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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관행인데 외국선 담합 … '과징금 폭탄' 맞는 우리 기업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는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쟁위원회의에 대표단을 보냈다. 이 회의는 각국 경쟁당국 관계자들이 모여 국제적 기업 담합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대표단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경쟁 정책 현황을 설명하고, 국제 공조 강화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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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대표단이 파리를 찾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외국 경쟁당국이 담합을 적발하고 과징금 부과와 같은 처벌을 하는 기조가 어떤지를 파악하는 거였다. 한국 기업들이 최근 국제 담합 사건에 연루돼 과징금 처분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 대응책 마련을 위한 정보 수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정위는 홈페이지에서 “우리 기업이 현지 법률 지식 부족을 이유로 예상치 못한 피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이 최근 5년간 미국·유럽연합(EU) 등에서 담합 혐의로 부과받은 과징금은 모두 2조4000억원에 이른다. 1년에 4800억원씩 낸 셈인데, 이 돈은 고교 무상교육(5000억원)에 필요한 예산과 맞먹는다.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에서 미 법무부로부터 부과받은 담합 과징금만 2005~2009년 11억8500만 달러(1조2600억원)다. 이 기간 담합 과징금 총액(31억420만 달러)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최근엔 중국과 EU로부터 잇따라 ‘과징금 폭탄’을 맞고 있다. 올해 1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LCD 패널을 만드는 6개 회사가 담합을 했다”며 총 6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EU에서는 지난해 12월 경쟁총국이 “8개 회사가 브라운관 가격과 생산량을 담합했다”며 총 2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일도 있었다. LG전자에 부과된 과징금은 4160억원, 삼성SDI는 2120억원을 물게 됐다.

 주요국의 담합 조사가 잦아지고 강해진 데 대해서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국 LCD 사건에 대해 당시 공정거래 관련 국제잡지인 GCR(Global Competition Review)은 “법 위반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조사 절차의 정당성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GCR은 또 EU의 브라운관 사건에 대해서도 “유사 사건과 달리 상대적으로 거액의 과징금을 매긴 것은 집행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그리스 구제금융으로 어려워진 재정을 과징금 부과로 충당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그동안 국제적 규율 준수에 소홀해 온 기업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기업의 위상이 높아지면 견제도 심해지는 게 당연한데, 이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바른 공정거래팀은 한국의 기업 문화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각종 모임, 사업자단체 활동, 개인 인맥을 활용한 영업 관행이 외국에서는 담합을 위한 활동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LCD 사건에서 53회 열린 회사 간 공동회의를 담합 행위의 근거로 삼은 것이 대표적이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임이나 인맥을 활용하는 영업 관행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이 같은 활동에서 담합을 제안하거나 외국 기업의 담합 제의에 응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담합에 대한 죄의식이 희박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백광현 변호사(바른)는 “담합을 비즈니스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실수 정도로 인식하는 기업인이 아직도 많다”고 지적했다.

 ‘자진신고 감면제도(리니언시·Leniency)’를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각국은 이 제도를 운영하며 담합 자진신고를 가장 먼저 한 업체에 과징금 완전면제 등의 혜택을 준다. 담합 기업들끼리 서로 자진신고 경쟁을 벌이게 해 위법 행위 적발을 쉽게 하자는 의도다. 하지만 한국에서 리니언시는 ‘고자질’ ‘배신’ 등으로 인식되는 문화가 남아 있다. 주 교수는 “한국기업은 미국·유럽 회사들에 비해 이를 활용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라 간 경쟁법 적용의 차이를 완벽하게 파악해 스스로 몸조심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는 “최근 EU는 경쟁정책에 대해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있다”며 “미국 시장에서는 문제없는 영업 관행이 EU에서는 담합 등 위법 행위로 판정받아 거액의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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