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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문화재 복원, 非공개·민관합작이 성공 비결”





자금성 전각 ‘건복궁’ 복원 주도한 홍콩 갑부 로니 찬

청(淸)나라 건륭제가 진귀한 서화와 보물을 감상했던 자금성 내 유서 깊은 밀궁인 건복궁(建福宮)을 되살린 홍콩 기업인 로니 찬(64·陳?宗·사진). 거대 부동산기업 ‘항륭지산’의 대표인 그는 올 초 포브스가 선정한 홍콩의 14번째 부호에 올랐다. 그가 지난 7일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글로벌 아시아소사이어티’의 한국센터 창립 5주년 행사 참석차 서울에 왔다.



건복궁은 청나라 전성기였던 건륭 5년(1740년) 자금성 서북쪽에 세워졌다. 1923년 6월 26일 밤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소실됐다가 82년 만인 2005년 로니 찬이 설립한 중국문물보호기금의 기부로 복원됐다. 복원사업엔 100여 명의 장인이 투입됐고 270여 년 전과 똑같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고고학 전문가들이 산둥(山東)성과 쑤저우(蘇州) 등 중국 각지를 뒤졌다. 대한민국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복원 6개월 만에 부실·졸속공사로 신음하는 시점에서 로니 찬을 만나 문화재 복원의 의미와 지혜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홍콩의 부동산사업가인 당신이 어떻게 건복궁을 복원했나.

“원래부터 문화재 복원에 관심이 많았다. 다만 정치가 체질에 맞지 않아 가급적 베이징에서 떨어진 지역의 유적들을 복원하려 했다. 하지만 자금성 안에 있는 건복궁만큼은 달랐다. 그곳의 불탄 전각과 정원을 복원한다는 건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나락에 떨어졌다가 다시 떠오르는 중화문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나는 기금을 만들기로 하고 미국과 전 세계의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부인인 바버라 여사의 지원까지 끌어냈다. 그러나 ‘중국문물보호기금’ 설립 뒤 우리는 그 돈을 중국 정부의 복원 담당기관(고궁박물관)에 건네주는 대신 문물 복원에 동참하기로 했다.



-왜 그랬나.

이런 국가적 대역사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와 중국문물보호기금의 전문가들이 예산의 분배와 관리, 즉 경영을 떠맡았다. 문화재 복원 경험이 풍부한 해외 전문가들로 하여금 건복궁 복원을 맡을 중국 장인(匠人)들을 훈련시키도록 했다. 이를 위해 고궁박물관 측에 국제기준을 충족할 수준의 계약을 요구했다. 처음에 반대했던 박물관 측도 우리 설득을 받아들여 뜻을 같이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95년 시작된 복원 프로젝트가 계약 성사에만 무려 6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제대로 복원을 하지 못했을 거다.”



-건복궁 복원에 1300만 달러(약 140억원)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기금을 제공하면서 전각 복원이 끝나면 상업적 용도로 쓰이지 않게 해 달라는 것, 이것 한 가지만 딱 요구했다. 중화문명의 상징을 복원해 중국에 돌려주는 데 만족할 따름이었다. 복원이 끝난 뒤 아버지 부시 대통령 내외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등 지인들과 함께 건복궁을 둘러봤다. 다들 극찬하더라.”



-그런데 2011년 복원이 완료된 뒤 중국 언론들은 “건복궁이 입회비만 100만 위안(약 1억6700만원)인 부호 전용 고급 클럽으로 개조됐다”고 비판했다.

“건복궁이 그런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걸 현지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았다. 불쾌했다.”(중국 언론들은 당시 “건복궁 복원에 거액을 기부한 로니 찬은 자신의 호의가 이런 방식으로 왜곡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는데.)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뭔가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말렸다. 우리의 할 일은 문화유산을 복원해 중국에 돌려주는 것뿐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뒤의 일은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건물을 복원할 때 어떤 철학으로 했나.

“재료와 디자인, 건축공법 이 세 가지만큼은 반드시 전각이 처음 세워졌을 당시의 것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궁박물관 측이 이를 받아들여 일이 잘 풀렸다. 그들은 뛰어난 장인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행히 건복궁 외관은 인접한 다른 궁전의 디자인과 비슷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접한 전각이 그보다 30년 앞서 세운 건복궁을 모방해 지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부였다. 상상력이 필요했다.”



-어떤 상상인가.

“바닥에 기둥이 박혀 있던 구멍이 남아 있었다. 그걸 최대한 살렸다. 훼손을 막기 위해 1m 높이로 나무마루를 만들었다. 그러나 기둥 주변에는 나무 대신 유리를 깔아 기둥과 바닥의 이음매 부분이 보일 수 있도록 했다. 또 목재를 열 겹으로 둘렀다. 덕분에 물이 전혀 새지 않았다.”



-보존에도 신경을 써야 했겠다.

“그렇다. 특히 전기배선이나 스프링클러같이 건물의 보존에 꼭 필요하지만 원래 모습을 해칠 수 있는 기기들을 어떻게 설치하느냐가 난제였다. 에어컨을 예로 들겠다. 여름에 습하고 더운 베이징에서 목재의 보존을 위해 에어컨은 필수다. 하지만 에어컨이 가동되면 목재를 끼워 맞춘 아귀가 뒤틀리는 문제점이 있었다. 궁리 끝에 에어컨에 스프링을 부착해 충격을 흡수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또 1층과 2층 사이에 1.5층(mezzanin)이 있는 전각 구조를 감안해 에어컨을 1.5층에 설치한 뒤 막을 씌워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 결과 밖에선 1층과 2층 사이에 1.5층이 있는 걸로 보이지만 안에는 1층과 2층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그러나 전혀 어색하지 않다.”



-숭례문이 복원 5개월도 안 돼 여기저기 훼손되면서 부실 공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

“숭례문과 마찬가지로 국보급 문화재인 건복궁의 복원을 관(官:정부)만이 아니라 민관 합작으로 한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건복궁은 고궁박물관과 중국문물보호기금이 서로 조화롭게 협력해 성공적으로 복원됐다. 박물관 측은 설계와 공사를, 기금에선 경영과 소프트파워 부문을 맡았다. 서로 손발이 잘 맞았다. 또 국가적인 문화재 복원사업을 공개적으로 해선 안 된다. 우리는 철저히 대중의 눈을 피해 작업했다. 심지어 완공 이후에도 그 사실을 숨겼다. 그래야 간섭하거나 방해하는 이가 없어 자유로운 공사가 가능하다. 고궁박물관 측이 감사의 뜻으로 내 흉상을 건복궁 안에 세우겠다고 했다. 나는 안 된다고 했다. 비공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복원된 숭례문을 본 적이 있나.

“과거에 이홍구 전 총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차를 타고 가면서 불탄 숭례문을 본 적이 있다. 그 복원공사를 대한민국 국민이 지켜보고 있지 않았겠나. 서울시민만 해도 1000만 명 아닌가. 대역사는 정부가 홀로, 또 공개적으로 하면 매우 어렵다.”



-당신은 중국의 부상을 상징하기 위해 자금성 내 건복궁을 복원했다. 한국은 중국의 부상을 존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안감도 갖고 있다.

“중국의 농구 스타 야오밍은 키가 엄청나게 크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 자체로 위압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착하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이웃 나라들이 부담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좋은 이웃이다. 모든 국가는 동등(equal)하다. 다만 중국은 그 크기와 힘 때문에 ‘동동한 나라들 가운데 첫째(first among equal)’인 것이다. 이 점만 한국이 이해한다면 우려할 필요가 없다.”



-미·중이 싸울 경우 한국이 끌려 들어가는 상황을 한국은 가장 곤혹스러워한다.

“한국은 밸런싱(balancing·균형)을 할 수밖에 없다. 모든 나라, 즉 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그렇게 하고 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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