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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해장국이란 … 술꾼 아닌 새벽 일꾼 위한 음식

해장국이라는 이름은 본디 해정(解<9172>)이라는 낱말에서 왔다고 한다. 사전에도 해정은 있어도 해장(解腸)은 없다. 해정은 문자 그대로 술에서 깨어난다는 뜻이다. 세계 각국이 해장을 위해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는 경우는 있지만, 의미가 이토록 치밀하고 분명하게 이름부터 ‘해장국’이라는 음식은 없는 듯하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보니 그들은 레몬즙을 마셨다. 비타민을 공급해서 술 깨는 데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레몬이 뜨겁고 매운 국물인 우리나라 해장국보다 과학적 효능은 더 뛰어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고통받은 위를 풀어주는 느낌은 없다. 우리 식의 해장국은 술과 피로로 축 처진 몸을 위로하는 이미지가 박혀 있다. 이상하게 나는 청년 시절 무교동과 관수동 일대에서 팔았던 길거리 해장국이 생각난다. 순두붓국이라고 불러야 맞을 텐데, 그들은 밤을 도와 술을 마신 취객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자, 해장들 하고 가세요!”



어느 때인가 상처 입은 시절에는 그 호객소리에 왈칵 진한 위안의 기운을 받은 적이 있다. 해장이라니, 속을 풀고 가라니. 그 말처럼 따스하게 어깨를 다독여주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서양에서도 해장국이랄까, 비슷한 음식은 있었다. 아침 시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막 한숨을 돌리면서 뜨끈한 내장탕이나 쇠고기야채스튜를 먹었던 것이다.



우리의 해장국도 술꾼의 몫이기 전에 일꾼의 음식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한양 도성으로 새벽일을 나온 일꾼들이 한 술씩 밥을 말아서 먹기 시작하면서 해장국이 번성했다는 게 정설이다. 도성이 막 사대문을 열면 일꾼들이 장작이며 부식, 온갖 상품을 수레나 지게로 지고 들어왔을 것이다. 짐을 부린 뒤 먹는 뜨끈한 한 그릇의 탕이 그들의 요긴한 양식인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육의전 인근에 그런 해장국집이 새벽부터 국을 끓였고, 그것이 피맛골과 무교동 일대에 해장국의 역사를 만들었다. 18세기 들어 상공업이 발달하고 전국적인 역마 시스템과 객줏집이 번성하면서 해장국은 조선 제일의 패스트푸드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콩나물과 된장에 소뼈나 돼지뼈를 넣고 푹 끓이는 한 그릇의 탕은 우리 음식의 중요한 가치를 보여준다.



근대의 해장국은 인천을 원조로 치는 이들도 있다. 일제 때 개항지로 물자가 크게 돌고, 미두취인소(쌀 선물거래소)가 열리면서 전국의 투기꾼과 일꾼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천에는 그 역사를 담은 해장국집이 두엇 남아 있다. 시절은 흘러갔지만 맛은 여전하다는 평이다. 유명한 미식가였던 고(故) 신태범 선생은 한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쇠뼈와 배추우거지를 밤새 끓여내는 토장국이 인천식 해장국이었는데 쇠뼈의 기름기와 재래식 된장이 어울려… 집에서 가져온 찬밥 덩어리를 국에 말면 충분한 아침 끼니가 되었다….”



피맛골은 사라졌으니, 근대의 시작을 알린 경인선을 타고 인천에서 먹는 해장국 한 그릇은 어떤가. 옛 도심인 신흥동의 평양옥이 아직 그 시절의 음식을 역사의 뚝배기에 담아 팔고 있다.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chanilpa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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