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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상하이 황푸강에서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중국 내륙의 대평원을 가로질러 바다에 다 와가는 황푸강을 맞은 건 고도 상하이(上海)였다. 수백 개 고층 빌딩이 열병식을 했다. 필자가 막 떠나온 서울과 한강의 소박함을 떠올리면서 소국(小國)의 공포를 새삼 느낀 그 시각, 일본 전투기가 센카쿠열도 상공을 시위 비행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곧이어 중국 주석 시진핑이 북양함대의 모함인 랴오닝함을 시찰했다. 북한은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했고, 한국에서는 한·미 연합군이 공중강습작전에 돌입했다.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임을 절감해야 했다. 세계 5대 권역인 유럽, 중동, 아시아, 북미, 남미권 중 국가 간 전쟁, 그것도 최강국끼리 맞붙을 불길한 예감이 가장 짙은 곳이 이 지역이다. 도대체 아시아는 있는가. 아시아라는 ‘실체’가 있다면 미워도 다시 한번 말 건넬 명분이라도 찾을 것이다.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가 ‘아시아적 가치’를 힘줘 말한 이유는 간단하다. 모자이크처럼 분절된 아시아국가끼리 그래도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발판이라도 만들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동아시아에 관한 한, 아시아는 없다. 연대와 공존보다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요인들이 시한폭탄처럼 매설된 지역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이 대치하고 제국주의의 상처가 쉽게 재발하는 곳, 그래서 호전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국민들이 제각각 험악한 언사를 마다 않는 지뢰밭이다. 전의(戰意)를 다지고 있는 두 제국(帝國), 일본과 중국은 이러다 결국 맞붙을지 모른다. 악화된 긴장이 어떤 극적 계기로 이완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정말, 그럴지 모른다. 21세기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동아시아가 유력한 대상지다. 1980년대부터 동아시아공동체가 신중하게 검토되었음에도 EU와 같은 협력체가 태동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냉전대치선과 문명단층선이 이 지역을 중첩적으로 갈라놓기 때문이다. 냉전대치선은 중·러·북과 한·미·일을 분절시키고, 문명단층선은 중국·한국과 일본을 갈라놓는다. 이중(二重) 분절에서 일본은 고립적이다. 서구화를 통해 유교에서 탈피한 일본이 아시아 소속감을 자인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고립국’ 이미지를 강화해 이 지역의 패권국가로 부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영토분쟁이나 집단자위권 같은 공격적 행보를 주저 없이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을 믿고 해보는 엄포라도 도를 넘었다.



 이중 분절선이 모두 피로 물들여졌다는 사실이 불길한 예감을 부른다. 냉전대치선에 중국 인민군 수십만 명이 죽었고, 반미와 반제로 똘똘 뭉친 북한이 위태롭게 앉아 있다. 남중국해와 대한해협을 잇는 문명단층선에는 식민수탈과 역사의 한이 배어 있다. 자국의 야만에 비교적 비판적이던 아사히신문조차도 난징 학살을 ‘우발적 사건’으로 보도하는 일본의 우경화 추세는 문명단층선을 위험한 활화산으로 변화시켰다. 중국에서 홍기를 꽂지 않은 일본차는 유리창이 박살 날 정도이고, 한반도 남쪽에서 메아리치는 독도 사수의 함성이 현해탄을 건넌다. 이에 질세라 일본 우익의 반한(反韓) 시위가 극에 달한다. ‘간바레(힘내라) 일본!’에 이어 ‘간코쿠진 미나고로시(한국인 몰살)’ 구호가 도쿄 신주쿠 거리를 메운다.



 전후 일본은 가해자로서의 죄의식에서 탈피한 듯하다. 전쟁세대가 퇴장하자 전쟁 기억은 흐릿해지고 원폭 피해 의식이 오히려 커졌다. ‘잔학무도한 무기’에 희생된 국가로 자국 정체성을 바꾸자 집단적 자위권 강화와 평화헌법 개정이 당면 목표가 되었다. 여기엔 군사력 증강으로 과잉자본 해소와 경제부활을 꾀할 수 있다는 제국주의적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화평굴기하는 중국이 과잉 생산력을 내륙개발에 쏟지 않고 군비 경쟁으로 돌린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두 제국의 충돌, 문명단층선이 제국 충돌선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역사적 상처를 내세워 아직 서로 치고받는 일본과 중국은 덩치만 키운 미성숙 국가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분단 68년이 지나도록 천방지축 날뛰는 북한을 한반도의 미래구상으로 끌어들이지 못했으니 말이다.



 중·일 분쟁에서 두 개의 분절선이 통과하는 한국의 역할은 막중하다. 조정자, 중재자로 나서는 것. 센카쿠열도와 독도분쟁을 현 상태에서 결빙시키고 더 이상 거론하지 않도록 하는 외교적 선회가 필요하다. 프랑스와 독일처럼 중·일(中·日)평화협정을 성사시키는 것, 한·중·일 삼각지대인 제주도에 삼국 정상회담을 유치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상설 외교기구를 운용하는 것은 어떤가. 지지부진한 6자회담도 이런 걸 전제로 해야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황푸강에 어둠이 내렸다. 건너편 빌딩 숲이 다국적 기업의 네온들로 번쩍였는데 한국의 어느 재벌기업도 작은 얼굴을 내밀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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