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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칼럼] 실패의 경제학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 가면 ‘실패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외면당한 신제품 7만여 개가 전시돼 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이라는 코너에는 연기 없는 담배, 무색 콜라, 스프레이형 치약과 같이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소비자 기호를 무시한 탓에 시장의 냉담한 반응을 맛본 대표적인 상품들만 따로 모아놨다. 시장의 실패마저 돈벌이용 볼거리로 만들어놓은 미국 사회의 단면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사정이 다르다. 국내에서 매년 약 90만 개의 자영업체가 생기지만 그중 85만 개가 문을 닫는다. 우리나라 창업기업 10개 가운데 4개가 회사 설립 1년 만에 사라진다. 이런 혹독한 경쟁 속에서 실패란 ‘패가망신’의 동의어처럼 불린다. 한 기업인이 사업에 망하면 연대보증제로 얽히고설켜 가정과 일가친척이 박살 나고 빚의 수렁 속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실패자’ 딱지가 붙으면 재기의 기회는커녕 영영 사회의 낙오자로 낙인찍히기 마련이다. 이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과감한 도전보다 남이 먼저 가본 안전한 길을 택하려는 사람들만 넘치게 됐다.

최근 창조경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실패에 관대한 사회를 만들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한 번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환경에서는 절대로 창조경제가 꽃필 수 없다며 실패자들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을 강조하고 나섰다. 정부도 우수 창업자에 대한 연대보증 책임을 면제해주고 실패 기업인들의 재창업을 지원하는 ‘기업인 재기 대책’을 내놨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과 패기를 받아주는 사회라야 미래가 있다는 말은 일리 있는 주장이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인 톰 피터스도 “멋진 실패에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을 벌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최근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실패 예찬론’과 ‘실패 환대론’에는 경계해야 할 대목이 있다. 무분별하게 실패를 보호하다 보면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실패에 따른 책임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감증만 남게 돼 결과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실패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왜 실패했는지를 잊어버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과거 제품에서 발생한 실패 원인을 새 상품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계속 실패작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실패박물관의 전시품들은 말해주고 있다.

실패를 경제학적으로 풀어보면 기회의 상실이자 비용의 증가를 뜻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실패를 곱씹으며 교훈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잘 고쳐놔야 남은 소들이라도 지킬 수 있어서다. 아마존이 전자책 시장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은 탁월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콘텐트를 확보하지 못해 고전했던 파나소닉 등의 과거 실패사례를 면밀히 분석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일본과 미국에는 아예 실패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실패학’까지 등장했다. 대표적인 학자인 일본 도쿄대의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는 ‘필요한 실패’와 ‘있어서는 안 될 실패’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필요한 실패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성장 과정이지만, 있어서는 안 될 실패는 이유를 알면서도 반복되는 실패를 말한다”고 했다. 열심히 노력했으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은 ‘성실 실패 (honorable failure)’를 제대로 구분해서 불이익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있어서는 안 될 실패까지 관대하게 용서해서는 안 된다. ‘대마불사’를 외치며 위험하게 질주하는 기업의 탐욕이나 정부 지원만을 노린 상습 실패꾼들은 실패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부터 할 일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무작정 제거하는 게 아니라 똑같은 실수를 줄여 실패하지 않도록 성공 확률을 높이는 일이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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