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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미술품과 해삼탕

남윤호
논설위원
점당 500만원. 공직자 재산등록 대상이 되는 미술품의 최저 가격이다. 그보다 싸면 굳이 신고할 만한, 의미 있는 재산이 아니라는 얘기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그렇다. 새 검찰총장 후보자의 동양화 두 점을 놓고 제기된 축소신고 의혹도 따지고 보면 이 조항과 연관돼 있다.



 사실 괜찮은 그림 몇 점 지닌 공직자들, 재산신고 할 때마다 좀 난감하긴 하겠다. 내 그림이 도대체 얼마인지 깜깜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에게 물어보거나 감정을 받는다지만 이것도 공인가격은 아니다. 이 그림은 얼마짜리, 하며 깔끔하게 도장 찍어주는 공공기관도 없다. 골동품이나 서화를 감정해주는 한 TV 프로그램에서도 소유자의 ‘자칭 가격’과 전문가들의 감정가는 영 다르다.



 미술품 가격은 최종적으로 경매나 매매를 통해 확정된다. 평소 재산가치가 얼마다 하는 표현은 매우 주관적이다. 구입가 역시 구입 시점의 가격일 뿐 그 작품의 시세는 아니다.



 그럼 그림 값은 어떻게 정해지나. 답은 없다. 이런저런 변수가 있다고 짐작만 할 따름이다. 화가의 명성과 생존 여부, 그림의 재료나 크기, 제작 시기, 보존 상태, 화랑 주인의 수완, 미술시장의 수급 상황, 전반적인 경기…. 그에 따라 바닥과 정점을 요란하게 오가곤 하는 게 그림 시세다. 심지어 A화랑에서 500만원인 그림이 B화랑에선 2000만원이 된다고도 하잖나. 액면가·시가가 분명한 유가증권이나 정부 공시지가가 적용되는 부동산과는 영 다르다.



 게다가 신고 기준액도 자의적이다. 크기·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점당 500만원 이상이다. 1000만원 이상이라야 신고 대상인 예금보다 엄격하다. 담당 부처인 안전행정부도 왜 300만원도, 700만원도 아닌 500만원이어야 하는지 딱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한다. 500만원은 별난 고가품으로 볼 수도 없다. 미술시장에선 2000만~3000만원 이상은 돼야 고가품으로 분류한다. 또 소득세법에선 점당 6000만원의 작품까지는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다. 이 규정 저 규정에 도통 일관된 기준이 없어 보이지 않나.



 이 때문에 공직자의 미술품엔 구질구질한 시비가 붙기 쉽다. 무작정 털고보자는 식의 인사청문회에선 더 그렇다. 무슨 돈으로 왜 샀나, 유명 작품인데 왜 싸게 신고했나, 소장품을 신고 대상에서 왜 뺐나….



 그렇다면 굳이 금액을 쓰지 말고 소장목록을 등록하도록 하는 게 현실적이다. 고가품은 당연하고, 몇십 만원 주고 산 작품들도 모두 신고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다 매매가 이뤄지면 소득세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가격을 애매하게 적어내는 통에 불필요한 논란을 부르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나. 일본에서도 국회의원 자산공개법에 따라 취득가 100만 엔이 넘는 미술공예품을 종류와 수량만 공개한다. 미국도 보유 사실은 공개하되 우리처럼 ‘점당 얼마’ 식으로 액수를 쓰진 않는다고 한다.



 공무원의 고가 미술품 수집을 권장하거나 새 검찰총장 후보자를 비호하려는 게 아니다. 부정축재를 막자는 공직자 재산등록의 취지를 스마트하게 살리자는 것뿐이다. 물론 공직자들이 뇌물·투기·증여 목적으로 미술품을 악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값을 밝혀둬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금액을 빼자고 하면 재산등록 제도를 후퇴시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매한 액수보다는 목록을 통째로 등록하고 변동사항을 체크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게 공직자 재산등록 제도의 취지에 더 들어맞는다. 그 경우 19만 명의 재산등록 대상 공직자들 사이에선 미술품 실명제가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동네 중국집에도 값 대신 ‘시가’로 표시하는 요리가 있다. 해삼탕·삭스핀이나 냉채·부추잡채처럼 재료값이 수시로 오르내려 값을 고정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중국집 메뉴판보다도 요령부득인 공직자 재산등록 제도는 이제 손볼 때가 됐다.



남윤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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