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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건축의 미래 … 건물을 지워라, 풍경을 살려라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이화여대 명물인 ‘ECC’ 한가운데 섰다. 그가 이 건물을 넘어 생각하는 건축물은 ‘하이브리드 건물’이다. 도시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용도를 바꾸는 건물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년 365일 중 어느 하루 서울 이화여대의 ‘ECC(Ewha Campus Complex)’에 가면 프랑스에서 갓 날아온 이 남자와 만날지도 모른다. 2008년 ECC 완공 이후 매년 한국 나들이를 하는 그의 일정은 늘 같다. 호텔에 짐을 풀고 ECC로 와 커피를 마신 후 건물을 둘러본다. 지난달 30일 ECC에서 만난 백발의 그는 어김없었다. ECC의 창조주,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60)다.

이화여대 명물 ECC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땅에 묻은 건축, 내 작업의 완성점
자연과 분리된 건물은 폭력일 뿐



 “많은 작품 중 특히 이 건물을 좋아해요. 수십 년간 건축물과 자연의 관계를 생각해 왔는데 ECC는 그 완성점입니다. 어느 한 곳 빈 데 없이 전체가 살아 움직여요. 30년 전부터 여기 있었던 것처럼 잘 자리 잡았어요.”



 ECC는 땅에 묻힌 건물이다. 언덕의 가운데를 파 거대한 길을 내고, 양쪽 언덕 아래에 건물 두 동을 묻은 꼴이다. 6층짜리 건물(연면적 약 7만㎡)의 옥상은 대학의 경사진 지형과 딱 떨어진다. 정문에서 쭉 걷다 보면 어느새 건물 옥상 위에 올라서게 된다.



 24년 전, 페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로 발돋움했다. 30대 무명의 건축가가 내놓은 설계안은 파격적이었고, 지금의 ECC와 닮았다. 네모난 도서관 부지 귀퉁이마다 책을 반쯤 펼친 모양의 건물 네 동을 세웠다. 한가운데엔 나무가 심겨진 커다란 중정(中庭)을 만들었다. 공원처럼 사방이 열려 있는 이 건물은 프랑스인이 사랑하는 쉼터가 됐다.



도미니크 페로가 2018년 완공 목표로 재건축하고 있는 프랑스 루브르 우체국. [사진 DPA]


 -건물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자연훼손 아닌가.



 “맞다. 건축은, 벽을 세운다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행위다. 그래서 건물은 우리를 보호하되, 자연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 고밀도로 개발된 도시에선 건물이 오히려 답을 줄 수 있다. 건물을 사라지게 해 자연을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땅속에 건축물을 즐겨 묻나.



 “건축물의 존재를 통제하기 위해서다. 건물이 지역의 랜드마크로써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때도 있지만, 건물의 존재를 지워서 자연에 열려 있는 느낌을 줄 필요도 있다. 유리를 자주 쓰는 것도 자연을 투영시키기 위해서다.”



 -작업할 때 먼저 현장을 찾나.



 “모순 같지만 현장을 미리 방문하지 않는다. 컨셉트를 먼저 생각하고, 현장에 간다. 정신에서 출발해 물리적인 실체가 나오는 과정이 건축이다.”



 -서로 얼마나 일치하나.



 “나이 들수록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딱 일치하든, 전혀 아니든 다 좋다. 생각한 것과 현장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정반대 컨셉트가 떠오르면서 딱 떨어지게 되니까.”



 페로는 현재 프랑스에서 베르사이유 궁전 파빌리온과 루브르 박물관 우체국 재건축 등을 맡고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 파빌리온에 있는 커다란 계단 아래에 강당·카페·리셉션홀 등을 만든다. 1970년대 발생한 화재로 지붕이 불탄 루브르 우체국엔 호텔·상업시설 등을 넣는다. 루브르 우체국은 지금도 우체국으로 쓰이고 있다.



 -문화재 재건축, 반대는 없었나.



 “역사적인 건축물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문화재 보수를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은 옳지 않다. 유럽엔 문화재가 많지만, 유지·보수할 수 있는 재정이 부족하다. 매년 베르사이유엔 700만 명의 관광객이 온다. 우체국은 직원이 대폭 줄면서 공간의 80%가 비어 있다. 역사적 건축물에 현대적 기능을 도입해 재원을 마련하는 건 오히려 문화재를 살리는 일이다. 옛 것과 새것은 같이 가야 한다.”



 최근 열린 네덜란드 로테르담 건축영화제의 개막작 ‘공모전(competiton)’엔 페로가 출연했다. 유럽의 작은 나라 안도라에서 페로를 포함해 프랭크 게리·장 누벨 등 세계적 건축가를 지명해 초청 공모전을 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온갖 해프닝 끝에 우습게도 아무도 뽑히지 못했다.



 -왜인가.



 “정권이 바뀌면서 대규모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정치적인 이유로.”



 -스타 건축가에게도 공모전은 어려운가.



 “지금껏 가장 내 심장을 찢어 놓은 작업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오페라 극장 프로젝트다. 국제공모전에 당선돼 러시아에 사무실까지 열며 3년간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런데 러시아 측에서 일방적으로 모든 문서 다 갖고 외국인을 쫓아냈다. ‘도미니크 페로 없이 도미니크 페로의 오페라 극장을 짓는다’나. 결국 거지 같은 건물이 들어섰다. 러시아 정부가 저지른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계속되는 공모전, 지치지 않나.



 “(어깨를 으쓱하며) 그게 건축가의 인생이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미니크 페로=프랑스 도미니크 페로 건축사무소(DPA) 대표. 프랑스 국립도서관, 스페인 마드리드 올림픽 테니스 경기장, 베를린 올림픽 자전거 경기장과 수영장 등을 설계했다. 영국왕립건축가회의 특별 명예회원. “건축은 자연이고 자연은 건축이 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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