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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맞춰 책 내는 갑 … '봉투' 들고 눈도장 받는 을들

가을(9~11월)이 독서의 계절이라면, 국회의원들에겐 출판의 계절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열린 출판기념회는 15회. 지난해 19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열린 34번의 출판기념회 중 약 44%가 최근 두 달 사이에 몰렸다.

국회 가장 바쁜 9~11월에 행사 몰려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심의로 1년 중 국회가 가장 바쁜 시즌에 출판기념회가 성황인 셈이다. 국회가 ‘수퍼 갑’이 되는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정감사를 전후한 의원들의 행사를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기업이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지난 9월 3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새누리당 이군현(국회 예산결산위원장) 의원의 출판기념회엔 황교안(법무)·서남수(교육)·윤상직(산업통상자원) 장관 등 약 1000명이 다녀갔다. 축하화환만 80여 개가 걸렸다. 당시 행사장에서 만난 정부 관계자는 “이 중 책에 관심 있어서 온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물었다. 부적절한 시기에 열린 출판기념회란 비판이 있었지만 이 의원은 나흘 뒤인 7일 지역구인 통영에서 다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9월 4일엔 국회 정무위원장인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이 같은 행사를 했다. 정무위와 관련 있는 은행·보험·증권·자산운용·카드·캐피털사 관계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마다 학교 동창이든 고향 사람이든 의원들 끈이 다 있다”며 “끈도 있는데 안 가면 찍힐까 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위원장 외에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민주당 신학용(5일) 의원, 정무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주(9일) 의원, 환경노동위 소속 정의당 심상정(16일) 의원, 기재위 소속 류성걸(26일) 의원 등이 국감을 앞둔 9월에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과 민주당 최재천·김현미·전정희 의원은 각각 11월 첫째 주에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이다.

 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의 변형된 창구라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다. 2004년 3월 통과된 일명 ‘오세훈 선거법’에 따르면 정치후원금은 연간 1억5000만원만 모을 수 있다. 그러나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회계신고 대상 아니고 액수제한 없어

의원들이 책을 팔고 받은 돈은 법적으로 고스란히 개인 돈이다. 모금한도도 없고 회계보고 의무도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관위에 보고 의무가 없는 출판기념회 수익금을 양심적으로 정치자금이라고 신고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책 한 권 값이 얼마나 되겠느냐 싶지만 출판기념회의 책값은 대개 정가가 없다. 한 기업이나 기관이 다량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권에 10만원짜리 책도 있고, 그 이상도 가능하다. ‘현금 봉투’가 오가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 의 한 보좌관은 “행사 때 10만원 내고 한 권만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책값은 의원에 따라 다르지만 출판기념회 한 번에 최소 100만원, 많게는 1000만원 넘게 준비한다”고 밝혔다.

 행사 한 번에 수억원을 모을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 보좌관은 “3선 이상 의원이면 최소 1억원 이상은 남을 것”이라며 “10억원이 남았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금으로 받아 행사가 끝나면 의원들이 바로 집으로 가져가니 정확한 액수는 보좌관들도 알기 어렵다. 한마디로 사라져야 할 구태”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은 “출판기념회용 책을 의원들이 직접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사실 의원 입장에선 ‘공돈’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런 지적이 억울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9월 30일 출판기념회를 한 민주당 초선 이상직 의원은 “『을을 위한 행진곡』 1, 2권 출판기념회는 ‘을’에 해당하는 산하기관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 해서 두 번 다 적자였다”며 “9월 기념회 때 난 적자는 공동 저자인 의원 31명이 균등하게 메웠다”고 말했다. 저서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출판기념회를 연 심상정 의원은 “집필에만 5개월 넘게 걸렸다”며 “혹시라도 뒷말이 나올까 봐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영수증을 발급해줬고 화환 대신 쌀을 받아 사회시설에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책값 명목 대가성 있는 돈 오갈 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기념회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감이나 예산 심의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 때문이다. 중앙대 손병권(정치학) 교수는 “국정감사나 예산 심의기간 직전에 출판기념회가 많이 열린다는 건 문제가 있다”며 “피감기관들이 국감의 칼날을 둔하게 하거나, 예산 확보에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서 참석했다는 오해를 살 여지가 있고, 책값 명목으로 대가성 있는 돈이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소아·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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