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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2013 추곡수매의 부활

이규연
논설위원
1974년 늦가을, 신문 1면의 헤드라인을 본다. ‘추곡수매가 38% 인상, 가마당 1만5760원.’ 기사에는 수매원이 쇠꼬챙이로 가마니를 꾹 찔러 내용물을 검사하는 사진과 함께 장관 담화문이 실려 있다. ‘농민 여러분, 금년 쌀 생산이 사상 유례없는 3000만 석을 돌파했습니다. 수매가는 물가상승률과 생산비를 보장한 가장 유리한 가격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한 해에 두 번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 회자됐다. 한 번은 농민이 짓고, 다른 한 번은 정부가 추곡수매가를 통해 짓는다. 정부가 비싸게 사서 싸게 풀어놓는 이중곡가제를 쓴 것이다.



 추곡수매제는 2004년까지 지속됐다. 쌀이 부족한 상황에서 농민에게 생산의욕을 불어넣고 소비자의 가계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온실 속에서 우리 농업은 자생력을 잃어간다. 벼농사에만 매달리다 보니 다른 농업 분야는 뒤처지는 부작용도 낳는다. 식량용 쌀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추곡수매 무용론이 나오기도 했다.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 무렵, 농수산부와 경제기획원, 농민단체 사이에 어김없이 흥정이 벌어졌다. 농수산부가 잠정안을 내놓으면 경제기획원은 이보다 낮은 수치를, 농민단체는 높은 수치를 각각 제시한다. 재미있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행태였다. 농촌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농민단체 편에 서서 농수산부를 몰아붙인다. 농수산부 장관을 불러다 놓고 “주무장관이 농민 편에 서서 예산 당국을 설득해야지,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몰아세웠다. 쌀값 앞에서는 여와 야가 없었다. 그래서 ‘농민당’이라는 말이 나왔다.



 2005년 시장개방 체제가 들어서면서 추곡수매제는 사라진다. 정부가 직접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이 세계자유무역 질서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대신 기준(목표가격)을 정해놓고 산지 쌀값이 이보다 떨어지면 농가를 지원하는 직불제를 채택한다. 정부가 물가상승률·생산비를 고려해 추매가를 정한 뒤 직접 사들이는 제도와는 틀이 다른 것이다. 목표가격은 5년마다 정한다. 마침 올해에 2017년까지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번 국감에서 목표가격이 도마에 올랐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이 수확기 쌀값에 연동한 목표가격을 제시하자 여야 가릴 것 없이 포문을 연 것이다. 야당 의원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농정에 무관심한 3무(無) 장관” “기획재정부와 목을 걸고라도 붙어야 했다”라고 공격하자, 여당 의원들도 “생산비·물가상승률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추곡수매의 부활을 보는 듯했다. 이들은 호남과 영남의 농촌지역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다.



 이들의 주장은 초법적 성격이 짙다. 목표가격 산출 잣대는 ‘수확기 가격변동’이다. 법(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그렇게 돼 있다. 법률 시행령 제6조에는 산출공식까지 나와 있다. 농식품부가 간여할 폭은 극히 좁다. 생산비·물가상승률과 연계시켜 크게 올리고 싶으면 의원들 스스로 법을 바꾸어야 한다.



 정책의 신뢰도를 훼손할 만큼 실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목표가격을 많이 올리면 벼농사를 좀 더 많이 짓게 된다. 그러면 산지 쌀값이 떨어져 농가소득은 줄어들 수 있다. 이를 보전하기 위해 예산이 좀 더 들어가게 된다. 벼농사 외에 다른 농업 분야에 투자할 여력도 약해진다. 쌀 소비량은 매년 2%씩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잉생산을 부추기는 수단을 써야 할까. 농업인이나 농민단체들이 기준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당장 손에 쥐는 돈이 요긴할 것이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부작용을 너무나 잘 알면서 초단기 처방에 매달려서는 곤란하다.



 우리 농업의 국제경쟁력은 허약하다. 농가소득 역시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국회가 농정 당국을 나무랄 재료는 얼마든지 있다. 무작정 쌀값 기준을 올리라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더 획기적인 중장기적 진흥책을 주문해야 한다. 추곡수매의 레퍼토리는 2013년에 맞지 않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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