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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치료제로 에이즈 감염" … 10년 분쟁, 조정으로 마무리

‘책임 여하를 불문하고 공익적 견지에서 원고들의 위자료로 상당한 금원을 지급한다’.



녹십자 사건 95명 손배소
책임 떠나 공익적 견지에서
위자료 상당 금액 지급키로
구체적 액수는 미공개 합의

 환자 16명과 가족 53명 등 총 69명이 시작해 2003년부터 10년간 끌어왔던 장기간의 소송은 이 한 줄로 마무리됐다. 10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일상생활을 지속하면서도 간간이 법원에서 들려오는 승소 또는 패소 소식을 챙겨 들었다. 세월이 길다 보니 그간 환자 2명을 포함한 4명의 원고가 사망했다. 가족이 생기고 사망한 사람의 상속이 이뤄지면서 원고의 수는 총 95명으로 늘었다. 소송을 시작할 당시 14세 미성년자로 가장 어렸던 환자 이모씨는 이제 24세의 성인이 됐다. 녹십자홀딩스(녹십자)가 제조한 혈우병 치료제 ‘훽나인’ 등을 투여받은 뒤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혈우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얘기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강민구)는 박모씨 등 95명이 녹십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당사자들 간 임의조정이 성립했다고 4일 밝혔다. 구체적 지급금액에 대해서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이 사건 치료제로 인한 피고의 책임 유무에 대해 향후 어떤 민·형사상 책임도 묻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뤄진 치열한 법적 공방이 당사자들의 상호 양보를 통해 원만히 해결됐다”며 “모든 분쟁이 종국적으로 끝났다”고 설명했다.



 녹십자는 1974년부터 혈우병 치료제를 생산해 왔다. 혈우병은 혈액응고인자가 선천적으로 없어 경미한 외상에 의해서도 쉽게 피를 흘리며 한 번 출혈을 하면 잘 멈추지 않게 되는 유전병이다. 녹십자는 91년 한국혈우재단을 세웠고 등록 회원에게 혈우병 치료제를 유·무상으로 공급해 왔다. 하지만 해당 치료제를 투여받은 환자 중 16명이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후 진행된 역학조사에서 치료제의 원료가 되는 혈액 제공자 중 2명이 초기 에이즈 환자였던 점이 드러났다. 혈우병 하나만도 벅찬데 에이즈 치료까지 병행하게 된 환자들과 가족들은 32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을 담당한 서울동부지법 민사11부는 2005년 7월 치료제와 에이즈 발병 사이의 연관성을 최초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환자 중 이모씨와 가족 5명에 대해 일부 승소 판결했다. 손해배상액은 5000만원이었다. 나머지 원고들은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안 지 10년이 넘어 손해배상 시효가 소멸했다는 이유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은 녹십자 측 손을 들어줬다. 항소한 지 2년 반 만인 2008년 1월 서울고법 민사17부는 원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치료제 투여와 에이즈 발병 간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돼야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다”며 “에이즈 감염이 확인되기 전 이 사건 치료제를 투여받았다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이후 3년여 뒤인 2011년 9월 대법원에서 이 사건은 또다시 뒤집어졌다. 대법원 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치료제 투여 전 감염 의심 증상이 없었고 투여받은 후 감염이 확산됐으며, 치료제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어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사건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서울고법은 2년여간의 심리를 거쳐 이날 임의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초창기부터 이 사건을 담당해 왔던 치과의사 출신 전현희 변호사는 “원고들이 원했던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손해배상에 대한 법원의 명확한 판결이었다”며 “하지만 감염 후 20여 년간, 소송 제기 후 10여 년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었던 터라 불가피하게 조정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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