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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현의 귀촌일기] 배추가 뭐길래!

남덕현
귀농 수필가
배추잎을 뜯어 반으로 접어 본다. 능청거리지 않고 ‘툭’소리를 내며 허리가 부러진다. 동시에 단내 나는 물방울들이 얼굴까지 튀어 오른다. 씹어보면 풋내를 동반한 단내가 진동하고 두툼하기는 하되 질긴 구석 하나 없는 식감이 일품이다. 최고의 배추인 것이다. 그런 배추들이 밭에 널려 있다. 누렇게 익어 가던 장한 벼단풍이 지고 나면 짙푸른 배추단풍을 기특하게 바라보는 맛에 사는 시골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 맛이 쓰디쓰다. 배추농사가 대풍이라서 시세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수입이 줄어서가 아니다. 사실 대규모의 기업농을 제외하고 손바닥만 한 밭뙈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시세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피붙이들 실컷 나눠 먹고, 남으면 장에 내다 파는 정도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그깟 몇 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맛이 쓴 이유는 몇 년 전 배추파동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에 필자의 지인들 사이에서는 ‘그 흔한 시골당숙 하나 없어서’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그 흔한 시골당숙 하나가 없어서 꼼짝없이 값이 헐한 중국산 배추로 김장을 담그게 생겼다는 우스갯소리였다. 시골도 시골 나름대로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서울 사는 시누이가 그렇게 상냥하고 고분고분하게 전화를 한 적이 없었다, 대뜸 ‘당숙!’이라고 부르기에 얼떨결에 ‘조카님!’ 하면서 전화통화를 했는데 당최 누구인지 몰라서 나중에 족보를 뒤져보았다, 심지어는 몇 년 묵은 벌초 삯을 한꺼번에 주더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모두가 배추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배추 덕분에 시골 사람들이 모처럼 목에 힘깨나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시세가 올라봤자 몇 푼 안 되는 돈보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상전 대접에 흥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흥이 지나쳐 화를 부르기 시작했다. 배추만 뽑아서 보내주어도 황공할 마당이지만 어디 시골 인심이 또 그렇던가! 일일이 손질하고 소금에 절여서 부쳐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시골 사람들 아니던가! 배추를 자르고, 닦고, 소금에 절이는 일이 김장의 팔 할이다. 그 팔 할마저 자청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거저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는 처지에, 배추가 금값이 되었다고 금값을 내놓으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소금 값이며 인건비까지 또박또박 계산해서 받아낼 수 있는 주제도 못 되었다. 여기저기 탈이 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상전 노릇이었던 셈이다.



 남는 것 하나 없고, 몸만 고달팠던 기억이지만 그래도 시골 사람들은 그때를 그리워한다. 어차피 농사는 흉년이 들어도, 풍년이 들어도 걱정이고 살림살이는 늘 위태롭지 않던가. 그나마 목에 힘이라도 주고 다니던 그때의 추억이 배추잎처럼 달콤한 것이다.



남덕현 귀농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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