. 그게 남아서 내 속을 오염시킨다.”



 - 그런 상처를 소각하려면.



 “아무리 큰 상처도 스스로 사라지는 속성이 있다. 아픈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이 상처는 공(空)하다. 없는 거다’라고 계속 생각하라. 그럼 상처가 있던 자리에 이 생각이 대신 입력된다. 상처는 놓아 버리면 없어진다.”



 스님은 법회에서 초등학생에게 소멸성을 가르친 적이 있다. 남들 앞에만 서면 많이 떨던 아이였다. 학교에서 발표대회가 있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극도로 긴장했던 아이는 ‘그래, 소멸성을 써야지’라며 떨리는 마음을 없애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거짓말 같이 떨리는 마음이 없어졌다고 했다. 결국 1등을 했다. 그 후에는 겁이 없어졌다. 어떠한 감정도 소멸시킬 수 있다는 원리를 스스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없애고 대신 용기를 얻었다.”



 대해 스님은 2007년부터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영국·오스트리아·러시아·룩셈부르크·아르메니아 등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서 30회 이상 수상했다. 이탈리아·러시아에선 감독기념전까지 열렸다. 상업영화처럼 매끄럽게 포장되지 않았어도 영화에 담긴 인생연출법은 강렬하다.



 “러시아에서 한 관객이 다가오더니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타르코프스키의 고향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영화를 보려고 시골마을에서 트럭을 몰고 8시간이나 눈길을 헤치고 달려왔다고 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86)는 인간의 구원을 영화로 다뤘던 러시아의 거장이다.



 - 다들 멋진 영화처럼 살고 싶어한다.



 “차(茶) 창고가 있다고 하자. 차를 만드는 온갖 재료와 도구가 다 들어 있다. 창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필요할 때마다 재료를 꺼내서 원하는 차를 만들어 먹는다. 모르는 사람은 어쩌겠나. 지금껏 해왔던 식으로만 차를 만든다. 설사 그게 오염된 차라 해도 말이다.”



 - 그런 차 창고가 어디에 있나.



 “사람들은 밖에서 찾는다. 차 창고는 내 안에 있다. 거기에 인생이란 시나리오의 연출법이 다 들어 있다.”



 - 내 안에 있다는데 왜 안 보이나.



 “공(空)이라서 안 보인다. 사람들은 옷은 보면서 그 바탕인 천은 못 본다. 천을 보려면 어떡하면 되겠나. 옷을 놓으면 된다. 그게 소멸성이다. 내가 붙들고 있는 옷을 다 놓으면 천이 드러난다.”



 스님은 피아노 교사를 통해 중증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고교생을 지도한 적이 있다. 관찰력이 없어 처음에는 어려워했다. 피아노도 기계적으로 건반만 마구 두드렸다. 그리고 몸살이 나기 일쑤였다. “너처럼 건반을 마구 두드리면 쇼팽이 좋아할까. 쇼팽은 악보에 어떤 마음을 담았을까. 피아노는 마음으로 친다. 손은 마음을 나타내는 도구일 뿐이다.”



 이렇게 가르치자 학생은 건반에 쇼팽의 마음을 싣기 시작했다. 결국 일반 대학의 음대에 합격했다. 주위에선 깜짝 놀랐다. 스님은 “먼저 악보를 통해 쇼팽의 마음을 보게 했다. 그게 관찰성이다. 그럼 나의 마음과 쇼팽의 마음이 통하는 불이성(不二性)을 알게 된다. 결국 학생이 자신의 마음을 연출하는 창조성을 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이러한 생명연출법을 바탕으로 ‘대안교과서’도 만들었다. 국어·수학·생물·과학·미술·음악 등 여러 과목을 생명의 속성을 통해 풀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백야영화제에서 만난 커리큘럼 담당자로부터 “러시아 학생들을 교육시켜 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지난달 상트 페테르부르크 학교장 및 교육관계자들에게 1차 교육을 했고, 학생 프로그램도 진행키로 했다. 스님은 “자신의 삶을 3류 영화로 만들 건가,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 건가. 그건 생명의 연출법을 아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대해 스님의 추천서 3권



대해 스님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다르지만 생명의 본질은 하나다. 우주 전체가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다. 누구나 삶을 원하는 대로 창조하고, 소멸시키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내게 영화는 그런 뜻을 담는 그릇이다”고 말했다.



◆길 없는 길(최인호 지음, 여백)=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인 경허(鏡虛·1846∼1912) 스님의 치열한 구도 역정과 깨달음, 전법(傳法) 및 흥미진진한 일화 등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박진감 있게 전해준다. 경허라는 위대한 선승의 일대기를 통해 불법의 광대하고 심오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백유경(가사나 지음, 조기영 옮김, 지만지)=『백유경』(百喩經)은 5세기경 인도의 비구 상가사나 스님이 고대 인도의 구비설화를 모아서 편찬한 경전이다. 다른 경전들처럼 난해하지 않으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비유와 풍자를 통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글이다.



◆대해(大海) 스님=1959년 전북 남원 출생. 조계종 국제선원 선원장. 사단법인 ‘영화로 세상을 아름답게’ 이사장과 UNICA(세계비상업영화인연맹) 한국지부 회장을 맡고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무엇이 진짜 나인가’‘이해가 되어야 살이 빠진다’ 등 단편영화 76편 제작. 저서 『생명의 연출』은 영어·불어·독어·러시아어로 번역됐다. 『대방광불화엄경(80권)』 『금강경』 『육조단경』 『능엄경(10권)』 『대승기신론』 『신심명』 등을 이해하기 쉽게 우리말로 풀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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