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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패티김

은퇴 발표 후 1년여 은퇴 공연을 이어가는 미국식 은퇴 투어를 택한 건 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해온 패티김다운 결정이었다. 이제 패티김은 마지막 모습조차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은퇴 이후 일정은 공연을 마치고 생각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 동영상은 joongang.co.kr [사진 PK프로덕션]


“아이 엠 프리!(I am free!)”

은퇴 공연 1년 대장정 마무리
"평생 압박감 심했다 … 이제 자유"



 패티김(75·김혜자)이 55년의 가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자유인이 됐다. 패티김은 26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은퇴공연 그랜드 파이널 ‘굿바이 패티’를 열었다. 지난해 2월 은퇴 발표 뒤 같은 해 6월 서울부터 시작해 부산· 창원·대전·성남 등 22개 도시에서 45회 공연하며 10만여 명을 만났다. 그 대장정의 마지막 밤, 패티김은 3시간 반 동안 객석을 들었다 놓으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백발에 빨간 머리핀을 꽂고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한 패티김은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라 말하며 ‘서울의 찬가’로 문을 열었다. ‘서울의 모정’ ‘람디담디담’까지 내리 세 곡을 부른 패티김은 숨을 고르며 두 팔 벌려 “아이 엠 프리!”를 외쳤다.



 “그 동안 목이 쉴까, 살이 찔까, 무대 구성, 의상 선택 등에 따르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이제 김치·밥에 아이스크림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요. 호호.”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백발의 여왕은 다독였다.



 “이제 저는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눈물 흘리지 마세요. 그러면 제가 더 힘들어요.”



 공연 중간엔 2004년 ‘굿바이’로 가요계 데뷔한 둘째딸 카밀라도 무대에 올랐다. 모녀는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와 셀린 디온이 부른 듀엣곡 ‘텔 힘’을 열창했다. 패티김은 지난해 암 선고를 받은 여동생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암은 항상 남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많이 좋아졌어요. 지난해부터 올 가을까지 동생을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동생을 위한 선곡은 뉴에이지 듀오 시크릿 가든의 ‘유 레이즈 미 업’이었다.



 그는 “10대 K팝만 소리지르고 놀라는 법 없잖아요. 우리도 마음껏 놀 수 있다는 걸 보여줍시다”라며 객석을 흔들기도 했다.



 “저는 모래시계예요. 내 나이를 거꾸로 뒤집으면 이제 57세 밖에 안 됐어. 아직 한창이죠!”



 마지막 곡은 ‘그대 내 친구여’였다. 당당하던 여왕은 1만여 팬의 앙코르에 결국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다. ‘이별’의 반주가 흐르자 후배 가수 양희은·이선희·진미령·인순이·이은미·JK김동욱 등과 가족들이 무대에 올라 패티김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감사합니다. 굿바이!”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주인공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아름다운 은퇴식이었다.



 1958년 미8군 무대에서 데뷔한 패티김은 한국음악사의 기록과 함께 했다. 1962년 대한민국 최초로 리사이틀 공연을 열었고, 1978년에는 대중 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섰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이어 미국에도 진출해 NBC ‘자니 카슨-투나잇 쇼’에 출연하는 등 세계로 뻗어나갔다. 1989년 한국인 가수로는 조용필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 뉴욕 카네기 홀에 올랐다. 1996년 연예예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훈장(5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이력보다 더 빛나는 건 ‘초우’ ‘가시나무새’ ‘그대 없이는 못 살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못 잊어’ 등 숱한 히트곡과 반세기 넘게 당당하게 지켜온 프로의 자세다. 그는 이날 “저는 무대에서 떠나지만, 제 노래는 여러분 주변에 항상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경희·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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