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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인문학 붐인가 거품인가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두 시간짜리 강연 내내 그 흔한 사진자료나 동영상 하나 제공되지 않았다. 애초부터 시각자료를 동원할 이유가 없는 강연이었다. 그제 오후 대전시 서구 유동천변에 자리한 산성종합복지관에 다녀왔다. 시각장애인·지역주민을 위한 복지시설이다. 건물 현관에 음성 탁상시계, 흰 지팡이, 점자 보드게임, 점필 같은 보조기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입구임을 알리는 벨소리가 6초 간격으로 끊임없이 울리고, 40초마다 “산성종합복지관입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주차공간 대부분은 장애인 표지가 돼 있었다.



 복지관 3층에서 열린 ‘우리 가락 충청 장단, 길 위에서 만나다’라는 주제의 강연에는 시각장애인 25명과 자원봉사 도우미 15명이 참석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전국 공공도서관 대상의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국악인 한기복씨가 고대·현대의 장구들을 설명하고 직접 연주해 소리를 들려주었다. 진양장단부터 세마치까지 우리 고유의 장단도 장구를 두드려가며 알기 쉽게 풀이했다. 시각장애인들은 한씨의 반주에 맞춰 진도아리랑을 합창했고, 강연 끝 무렵 그가 10여 분간 신들린 듯 장구를 연주하자 어깨춤을 추며 박수소리로 화답했다.



 여기서 한 가지 물어보자. 이날 시각장애인들이 즐긴 것은 행사 제목처럼 인문학인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가. 맞다는 쪽은 “인문학이 별거냐”는 쪽일 것이고, 고개를 젓는 사람은 “도나 개나 인문학이냐”는 입장일 터다. 나는 전자 편이다.



물론 요즘 너도나도 인문학을 표방하는 분위기인 건 맞다. “뭐를 하든 인문학적 바탕이 없으면 괴물이 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7월 10일) 덕분에 엄청난 추진력을 얻은 것도 맞다.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는 처음 직제에는 없던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를 새로 만들었다. 수많은 인문학 세미나들이 열렸고, 앞으로도 열릴 예정이다. ‘실크로드 위의 인문학,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한 국제 인문·문화축제는 그제 경주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작금의 인문학 붐이 과연 바람직한지, 행여 거품으로 끝나지 않을지 걱정 내지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한쪽에서는 붐이라는데, 일각에선 여전히 인문학이 위기란다. 학계에는 “대학의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빈사 상태인데 무슨 인문학 진흥이냐”는 시각이 있다. “인문학과·교수의 위기가 곧 인문학 위기라는 말이냐”는 비아냥 섞인 반론이 뒤따른다. 관(官)이 주도하는 인문학 붐의 위험성을 알리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가와 자본의 넘치는 관심과 후원은 인문학 재생의 밑거름이 아니라 나락일 수 있으며, 오늘날 인문학의 부흥은 이윤 창출을 위한 자본 축적 전략과 지배의 효율화를 위한 국가 통치전략의 소프트 버전’(『불온한 인문학』)이라는 주장이다. 오창은(중앙대)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순치된 인문학, 다시 말해 지배의 기술이 투영된 인문학을 경계해야 한다”(『절망의 인문학』)고 말한다. 노숙인 등을 위한 인문학의 치유 효과가 칭찬과 화제에 오르는가 하면 “‘거리의 인문학’의 최대 수혜자는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문학 그 자신, 그리고 강의에 나선 강사들”이라는 시니컬한 시각도 나온다. 게다가 인문학 주도권(?)을 둘러싼 교육부와 문체부의 은근한 신경전도 슬슬 입초시에 오르고 있다.



 일부 비판론에는 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호오(好惡)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큰 방향이 옳은데 정부가 주도한다 해서 굳이 삐딱선부터 탈 이유는 없지 않을까. 현재의 인문학이 비판과 성찰, 회의라는 본연의 모습보다는 치유와 행복에 안주한다는 지적은 분명 일리가 있다. 결국 받아들이는 쪽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지레 고개를 외로 꼬기보다 모처럼의 인문학 붐을 제대로 살리는 게 중요하다. 거품 신세를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인문학 붐의 법제도화에 열쇠가 있다고 본다. 문화융성위원회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8대 정책과제’에는 ‘인문정신문화진흥법 제정과 전담 기구·협의체 운영’이 들어 있다. 인문진흥법은 학계에서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것이고, 지난달 7일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인문정신문화정책심의회·인문진흥기금 설치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약하다. 미국의 국립인문재단(NEH), 영국의 인문예술연구원(AHRC), 프랑스의 국립학술연구원(CNRS) 같은 본격적인 기구를 만들 수 있게끔 법안 내용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인문학 진흥이란 게 박근혜정부 5년만 하고 말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제도로 탄탄히 뒷받침해야 50년, 100년 갈 수 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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