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겨우 청년기에 들어선 한국 기초연구

지난 7월 일본에서 열린 아태물리학회에 참석해 일본의 원로 물리학자와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일본의 기초연구 전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 물리학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어려웠던 시절 도모나가 신이치로 교수가 쓴 『양자역학』으로 새로운 학문 분야를 공부하다가 저자를 찾아가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두 학자의 인연은 도모나가 교수가 사망한 1979년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도모나가 교수는 양자전기역학 분야의 기초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에 앞서 1937~39년에는 독일 라이프치히대에서 양자역학을 창시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교수와 함께 연구했다. 사실 도모나가를 얘기하려면 이화학연구소에서 그의 스승이었던 천재적 물리학자 니시나 요시오를 빼놓을 수 없다.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니시나는 1931년 이화학연구소에 연구실을 마련한 뒤 도모나가와 함께 49년 일본의 첫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를 비롯해 고시바 마사토시(2002년 수상), 고바야시 마코토·마스카와 도시히데(2008년 공동 수상) 등 노벨 과학상 수상자 네트워크의 기반을 다졌다. 한마디로 그는 일본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일본의 기초과학 수준은 20세기 중반에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반열에 올랐던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노벨 과학상 수상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기초연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진 연구자 지원을 강화하고 도전적·창의적 연구 강화, 과학기술 외교 강화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정부가 주도하는 기초연구 추진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89년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이 제정되고 2006년 제1차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이 수립됐지만 이제 겨우 청년 수준일 뿐이다. 우리 정부는 2017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40%를 기초연구에 투자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20~30대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두고 60대 이후 이 상을 받는다는 걸 감안하면 한국인 학자가 조만간 노벨 과학상을 받기를 기대한다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이 대목에서 간과하면 안 될 부분이 있다.

첫째, 기초연구는 새로운 과학의 기원을 여는 상상력과 창의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벨 과학상은 인류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독창성 있는 ‘최초의 발견·발명자’에게 주는 상이다. 그래선지 우주 만물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의 존재를 예측한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피터 힉스가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흔히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입자의 발견 덕에 ‘우주는 어떻게 형성됐을까’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답할 수 있는 표준 모형이 완성됐다. 힉스 교수는 노벨상 발표 후 “기초과학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 연구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올라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요즘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등에 필수적인 GPS도 시간·공간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1905년 발표)에 기초하고 있다.

둘째, 정부의 기초연구 정책 추진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다수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기초연구 저력은 메이지 시대부터 정부가 부국강병을 위해 고등교육과 기초연구 정책을 부단히 추진해 온 결과다. 1917년 물리·화학 등 기초과학 연구 추진을 위한 이화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100여 년 전부터 기초과학에 전폭적인 투자를 해 왔다. 기초과학 역량이 국가 미래를 좌우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2008년 기초과학력 강화 추진본부를 문부과학성에 설치할 만큼 일본 정부는 지금도 이 분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바야흐로 창조경제 시대에 돌입했다. 과거엔 개인과 국가가 가진 부(富)의 격차가 물질과 정보에 의해 판가름 났다면 앞으로는 창조성이 그 격차를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번 유럽 순방 때 ‘기초과학은 창조경제의 뿌리, 기업은 기둥, 일자리는 열매’라고 언급하며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했다. 창조경제 시대엔 남들이 연구하는 천편일률적 과학기술과 기초연구 정책의 의미가 크지 않다. 미래의 새로운 성장산업을 창출하고 과학기술의 기초를 강화하기 위한 연구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 연구들을 통해 우리 기업도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새로운 혁신을 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박영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후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땄다. 명지대 물리학과 교수와 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